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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um Posts

NewDaysChurch
Apr 20, 2024
In 목회칼럼
인생은 사는 것이 아니고 누리는 것입니다. 산다는 것은 의무처럼 느껴지나 누린다는 것은 즐기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무엇을 하든지 누리면서 일을 하다 보면 하는 일에서 맛을 아는 것입니다. 인생을 누리다가 보면 먹는 맛도 있어야 하고, 노는 맛도 있어야 하고, 남들이 모르는 것을 내가 안다는 아는 맛도 있어야 합니다. 어쩌면 인생은 맛으로 살고 있습니다.  옛말에도 저 잘난 맛에 산다고 합니다. 남들이 어떻게 보든지 말든지, 뒷소리를 하든 말든, 내 인생 내 멋으로 사는 분들도 계십니다.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살 수 있는 삶의 여유가 인생의 맛입니다. 이렇게 먹는 맛도 좋고 노는 맛도 좋지만,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 맛을 보세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먹고 있는가? 누군가가 전하는 말씀을 귀로만 먹지 말고 내 입술로 먹을 때 말씀의 맛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도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이런 염려는 식물과 동물의 염려라고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보고 말씀의 맛을 누리는 삶이 되시길 바랍니다.
말씀의 맛! (2024년 4월 20일)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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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DaysChurch
Apr 13, 2024
In 목회칼럼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같은 말을 두 번 이상 반복하면 짜증을 냅니다. 제대로 이해 못한 것 같아서 다시 반복하면, 화를 내면서 한번만 이야기해도 다 알아들었다고 버럭 화를 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세 번을 반복하였습니다.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이어서 두 번째에는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째에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왜 세 번씩이나 반복하며 사랑하느냐고 말씀을 하셨을까? 사명을 주시기전에 먼저 주님과 베드로와의 사랑하는 관계를 확실하게 하고자 하였습니다. 세상 그 어떤 것보다 정말 주님을 사랑한다고 확실하게 대답을 받으면서 두 가지 사명을 주셨습니다. 첫 번째 사명은 내 양을 먹이라고 하였습니다.  두 번째 사명은 내 양을 치라고 즉 돌보라고 하였습니다. 내 양을 먹이라고 한 것은 꼴만 먹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먹이라고 하였습니다. 양을 치라는 말씀은 내 양이 아닌 예수님의 양을 돌볼 때 의무가 아니고 사명으로 돌보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베드로에게 사랑을 확증한 후에 사명을 주셨듯이 우리들에게도 매일 같이 질문합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사랑한다고 하면 내 양을 먹이고 내 양을 돌보라고 하십니다. 양을 돌봄이란 목자가 양을 돌보기도 하지만 더 나가서는 양이 양을 돌보는 사랑하는 관계가 이루어지기 바랍니다.
나는 예수님을 사랑하는가? (24년4월14일)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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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DaysChurch
Apr 06, 2024
In 목회칼럼
예수님은 33년이라는 짧은 삶을 사는 동안 온갖 고난과 수치와 수모를 겪으시고 죽으셨습니다. 세상에서의 죽음은 모든 것이 끝이 났고 한 생명도 없어졌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 땅에서 십자가의 죽음은 끝이 아니고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셨습니다. 새로운 세계란 영생이라는 영원한 생명의 세계를 열어주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사람들이 죽음으로 이 땅에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해결된 것입니다. 무엇이 해결되었다는 것일까? 유한된 이 땅에서의 생명이, 영원한 생명의 세계로 옮겨진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쉬지 않고 부활을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으라고 그리하면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는 영생을 주시겠다고 전파하십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의 가장 큰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신앙으로 성숙할수록 문제에 매달리지 아니합니다. 그 문제를 놓고 몇 날 며칠 밤잠 설치며 고민에 빠지지 않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할 때 없어진 줄 알았는데 없어진 것이 아니고 해결된 것입니다. 오늘도 내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할 때 오늘의 문제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오늘의 문제가 해결된 것입니다.
