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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um Posts

NewDaysChurch
Oct 12, 2024
In 목회칼럼
한국의 김창옥 교수가 어느 강연에서 말하기를 인간이 전달하는 언어의 종류는 네 가지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네 가지 언어전달 방법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전달하는 방법과도 같습니다. 이중에서 첫 번째는 잔소리로 전달하는 언어가 있습니다. 잔소리를 이렇게 말합니다. 맞는 말인데 기분 나쁘게 들리는 언어라고 합니다. 가정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입니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지극히 정상적인 말을 하는데 듣는 자녀들은 부모의 잔소리로만 들립니다. 그렇다면 하나님도 우리들에게 몇 번씩 말씀을 주실 때 하나님의 말씀을 잔소리로 들릴까요. 듣기 싫어한다면 하나님의 잔소리로 여기지만, 하나님의 잔소리를 경고의 말로 들릴 때 은혜가 됩니다. 두 번째는 정보의 언어전달법이 있습니다. 아무런 감정 없이 필요한 정보만 전달합니다. 필요한 말 외에는 일절 없습니다. 한국의 기성세대 남성분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이방인 고래스 왕이 바벨론을 정복하고 유대백성들을 유대 땅으로 돌려보낼 때 필요한 정보만 전달했습니다. 고래스 왕은 여호와께서 내게 명령하기를 너희들은 돌아가서 성전을 재건하라고 필요한 정보만 전달했습니다. 세 번째는 감성적 언어가 있습니다. 왕은 정보만 전달했지만 하나님은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서 아주 따뜻하고 감성적인 언어로 유대백성들에게 전하였습니다. [슥2:10] 시온의 딸아 노래하고 기뻐하라 이는 내가 와서 네 가운데 머물 것임이라. 이어서 [슥10:8] 전에 번성하던 것같이 번성하리라. 유대민족의 회복을 말씀하셨습니다. 네 번째는 행동의 언어, 반복되는 행동을 유심히 살펴보면 행동을 통해서 전하는 언어가 있습니다. 감성적 언어전달에 부족한 분들이 행동을 통해서 자신의 감정을 전달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떤 행동을 통해서 자신의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 예배드리는 행동으로 내가 주님을 사랑함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때 주님도 나를 기억하시고 나도 주님을 기억할 때 자녀들까지도 은혜의 반석위에 세워주십니다.
내가 전달하는 언어는? (24년10월13일)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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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DaysChurch
Oct 05, 2024
In 목회칼럼
비싼 명품핸드백 속안에 들어있는 돈의 가치와 가격이 저렴한 핸드백 속안에 들어있는 돈의 가치가 다를까? 절대 다르지 않고 똑같은 돈의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비싼 명품 손목시계의 시간과 저렴한 손목시계의 시간이 다를까요? 절대 다르지 않고 동일합니다. 이 말씀은 겉으로 보이는 가치가 내면의 가치를 높여주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겉모습에 신경을 쓰고 투자하는 것은 자신의 가치를 높여보려는 수단입니다. 내 모습을 아무리 잘 꾸미고 명품으로 휘감았을지라도 내가 나를 보려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보는 사람들을 위해서 잘 꾸밉니다. 자신의 겉모습에 많은 투자를 하는 경우를 보면 다는 아니지만, 자신의 공허함을 채우려고 보이는 겉모습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마음이 공허함을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 겉모습의 치장으로는 공허한 마음을 채울 수 없습니다. 겉모습만 화려하게 치장할수록 내면에는 텅 빈 상태로 내공에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겉모습은 보잘것없어 보이고 약하게 보일지라도 내면을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와 예배로 채워져 있다면 내공이 튼튼합니다. 내공이 튼튼할 때 어떤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아니하고 요동치 아니하고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항상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도로, 예배로 내 내면을 채움으로 요동치 아니하는 믿음이 되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내면의 가치를 어떻 높일 수 있을까? (24년 10월6일)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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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DaysChurch