문제는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해결된 것이다(24년 4월 6일)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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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DaysChurch
Mar 30, 2024
In 목회칼럼
세계 많은 종교에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고, 오직 예수님만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세계 많은 종교에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나, 분명히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음에 부활이라고 말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살아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이 아니라,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심으로 부활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여자들은 부활의 예수님을 만나러 무덤에 간 것이 아닙니다. 아무도 없는 새벽시간에 죽은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이나 다시 넣으려고 왔는데, 놀랍게 부활의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부활의 예수님이 여자들에게 첫 인사가 샬롬, 평안하냐! 이 시간에 우리들에게 부활의 예수님은 평안하냐? 라고 하십니다. 죽음을 이기고 부활의 승리는 예수님만의 승리가 아니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우리 모두의 승리로 부활을 축하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24년 3월31일)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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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DaysChurch
Mar 23, 2024
In 목회칼럼
예수님이 베다니에서 예루살렘 성으로 가시기 전에 감람산 인근에서 제자 두 명을 동네로 보내면서 매여 있는 나귀와 새끼를 풀어서 내게로 끌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매여 있다는 것은 임자가 있는 나귀와 나귀새끼인데, 망설이는 두 명의 제자들에게 누군가가 왜 매여 있는 나귀를 끌어가려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끌고 가라 할 것이다. 이렇게 구한 새끼 나귀를 타시고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갈 때 수 많은 백성들이 길가에서 종려 나무가지를 손에 들고 흔들면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외치면서 환영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생애에서 처음이요 마지막으로 환영을 받았습니다. 백성들의 마음속에는 응어리들이 폭발 직전까지 가득차 있는 상황입니다. 백성들은 춥고 배고픈 것보다 더 한 것은 로마 식민지로서의 억압으로 인한 분노가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인도의 간디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자신은 신을 백성들 속에서 보았고, 백성들은 신을 간디에게서 보았다고, 간디가 본 신은 백성들에게 힘이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삼백여년간 영국의 식민지생활에 지치고 지쳤을 텐데 무슨 힘이 있어 보인다고 하였을까? 인도 백성들은 영국의 압제로부터 마음속에 팽창된 힘을 보았다고 하였습니다. 분노가 마음속에 터질듯하게 팽창되었음을 보고는 힘이 있는 신을 보았다고 한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도 분노가 마음속에 팽창되어 곧 터질 듯 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니까 분노가 팽창되어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대대적으로 환영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환영은 금방 시들어지고 다시 예수님을 십자가 못 박으라고 분노의 폭발을 예수님께 돌렸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수난을 겪으면서 결국 십자가의 죽음이 실패가 아니고 영광의 승리를 하였습니다. 종려주일은 나를 죽이고 오로지 예수님의 마음을 마음에 담아두면서 부활을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부활을 준비하는 종려주일 (24년 3월24일)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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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DaysChurch
Mar 16, 2024
In 목회칼럼
신앙에서도 세상에서도 위로 올라갈수록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다리의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 위를 올려다보아도 아찔하고 아래를 내려다보아도 아찔합니다. 높은 사다리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땅이 나를 잡아끄는 것 같고 하늘을 올려다보면 하늘이 잡아당기는 듯합니다. 사다리를 한 단계, 한 단계 올라갈 때는 몰랐는데 막상 도달해서 위아래를 바라보았더니 내가 서 있는 높은 자리가 결코 쉬운 곳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이것을 깨달을 때 위로 올라갈수록 사람이 사람다워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올라갈 때는 두렵고 불안한 마음으로 올라갑니다. 정상에서 위도 바라보아야 하는데 위는 바라보지 않고 오직 아래만 바라보니까, 세상이 다 자기 것으로 착각할 때 사람이 사람다워질 수 없는 교만이 앞섭니다. 왜 그럴까! 아래만 바라보았지, 위를 바라보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위를 바라보면서 위에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합니다. 위를 바라볼 때 비로소 여기까지 올려주신 주님의 은혜를 생각합니다. 사다리 중간까지 와서는 더 이상 올라가지 않고, 내려가지도 않고는 여기가 좋습니다! 하면서 만족해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위로 향하여 날마다 올라가야 합니다. 그곳에서 하늘도 바라보고 땅도 바라볼 때 자신의 위치가 얼마나 소중한 줄을 알게 합니다. 사순절을 절반 정도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계속 위로 향하여 전진해야 합니다. 어디까지 부활의 날까지 땅을 바라보지 않고 부활을 향하여 오늘도 내일도 전진하시기를 바랍니다.
어디를 바라볼 것인가? (24년3월17일)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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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DaysChurch
Mar 09, 2024
In 목회칼럼
내가 듣기에 좋으면 소리라고 말하며, 내가 듣기에 시끄러우면 소음이라고 합니다. 반대로 나는 소리로 들려서 볼륨을 높였더니 다른 사람들은 소음이라고 듣기 싫어합니다. 미국은 수많은 국가의 이민자들로 구성되었습니다. 이민자들의 성향에 따라서 조용한 성품도 있지만 흥이 넘치는 이민자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집 밖에서 틀어놓고 즐깁니다. 이웃들이 항의 합니다. 너무 시끄러우니 소리를 줄여달라고 요구합니다. 이들은 의아해하면서 이렇게 좋은 음악을 이웃들과 함께 나눌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고, 내가 듣기에 좋으면 소리가 되지만 내가 듣기에 시끄러우면 소음이 됩니다. 세상은 나를 기준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내 의견만이 가장 좋다고 강하게 주장할 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고립 되어가고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배려할 수 있는 사회, 상대방의 입장도 생각해보면서 이해하는 사회가 오늘날 우리들에게 필요로 합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강하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사순절을 보내면서 생명의 말씀을 붙잡고 광야의 삶을 살아보라고 권면합니다. 예수님의 고난에 조금이라도 동참하고자 하루 한 끼 금식을 하기도 합니다. 이보다는 문화금식 하는 것이 더 고난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 사용을 줄여보고, TV 시청시간을 줄여보고 인터넷사용도 줄여보는 것이 세끼 금식보다 힘들고 불편하다고 합니다. 힘든 것을 절제할 때 나도 모르게 광야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사순절 기간에 문화금식을 하면서 예수님의 고난당하심을 조금이나마 경험해보세요. 내가 듣기에도, 이웃들이 듣기에도, 주님이 듣기에도, 아름다운 말씀을 읽고 들을 때 소음이 아니라 가장 좋은 소리를 들으면서 사순절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소리와 소음 (24년3월10일)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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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DaysChurch
Mar 02, 2024
In 목회칼럼
사순절은 방향을 정하는 절기입니다. 무슨 방향을 정하는가? 평안한 삶의 방향에서 불편한 광야의 삶으로 방향을 바꾸어야 합니다. 풍요로운 삶을 누려도 부족한데 어째서 불편한 광야의 삶으로 방향을 바꾸라고 하는가? 삶이 풍요로우면 예수님을 바라보는 삶이 아니고 좀 더 풍요로운 삶을 누리려는 곳으로 방향을 바꿉니다. 사순절은 예수님이 겪었던 고난의 과정을 함께 가면서 마지막 부활을 준비하는 절기입니다. 왜! 풍요로운 곳을 벗어나 메마르고 삭막한 광야의 삶을 살아보라고 하는가! 광야에서는 볼 것들이 없습니다. 들을 수 있는 것들도 없습니다. 볼 것들이 없고 아무소리도 들을 수 없는 환경에서는 오로지 위에 계신 예수님만을 바라 볼 수밖에 없습니다. 광야의 삶을 살아보아야 예수님을 더 가까이에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이 땅에서 광야의 삶은 어디에서 살아볼 수 있을까? 문명의 생활에서 벗어나면 광야의 삶이 됩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스마트 폰만 사용하지 안 해도 어쩌면 광야와 같은 삶이 될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내가 좋아하는 취미생활도 내가 좋아하는 영화도 얼마든지 볼 수 있으며, 인터넷이 연결된 세계 어느 지역과도 영상통화가 가능합니다. 사순절만큼이라도 문명생활에서 벗어나는 것이 광야의 삶입니다. 현대문명을 잠시라도 벗어나서 예수님의 고난 길을 함께 가면서 부활을 준비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광야에서 삶(24년 3월 3일)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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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DaysChurch
Feb 24, 2024