Sep 28, 2024
In 목회칼럼
누군가가 내게 선물을 줄때, 대가성으로 주는 것이라면 당연히 사양해야 하지만, 아무런 대가성이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나에게 준다면 받아야 합니다. 어느 분은 부담스럽다고 거절하기도 하는데, 받는 것도 훈련입니다. 받는 훈련이 잘되어야 주는 훈련도 잘 합니다. 우리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자녀 되는 우리들에게 항상 선물을 주고 계십니다. 무슨 선물을 항상 주고 계시는가? 나는 받아본 일이 없는데, 무엇을 주고 계실까, 선물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선물이 더 값지고 소중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어떤 선물을 항상 주고 계실까? 구원의 은혜를 주고 계십니다. 그러나 때로는 고난도 선물로 주십니다. 나의 삶속에 불쑥 찾아온 불청객이 있습니다. 불청객은 경제적인 문제로, 물질적인 문제로, 때로는 인간관계의 문제로 찾아옵니다. 세상 살면서 이런 선물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우리에게 선물로 주십니다. 선물을 받은 우리는 내게 찾아온 불청객을 원망하지 않고 불평하지 않고 잘 대접했더니 불청객들이 떠나면서 정말 큰 선물을 주고 가십니다. 무슨 선물을 주실까? 성숙된 인격을 선물로 주십니다. 세상 살면서 부딪치면서 살아가는 것이 지극히 정상입니다, 부딪치면서 아픔을 느낄 때 내가 살아있는 증거입니다. 어떤 부딪침에서도 원망도 불평도 불만도 없이 묵묵히 헤쳐 나가세요. 이때 우리에게는 성숙된 인격을 선물로 주심에 감사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인격을 선물로 주십니다 (24년9월29일)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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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DaysChurch
Sep 22, 2024
In 목회칼럼
사람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맺어가고, 잘 어울리는 사람을 사회성이 좋다고 말합니다. 이와 반대로 사람들과의 관계가 부족하고, 낯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힘들어 한다면 사회성이 떨어진다고 말합니다.        사회성이 좋아서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을지라도,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계실까? 참 잘하고 있는 나로 기억하고 계실까? 아니면 참 못된 사람으로만 기억하고 계실까?        어느 누가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말할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어떤 마음으로 창조하셨을까? [시편8편4절 (공동번역)]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생각해 주시며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보살펴 주십니까?        하나님은 내가 무엇이기에 나를 생각하시고 나를 돌보시는 것일까? 나를 어떤 존재로 여기고 계실까? 하찮은 미생물로 여기실까? 아니면 존귀한 사람으로만 여기실까? 이에 대한 해답은 [시편8편5절]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라는 말씀에 있다.        우리들을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창조하시고는 창조한 사람을 존귀하게 돌보고 계십니다. 선택된 나를 존귀하게 여기지 아니하시고 혹시라도 후회하지는 않을까?        하나님이 보시기에 괜찮은 존재로 기억되고자 한다면, 나를 처음 선택하셨을 때의 모습으로 항상 돌아가야 나를 선택했음에 후회가 없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계실까? (24년9월22일)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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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 14, 2024
In 목회칼럼
현대인들의 재앙 중에 하나가 분주함이라고 말합니다. 무언가에 쫓기듯 항상 마음이 조급해 합니다. 별일도 아닌데 마음의 여유가 없다보니 발끈 발끈하면서 화를 냅니다. 발끈 화를 내고 돌이켜보면 그게 화낼만한 일이었던가!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문제를 스스로가 확대 해석하면서 남들도 나와 같을 거라고 착각합니다. 이제는 마음의 여유를 만들어야 합니다. 오죽하면 한국에서는 모든 것을 잊어버리는 멍 때리기 대회가 있을 정도입니다. 아무런 생각 없이 머리를 텅 비워보는 시간이 필요로 합니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마음의 여유를 가질 만하면 새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재미있는 유투뷰에 빠집니다. 여기에서 아주 좋은 정보도 얻지만 숏츠 영상을 즐기다보면 시간 보내기에는 아주 편리합니다. 잠시라도 멍 때리듯 머리를 비웠으면 했지만 세상은 우리를 놔두지 않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숏츠 영상도 접어두고 먼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주님만을 생각해보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무엇이 우리를 바쁘게 하는가? (24년9월15일)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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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 07, 2024
In 목회칼럼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현재 내가 누리는 자유는 부족하다고 여겨지는가요? 아니면 현재 내가 누리는 자유가 충분하다고 여기는가요. 민주주의 국가에서 자유를 누리는데 부족하다고 여전히 항의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자유의 한계는 어디까지 일까요! 내 마음대로, 살고 싶은 대로 살아갈 때 어느 누구도 참견하지 안해야 진정한 자유인가! 예수님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면서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통해서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자유함을 주셨을까요? 예수님이 [요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무엇이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고 하셨나요? 진리를 알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때 자유함을 누립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면서 자유를 주셨으니 자유를 누리며 사는 것이 축복이요 하나님의 뜻이기도 합니다. 진리를 통해서 얻어지는 자유는 육신은 감옥에 갇혀있어도 영적으로는 자유함을 누립니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의 근원은 진리라고 하였습니다. 진리의 길은 어떤 길인가요? 하늘로 통하고 있습니다. 진리가 곧 길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진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구하는 진리는 절대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말씀이 진리요, 이 말씀은 우리들 손에, 우리들 눈앞에 있습니다.
자유함을 누려라(24년9월8일)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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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 31, 2024
In 목회칼럼
세상을 둘러보면 정말 볼거리가 무궁무진합니다. 평생 보고 싶은 것을 다 보지도 못하고 죽는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볼거리가 넘치는데 보는 것들이 다 즐거움이 되기도 하지만, 슬픔이 될 수도 있는 환경을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내 환경이 힘들 때에는 무엇을 바라보아도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도 삶에서 위로를 받고자 마음의 여유를 갖고 여행을 떠나기도 합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마음에 있는 모든 것들이 완전히 회복이 될 줄 알았습니다. 현실로 돌아와 보니 여전히 고난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시 현실과 부딪히면서 어려움을 벗어나고자 몸부림을 칩니다. 이럴 때 나는 무엇을 바라보는 믿음인가? 수없이 들어왔던 말씀들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러 보낸 말씀 중에서 먼저 모세를 생각해봤습니다. 모세는 80세에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았습니다. 너를 바로 왕에게 보내어 애굽에서 430년간 종살이 하던 네 민족들을 탈출시키겠다고 하였습니다. 이때 모세는 하나님께 세 가지를 항변하였습니다. 첫째는 나를 따르는 사람이 없다. 두 번째는 나에게는 은사도 없다. 세 번째는 나는 말주변도 없다. 모세의 세 가지 항변을 들으신 하나님이 네 손에 무엇이 있느냐? 내 손에는 지팡이가 쥐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네 손에 지팡이 하나면 됐다고 하였습니다. 세상에서 어려움이 닥치면 많은 것이 있어서 해결이 아니고 모세의 손에 쥐고 있던 지팡이 하나면 충분하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들에게도 무언가를 가지고 계십니다. 물질보다는 인간관계보다는 먼저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 우편 보좌에 앉으신 예수님만 바라보세요. 바라보는 내 눈이 예수님과 눈이 맞춰질 때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습니다.