In 목회칼럼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위치한 외국인 선교사들이 잠든 양화진 외인묘지가 있습니다. 14여개 국가에서 한국으로 파송된 선교사들이 복음을 위해서 사역하다가 한국 땅에묻히신 분들입니다. 약 사백여명의 선교사들과 가족들이 죽어서도 본국의 가족들 품으로 돌아가지 아니하고 한국 땅에 묻히면서 재림하실 예수님을 기다리며 잠든 묘지입니다. 이분들은 이 땅에서의 생명을 다하면서 유언처럼 남긴 말이 이 땅에 묻히리라, 이분들은 한국을 얼마나 사랑했으면 유교와 불교와 가난에 찌들어있던 이 땅에 예수님의 사랑을 심어주었고,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였습니다. 선교사들은 한국인들과 동화하려고 성씨도 이름도 개명하였습니다. 그런가하면 자신만이 죽어서 한국 땅에 묻히는 것이 아니라 아내도 자식들조차도 이 땅을 떠나지 아니하고 대대로 살면서 한국 화된 가정들이 많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연세대학을 세웠던 언더우드 가문은 원씨로 개명하여 지금까지도 후손들이 한국에서 살고 있으며, 대전의 한남대학교와 호남지역에 수많은 결핵요양원을 세웠던 린튼 가문은 인씨로 개명하고 지금까지도 후손들이 4대째 한국에 살고 있습니다. 한국정치계에 등장했던 인요한 박사도 린튼 가문의 후손입니다. 이분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기독교의 꽃을 피울 수 있었습니다. 이분들은 예수님의 어떤 말씀을 붙잡고 한국 땅에서 대대로 살게 하였을까?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이요, 마지막 당부하신 말씀을 붙잡았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할지어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세상 끝 날은 예수님이 재림하는 날입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며 해외 각국에서 헌신하는 선교사님을 기억하고 기도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이 땅에 묻히리라 (24년 2월25일)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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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DaysChurch
Feb 18, 2024
In 목회칼럼
선교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요, 예수님을 전하는 것입니다. 수많은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하는 지역은 결코 평안한 환경이 아닙니다, 선교사님들은 나를 높일 수 없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를 내려놓고 오직 예수님만을 높이고 앞세우며 주어진 사명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떤 방법으로 하나님나라를 전파하셨을까? 오늘날 우리들의 전도방법과는 전혀 다른 방법을 사용하셨습니다. 어떤 방법을 사용하셨을까? 예수님은 나를 영접하라고 구호를 외치듯이 전하기보다는 먼저 전도대상자들과 친구가 되어주셨습니다. 친밀한 관계를 맺으시고 그리고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예수님처럼 전도대상자들과 관계를 맺어가면서 서둘지 않고 복음을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전도하는 방법을 보면, 첫 번째 복된 소식을 가르치며 전하였습니다. 두 번째는 긍휼한 마음으로 전도하였으며, 세 번째는 질병을 고쳐주었으며, 네 번째는 먹을 것을 주었으며, 다섯 번째는 세상으로 향한 마음을 하나님나라로 방향을 바꾸도록 마음을 바로잡아주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가르치고, 전도하고, 고쳐주는 사역을 하셨듯이 우리들도 전도대상자를 먼저 긍휼한 마음으로 가르치고 전도하고 고쳐주는 사명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전하는 사명 (24년2월18일)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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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10, 2024
In 목회칼럼
예수님시대에 바리새인들은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올무에 걸리게 할까 여러번 시도했지만 다 실패했습니다. 이번에는 세금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예수님당시나 오늘날이나 세금문제는 누구나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안낼까 하는 탈세가 아니고, 어떻게 하면 적게 낼 수 있도록 절세를 할 것인가! 미국에서의 세금탈세는 무덤까지 추적한다고 할 만큼 탈세는 무섭게 처벌합니다. 그러나 탈세가 아니라 절세를 잘해서 합법적으로 세금을 적게 내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작은 비즈니스를 운영하면서 절세보다는 아애 내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합법적으로 세금내고 운영한 비즈니스를 매매할 경우 세금 낸 매상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다시 예수님시대로 돌아가 보면, 바리새인들이 예수에게 질문합니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옳은 것이냐? 옳지 못한 것이냐? 이 질문을 받은 예수님은 명쾌하게 답변하기를,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들도 세상 세금을 잘 내듯이 하나님에게도 잘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것은 소득의 십일조입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느냐 했더니 백성들 대답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였느냐 라고 반문하였습니다. 적든 크든 내게 수입이 있으면 십에 일을 하나님께 기쁘게 드렸을 때 기쁘게 받으시고 다시 뒤돌려주심을 믿고 하나님의 것을 잘 드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것과 세상의 것을 구별하자(24년 2월11일)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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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DaysChurch
Feb 03, 2024
In 목회칼럼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였으면, 예수님의 삶을 배워가야 합니다. 사복음서에는 예수님이 어떻게 사셨는지 자세하게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마다 예수님은 이렇게 사셨구나! 감동하면서도 예수님의 삶은 배우려 하지 않습니다. 현대인들은 예수님의 삶은 까마득하게 잊고 살면서 자신의 구원에는 열심입니다. 이제는 우리들만의 세계, 교회 안에서 믿음의 사람들만의 세계를 벗어나서 아직도 예수님을 모르는 비 기독교인들과도 협력해야 합니다. 이런 일을 위해서 교회에서는 직분자들을 세웁니다. 직분자란 꼭 집사다 권사다 장로다 라는 호칭만이 직분자는 아닙니다. 나에게 예배드리는 직분을 주셨구나, 기도하는 직분을 주셨구나, 찬양하는 직분을 주셨구나, 봉사하는 직분을 주셨구나 여기시고 교회 안에서와 교회 밖에서 최선을 다할 때 세상 속에 새날교회가 됩니다. 교회는 산속 깊은 곳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무인도와 같은 섬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세상 속에 존재해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 속에 있는 교회가 됩니다. 이런 일을 위해서 직분자를 세웠습니다. 건물교회가 일일이 하지 못하는 일들을 직분자들이 하셔야 합니다. 그럼에도 직분자들이 받은 직분을 헌신짝 버리듯 쉽게 쉽게 버리고, 다시 받기도 합니다. 내가 받은 직분에 감사함으로 교회 안에서와 교회 밖에서 내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여 칭찬받는 한주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NewDaysChurch
나의 직분에 감사하는가! (24년2월4일)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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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DaysChurch
Jan 26, 2024
In 목회칼럼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이며, 호흡이라고 쉽게 말하며, 나의 삶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예배는 무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예배도 호흡이며, 예배는 나의 삶이며, 예배는 나의 생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배가 우리의 삶이며, 우리의 삶이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예배가 어느 순간 형식화되었으며, 예배가 의무처럼 되었습니다. 교통신호등의 색깔은 세 가지 색이 있습니다. 빨간색은 정신하라는 신호입니다. 노란색은 정지할 준비를 하라는 색깔이고, 파란색만이 진행하라는 신호입니다. 주일예배는 어떤 색깔을 상징할 수 있을까? 빨간색인 정지하라는 색깔입니다. 세상에서 6일간은 파란색 신호등을 보고 열심히 달리다가 주일날 색깔은 빨간색으로 정지하라는 신호입니다. 달리던 발걸음을 멈추고 어떻게 하라고, 교회로 발걸음을 바꿔서 예배드리라는 색깔입니다. 예배 시간은 세상에서 사용하고 남은 시간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정말 필요한 시간조차도 아낌없이 예배 시간에 맞출 때 올바른 예배자가 됩니다. 예배를 위한 시간 투자는 결코 헛되지 아니하고 주님과 대면하는 가장 복된 시간임을 알아야합니다. 이번 한 주간 내내 예배하는 삶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예배드리는 삶이 되라 (24년1월28일)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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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DaysChurch