주님만 바라보세요(24년9월1일)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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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 24, 2024
In 목회칼럼
중국의 장자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 이간질하는 사람, 남의 단점을 말하는 사람,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과는 인연을 맺지 말고 손절하라고 하였습니다.  장자의 말도 일리가 있지만, 물건도 고장 나면 고쳐서 사용합니다. 내가 살던 집도 더 편리하게 고쳐서 사용합니다. 그런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을 고칠 수 없다니, 사람은 한 번 태어나면 죽을 때까지 변화되지 못한 채 사는 것일까?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을 어떻게 찾으라는 것일까? 그러면 사람과의 관계는 어떻게 맺어나가야 하는가?  사람은 환경에 의해 타고난 천성도 고칠 수 있습니다. 환경에 의해 성품이 망가지기도 하지만, 환경에 의해 성품이 고쳐지기도 합니다. 특히 예수님을 만나면, 어떤 악한 성품도 고쳐집니다.  물론, 천성이 악했던 사람이 예수를 만나고 변화되어 많은 사람에게 간증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사람이 환경에 의해 다시 자신의 악한 성품으로 돌아가기도 합니다. 그럴지라도 예수님을 만나 변화되었다가 변질된 사람도 다시 예수님의 사랑 안으로 돌아옵니다.  이것을 보면 예수님을 믿는다고 우리의 죄를 싹 지워버린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신 대속해 주심으로 예수님의 보혈의 피로 덮어있습니다. 죄를 덮어놨던 보혈의 피를 잊어버릴 때 다시 악한 성품이 나옵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서게 될 때,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기 전에 온전한 선한 성품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24년 8월 25일)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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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DaysChurch
Aug 17, 2024
In 목회칼럼
어느 책에서 말하기를, 마음이 젊어지면 몸도 젊어진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젊어지지 못하는 이유는 마음속에 근심과 걱정이 많은 탓입니다. 걱정처럼 마음을 좀먹는 것도 없으며, 근심처럼 마음을 시들게 하는 것도 없습니다. 이처럼 걱정이 커지면 좌불안석으로 안절부절 못합니다. 근심이 많아지면 나무의 이파리가 마르기 시작하면서, 나중엔 나무 본체도 말라 죽게 됩니다. 이렇게 근심과 걱정이 많아질수록 무서운 현상이 내 몸에서 일어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근심도 걱정도 떨쳐 버릴 수 있을까? 생각의 정리가 필요합니다. 근심되고 걱정되는 생각의 방향을 주님께로 돌려야 합니다. 어떻게 세상으로 향한 마음을 주님께로 방향을 바꿀 수 있을까?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하였습니다. 아무런 감정도 없이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 아니고 감사한 마음으로 찬양하라고 하였습니다. 감사가 인생의 답이라고 하였듯이 감사한 마음이 세상으로 향했던 마음에서 주님께로 향한 방향이 바뀌게 됩니다. 내안에 감사가 충만할 때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예수의 이름을 힘입고 하나님아버지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어려운 문제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가 대적할 능력도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오직 주만 바라보는 믿음으로 어떤 환경에서도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무엇을 바라보는 믿음인가?(24년8월18일)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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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DaysChurch
Aug 10, 2024
In 목회칼럼
교회의 주인은 누구일까요? 물론 보이지 아니한 하나님이 주인이십니다. 그렇다면 보이는 주인은 누굴까요? 자신이 교회의 주인으로 생각하는가 하며, 자신은 교회의 일꾼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인이 많으면 일을 하지 않고 뒷짐 지고 다니면서 지적만 한다고, 반대로 일꾼이 많으면 일은 열심히 하는데 책임질 사람이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 모두는 교회의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주인은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어떻게 교회가 돌아가는가요? 주인은 누가 시켜서 일을 하지 않고 스스로 알아서 일을 합니다. 또한 주인은 어디에서나 책임을 지는 사람입니다. 세상이나 교회에서 책임을 지는 것처럼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책임을 질줄 알면 주인이요, 주인이 있는 곳에 하나님나라가 이루어집니다. 하나님나라는 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나라는 내게 온다고 하였습니다. 자유로운 곳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자유민주주의는 자유라고 외칩니다. 조금만 불편해도 자유를 달라고 외칩니다. 자유란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자유는 누리면서도 책임을 피합니다. 책임은 피하면서도 자유는 외칩니다. 감사를 외치면서도 감사하지 못한 삶을 살아갑니다. 감사도 책임을 질줄 알아야 합니다. 모든 것을 감사하다고 말은 잘하는데도, 조금만 힘들면 감사를 외면하며, 책임을 남들에게 전가하려 합니다. 잘했다는 공로는 내가 가로채고 잘못은 남들에게 전가하는 것은 일꾼이 하는 일입니다. 주인은 잘했다는 공로는 남들에게 돌리고 잘못은 자신이 짊어지고 책임을 집니다. 또한 감사하는 사람은 끝까지 주인이 되어서 모든 공로는 주님께로 그리고 이웃들에게 돌립니다.