Jan 21, 2024
In 목회칼럼
기독교인들의 일상적인 습관으로 굳혀진 것이 기도입니다. 항상 기도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못해도 하루 두세 번은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때가 언제일까요? 식사할 때만큼이라도 기도합니다. 물론 기도를 많이 한다고 기도이고, 짧게 한다고 기도가 아닌 것은 아닙니다. 어떤 마음의 자세로 기도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예레미아 선지자는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민족들에게 편지하기를 바벨론의 평안을 위해서 여호와께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원수와도 같은 바벨론의 평안을 위해서 기도하라는 것은, 바벨론이 평안해야 너희도 평안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만약에 바벨론이 주변 국가들과 전쟁이라도 난다면 제일먼저 전쟁터에 보낼 사람은 포로로 끌려온 유대민족들입니다. 우리들도 내가 살고 있는 미국의 평안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미국이 평안하지 못하면 이 땅 살고 있는 모든 백성들도 평안하지 못합니다. 내가 일하고 있는 직장의 평안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내가 일하고 있는 직장이 평안해야 일하는 모든 사람들도 평안합니다. 그동안 우리의 기도는 내가 중심이었습니다. 나를 중심으로 가족들과 이웃들을 위해서 기도하였습니다. 이제는 좀 더 넓은 눈으로 세상을 내다보고 기도의 안목을 넓혀 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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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DaysChurch
Jan 13, 2024
In 목회칼럼
어떤 음식이든 골고루 먹어야 균형있는 영양으로 건강합니다. 입맛에 맞는 음식만 집중적으로 먹게 되면 영양의 불균형으로 온갖 질병의 근원이 될 수도 있습니다. 대개가 그래요, 당뇨질병을 가진 분들의 금기 식품은 단것들인데 입에서는 더욱 당긴다고 합니다. 혈압이 높은 분들은 싱겁게 먹어야 하는데 좀 짜게 드시고 계십니다. 체내에서는 먹어서 좋지 않은 식품들을 요구하고 있으며, 본인은 절제하느라 보이지 않게 싸우고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이런 모습이 영적으로도 동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골고루 먹어야 하는데 말씀을 편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예로 어느 분은 사복음서만 일 년 내내 읽고 있습니다. 또 어느 분은 시편만 일 년 내내 일고 있으며, 어느 분은 로마서만 집중적으로 읽고 있습니다. 어느 분은 좋아하는 축복의 말씀만 암기하고 있습니다.성경 66권중 불필요한 성경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 소중하고 귀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창세기부터 읽기 시작하여 마지막 권인 요한계시록까지 적어도 일년에 일독을 해야 합니다. 읽는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할 수 만 있다면 소리 내어 읽어보세요. 현대인들은 말하기보다는 문자나 또는 이미지로 대화하려고 합니다. 그럴수록 말수가 줄어들다보면 대화로 소통할 능력이 사라집니다. 인체구조는 많이 활용할수록 발달하고 활용하지 않고 놔두면 퇴화되어갑니다. 언어도 사용하지 않으면 퇴화되어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떡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생명의 말씀을 내 입술로 날마다 읽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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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DaysChurch
Jan 07, 2024
In 목회칼럼
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였습니다. 남들에게 감사하라, 감사하는 신앙생활 하라고 권면하기는 쉽습니다. 감사는 현실에서 부딪히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나도 모르게 감사가 나와야 합니다. 전광목사님의 행복한 감사학교라는 책에서 뒷북감사와 앞북 감사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우리들은 뒷북감사에 익숙해졌습니다. 어떤 결과를 보고서 하는 감사입니다. 결과를 보고서 하는 것은 감사할 수도 있고 불평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앞북 감사일 경우에는 아직 결과를 얻지도 못했는데 먼저 감사하는 생활입니다. 기도하면서 받은 줄 믿고 기도할 때 감사가 나옵니다. 그러나 기도하고 결과가 나오기까지 우리들은 감사를 잊어버립니다. 이것은 기도의 결과를 보고 감사하겠다는 생각이 마음에 깔려있습니다. 앞북 감사처럼 기도하고 받은 줄 믿고 감사하는 삶을 주님은 원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바울도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였습니다. 범사란 좋은 일이든, 궂은일이든 감사할 때 좋은 일은 더 좋은 일들로, 궂은일들도 조차도 좋은 일들로 바뀝니다. 2024년 일 년 내내 감사가 내 마음에서 충만하여 내 입술로 감사 찬양만 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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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07, 2024
In 목회칼럼
모든 일들을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면 다 감사하게 여겨집니다. 은혜로 여기니까 감사로 여겨지면서 버릴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이래서 불필요하게 여겨지고, 저것은 저래서 불필요하게 여겨지니까 다 버려야 할 것으로 알았는데, 은혜로 여기고 감사함으로 받아드리니까 버릴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2023년 마지막 날을 보내면서 버린 것들이 있습니다. 무엇을 버렸을까요? 364일을 매일같이 버렸고 오늘 마지막 날도 보내면 우리들 생애에서 다시는 돌아오지 아니하는 한해를 미련 없이 버립니다. 한해를 뒤돌아보면 정말 잊고 싶지 않은 좋은 일들도, 반대로 다시는 생각하고 싶은 좋지 않은 일들도 아무런 미련도 없이 마지막 달력을 찢어버리듯 세월 속에 보냅니다. 그러나 세월은 흘러, 흘러서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세월은 쌓여만 가고 있습니다. 세월이 쌓인 것이 자신의 연륜이며, 역사입니다. 영원토록 기억에 남기고 싶은 일들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들도 내 개인의 역사 속에 쌓였습니다. 단지 우리들 머릿속에서 망각했을 뿐입니다. 모든 일들을 하나님의 은혜로 여길 때 좋지 않은 일들도 은혜로 여겨집니다. 오히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통해서 다시금 일어설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2023년 한해를 보내면서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로다, 은혜로다 고백하면서 2024년 새해에 큰 그림을 준비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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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 24, 2023
In 목회칼럼
동방에서 별을 보고 예루살렘까지 찾아온 박사들은 유대인들에게 질문합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유대 땅을 다스리는 왕이 없다는 것인가! 분명히 헤롯이 유대의 왕으로 재위 중인데,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리를 하는가.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왕을 찾는다는 질문이 사실은 소문으로 번지기 시작했습니다. 예루살렘일대가 이상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소문이 왕의 귀에도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의 귀에도 들어갔습니다. 난데없이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를 찾는다는 소문에 가장 불안하게 여기는 사람은 헤롯왕입니다. 무슨 반역이라고 일어났는가? 자신의 권력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여기면서 먼저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을 소집하였습니다. 왕은 이들에게 그리스도가 어디에서 나겠느냐?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대답하기를 유대 땅 베들레헴이라고 일러주었습니다. 어느 지명에서 그리스도가 출생할 것을 확인하고, 이번에는 동방에서 온 박사들을 은밀하게 왕궁으로 초청하였습니다. 왕은 박사들에게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는 베들레헴으로 먼저 가라, 가서 그리스도를 찾거든 내게도 일러주라,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리라. 왕도 그리스도를 찾아가서 경배하겠다고, 그러나 왕에게는 또 다른 음모가 숨겨져 있었습니다. 