또한 감사하는 사람이 되자 (24년8월11일)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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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DaysChurch
Aug 03, 2024
In 목회칼럼
세상에는 수 많은 종교들이 있으며, 각 종교마다 특색 있는 언어들이 있습니다. 특색 있는 언어만 들어도 저분은 어떤 종교를 가졌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많은 언어들을 구사하면서 자신의 종교적인 언어를 자신도 모르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에서 제일 많이 사용하는 단어라면 사랑과 감사가 아닐까요. 감사가 내 입에서 인색하면 놀랍게도 사랑도 인색하며, 메마른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기독교에서는 무엇이 그렇게도 감사한가요? 하나님은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하필이면 나를 선택했을까! [사43:1]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구속하였다는 단어는 대속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여 나의 모든 죄를 내가 대신 져줌으로 나는 죄인이 아니고 나를 의롭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의로운 나를 하나님의 것으로 삼으셨음에 감사하라고 하였습니다.  감사를 잘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감사가 메마르고 인색하면 삶도 역시 메마르고 인색합니다. 감사를 통해서 행복하면 예수님에게도 이웃들에게도 기쁨을 줍니다. 예레미아 선지자는 온갖 핍박과 고통 속에서도 기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였습니다. 어떻게 핍박과 고통 속에서도 기쁨과 즐거움이 있었을까? [렘15:16]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라.  하나님의 말씀을 내 입으로 먹고 내 귀로 들을 때 무의식적으로 내게 기쁨이 있습니다. 마음의 즐거움으로 감사한 삶을 살아가는 한 주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기독교의 언어들 (24년 8월4일)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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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 27, 2024
In 목회칼럼
이웃들에게 행복을 많이 준다고 내 행복이 줄어드는 것이 아닙니다. 많이 주는 만큼 내 행복은 더 늘어납니다. 행복한 사람은 표정과 언어가 다르고 행실이 다릅니다. 내가 행복한 삶을 누릴 때 이웃들이 먼저 알고 다가옵니다. 그러나 풍요로운 속에서도 지지리 궁상을 떨며 살아갈 때 이웃들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 아니고 피합니다. 행복도 불행도 전파됩니다.  오늘도 행복을 전파하시기 바랍니다. 열악한 선교지에 가면 선교사님들이 신신당부합니다. 원주민들의 삶을 보고 절대 혀를 차지 말고, 이들의 삶을 인정 해주라고 합니다. 내 환경과 비교하니까 혀를 차면서 불쌍하게 여깁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삶에서 전혀 불편 없이 행복하게 살아간다고 합니다. 원주민들에게 절대 혀를 차지 말라고 했음에도 이들의 삶이 너무 불쌍해서 애처롭게 바라보니까 원주민도 눈치를 채고는 선교사에게 통역을 부탁하면서 말합니다.  당신들의 삶은 풍요로워서 우리들의 환경을 보고 애처롭게 보일지라도 우리들은 아무런 불편함 없이 행복을 누리면서 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안쓰럽게 애처롭게 바라보던 사람이 오히려 얼굴이 부끄러웠다고 합니다. 행복해지려면 몸과 마음을 비우고 베푸세요. 베풀 때 더 큰 행복으로 채워주십니다.