정적을 찾아서 제거할 마음을 가졌음을 하나님은 아시고는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께 경배하고 왕에게 연락을 하지 않고 자기네 나라로 돌아가도록 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왕은 어디 계실까? 현직 대통령일까? 아니지요 왕으로 오신 예수님은 우리들 마음에 와계십니다. 이미 와 계신 왕되신 예수님이 언제 오시냐고 할 것이 아닙니다. 아직도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모르는 이웃들에게 아기 오심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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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 16, 2023
In 목회칼럼
하나님은 왜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온갖 고난을 겪게 하시고 마지막에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게 까지 하셨을까? 바울은 디도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딛2: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은 우리가 겪어야 할 죄의 대가를 예수님이 대신 다 지심으로 우리는 모든 죄에서 속량 즉 아무런 죄가 없다고 무죄판결을 받게 하셨습니다. 아무 죄가 없이 깨끗하게 세우시면서 앞으로 선한을 열심히 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선한 일을 얼마나 하고 계시는지요? 선한 일이란 복음 전도입니다.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서 나를 죄에서 건져내셨습니다. 죄에서 건짐 받은 우리는 세상의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세상에서도 국민은 국가가 원하는 의무를 지켜야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 나라에서의 백성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백성이 되라고 하였습니다. 선한 사역이란 복음의 확장입니다. 눈에 보이는 영토 확장이 아니고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시오노 나나미 여사가 쓴 로마인 이야기에서 중국과 로마를 이렇게 비교하였습니다. 중국은 자신의 영토를 지키려고 높고 그리고 길고 긴 만리장성을 쌓았다고, 그러나 로마는 자신의 영토를 개방하려고 십만마일 이상의 도로를 닦았다고 하였습니다. 복음도 인간관계도 중국식으로 나를 감추고 보호하려고 마음의 성을 높이 쌓을수록 단절됩니다. 그러나 로마처럼 마음을 열었을 때 관계가 넓어지고 복음의 길도 넓혀집니다. 대강절을 보내면서 마음을 열어놓고 관계를 넓혀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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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 14, 2023
In 목회칼럼
해마다 맞이하는 기독교 절기를 별스럽지 않게 여기면서 보내기도 합니다. 여러 절기 중에서 기억에서 확실하게 남아있는 절기들이 있습니다. 성탄절, 사순절, 부활절, 성령강림절과, 절기는 아니지만 미국명절인 추수감사절 이 정도는 잘 알고 보내는데 좀 생소하게 여겨지는 절기들도 있습니다.   대강절, 현현절과 왕국절은 있는지 아니면 듣기는 들었는데 이해하지 못하고 보내기도 합니다. 그리고 절기별로 상징적인 색깔이 있습니다. 여러 절기 중에서 가장 먼저 시작되는 대강절 또는 대림절이라고 합니다. 대강절을 나타내는 색깔은 보라색을 사용합니다. 아기예수오심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절기면서 오늘날 우리들은 재림의 예수님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절기입니다. 두 번째 절기는 성탄절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는 절기로 흰색을 사용합니다. 세 번째 절기는 현현절로 인류에게 하나님의 선물인 예수님을 보내셨을 때 제일 먼저 찾아온 사람들은 이방인들입니다. 유대인들에게 메시아를 보인 것이 아니고 이방인들에게 메시아를 보여준 절기로 흰색을 사용합니다.   네 번째 절기는 사순절로 부활절 전날까지이며 색깔은 보라색을 사용합니다. 다섯 번째 절기는 부활절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로 흰색을 사용합니다. 여섯 번째 절기는 오순절로 부활절로부터 50일째 날입니다. 이날을 성령강림절이며 교회의 탄생일로 적색을 사용합니다. 일곱 번째 절기는 왕국절로 기독교 달력으로는 마지막 절기입니다. 왕국 절 기간 중에는 초막절이 있으며 이때 녹색을 사용합니다. 절기별로 상징하는 색깔의 의미를 보면 보라색은 참회와 인내와 준비를 의미하며, 흰색은 기쁨과 승리를 의미하며, 적색은 불과 열심과 사역을 의미하며, 녹색은 희망과 생명과 성경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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