행복을 베푸는 만큼 더 행복해진다(24년7월28일)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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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 20, 2024
In 목회칼럼
기계도 일정시간을 사용한 후에는 점검하기 위해서 세웁니다. 사람도 열심히 일하다가 쉬어야 할 때 쉬어야 힘을 충전합니다. 그래서 쉰다는 것은 낭비가 아닙니다.  긴 문장에서도 마침표보다 중간에 쉼표를 주어서 내용이 계속 이어지게 합니다. 음악에서 악보에 쉼표가 있고, 동양화에서는 여백이 마치 쉼표와 같기도 합니다. 현대사회에서 육체적 노동이든 정신적 노동이든 쉼이라는 쉼표가 있어야 건강합니다. 대나무의 마디를 보면 마디의 간격이 길기도 하지만 아주 짧은 간격의 마디도 있습니다. 마디가 긴 대나무보다는 마디의 간격이 짧은 대나무는 절대 부러지지 않습니다. 인생도 마디의 간격이 짧아야 삶의 여유가 있으며, 힘차게 전진할 수 있습니다. 대나무와 인생에서의 마디가 곧 쉼이기도 합니다.  삶의 여유는 물질적 여유보다 마음의 여유를 찾을 때 인생의 여백과 쉼표가 생깁니다. 휴가를 통해서 삶의 쉼표를 찍고 다시 재충전하여 주어진 일에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쉼표가 있는 인생(24년7월21일)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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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 13, 2024
In 목회칼럼
외부에서 활동이 많은 분들이 올해 여름 보내기에 유난히도 힘겨워합니다. 얼마나 불볕더위인지 한창 자라야 할 잔디들이 정상적으로 자라지 못하고 있습니다. 애틀랜타 지역에서 여름철 잔디 관리는 6월부터 9월까지는 매주 한 번씩 깎아 주어야 하는데 올해는 불볕더위 탓인지 잔디들이 성장이 더디면서 화상을 많이 입었습니다. 현재의 계절을 보면 가장 깊은 여름철인 삼복더위를 보내고 있습니다.  7월 15일은 초복이며, 10일 후인 25일은 중복이며, 다시 20일 후인 8월 14일은 말복입니다. 초복에서 말복까지의 한 달 동안이 가장 덥다고 하여 삼복더위라고 합니다. 이러한 더위가 있어야 곡식과 열매들이 잘 결실합니다. 가장 무더운 삼복을 통과해야 꽃은 새로운 생명체인 열매를 맺기 시작합니다. 또한 삼복이 지나감으로써 여름도 지나 가을을 준비합니다.  잠17:3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 이처럼 인생도 한여름을 지나듯 한 뜨거운 과정을 잘 견딜 때 축복의 길로 인도합니다. 고진감래라고 하듯이 고생 끝에 즐거움이 온다는 말처럼 인생의 쓴맛을 맛본 후에 깊은 단맛을 안다고 합니다. 삼복의 뜨거운 계절을 보내시고 은혜의 가을을 준비하시기를 바랍니다.
삼복더위(24년 7월14일)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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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 06, 2024
In 목회칼럼
한국의 인물사진 작가 조현세는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찍으면서 느꼈던 감정을 이렇게 말을 하였습니다.  “자기 얼굴을 보고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이 제대로 삶을 살아온 사람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자신의 타고난 얼굴이 나이에 비해서 부끄럽다고 하면서 인위적으로 만듭니다. 얼굴에 주름이 많다고, 얼굴에 살이 많아 늘어진다고, 너무 살이 없다는 등으로 생긴 모습에 부끄러워하면서 약품과 수술 등으로 좀 더 젊게 보이려고 합니다.  자기 얼굴의 주름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인생의 연륜이라 여기는 분들도 계십니다. 사람은 나이로 사는 것이 아니고 역할로 산다고 말합니다. 사회에서나 가정에서나 우리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특히 믿음의 사람들은 히브리서 13장 1~3절에서 올바른 삶 세 가지를 말씀하였습니다.  첫 번째는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라고 하였습니다.  두 번째는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세 번째는 고난 중에 있는 이웃들을 생각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도 히브리서에서의 말씀처럼 계속하고, 잊지 말고, 생각하면서 믿음의 덕을 세워나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올바른 삶이란 (24년 7월7일)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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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DaysChurch
Jun 29, 2024
In 목회칼럼
인간관계에서 말없이 서로 통하는 관계, 즉 서로 간에 소통이 되는 관계가 있으며, 아무리 설명을 해주어도 벽창호처럼 통하지 않는 관계를 불통이라고 말합니다.  가장 힘든 관계는 말이 통하지 않는 관계로, 말이 통하지 않으니, 마음도 통하지 못합니다.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감정발달이 잘될 때 누구든지 소통이 됩니다. 그러나 공감하는 감정발달이 미숙하면 자기 의견만 내세우고 고집을 피웁니다. 이런 사람과 어떻게 공감을 이루고 협력을 할 수 있나요? 서로 간에 소통이 아니고 불통 된 관계가 지속되면 보이지 않는 두꺼운 벽이 가로막히면서 불신하는 관계로 이어집니다.  한여름 선풍기도 에어컨도 없는 방안에 외부에서 들어오는 바람이 들어오면 시원합니다. 바람이 통해야 시원합니다. 이렇게 눈에 보이는 것들과도 소통이 잘될 때 시원함을 느끼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주님과 나는 소통되는 관계인가? 나와 주님과 소통이 되지 않으면 통로가 막힌 것입니다. 불통된 상태입니다. 전화 라인이 끊겨 불통 상태에서 아무리 여보세요라고 외쳐도 아무런 응답이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간관계에서 소통을 주장하면서도 주님과 나와의 소통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영적으로 막혔는데도 열심히 외칩니다. 주여! 주여! 라고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어도 아무런 응답이 없습니다.  먼저 주님과 나와는 소통되는 관계인가 불통 된 관계인가를 살펴보시고, 막혀있다면 말씀으로 찬송으로 기도로 뚫어야 소통이 됩니다. 영적으로 항상 소통하는 관계가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소통인가? 불통인가? (24년 6월30일)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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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 22, 2024
In 목회칼럼
좋은 집에 살고 좋은 자동차를 타고 다니고 세상에서 말하는 명품 브랜드 옷과 가방과 신발을 신었다고 자신의 가치가 상승할까? 허름하고 누추한 집이라도 존경받는 유명한 사람이 살고 있다면 명소가 되어 사람들이 많이 방문하게 됩니다.  반대로 대궐 같은 집이라도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사람이 살고 있다면 지나가면서 누구의 피와 눈물을 흘리게 하면서 저렇게 좋은 집에서 살고 있다고 칭찬이 아닌 비난을 할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잘난 맛에 산다고 말합니다. 그런가 하면 자기 잘난 맛을 잊어버리면 자신의 인생을 쓰레기처럼 버리고 싶어 합니다. 자기 잘난 맛을 잊어버리면 자신의 가치를 낮춰버리고 왜 나만 못났을까 하고는 남들과 비교하면서 자기를 비하합니다. 그럴수록 자신의 가치는 더욱더 하락하여 세상에서 무용지물처럼 여깁니다. 자존심이 나중에는 열등감으로 변하여 사회성도 뒤떨어지는 삶이 됩니다.  나는 누구인가? 정말 하나님의 자녀임에 확신하는가! 내가 누구인가를 알 때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임을 알게 됩니다. 데카르트가 말하기를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철학자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자신만의 세계를 생각할 것이나, 우리들은 오로지 하나님을 생각할 때 주안에서 나의 존재적 가치를 하나님의 자녀로 높여줍니다.  자신의 가치가 높아질 때 사소한 시빗거리도 발끈하지 않으며 대수롭지 않게 넘깁니다. 대범하게 넘길 때 사람들은 나의 인격을 높여줍니다. 내 인격을 높여줄 때 나의 가치도 높아집니다.
자신의 가치를 높이라(24년 6월 23일)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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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 15, 2024
In 목회칼럼
한국의 성공회대학교 김찬호 교수가 펜데믹을 보내고 있는 2022년에 대면 비대면 외면이라는 책을 출판하였습니다. 인간관계는 대면함으로 관계가 형성됩니다. 그러나 2020년도 초반에 전 세계를 흔들었던 펜데믹을 겪으면서 사람이 직접 만나서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는 것을 법적으로 처벌하는 기이한 사회가 형성되었습니다.  이때 만들어진 단어가 비대면이었습니다. 대면의 반대말인 비대면이 지극히 정상적 사회적인 삶처럼 여겨지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가까운 친구라 할지라도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하기보다는 영상으로 또는 통화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보편화 되어갑니다.  이런 사회적 현상 속에서 또 하나의 문화가 유행하고 있습니다. 가까운 가족들, 친구들, 이웃들은 그래도 비 대면인 영상통화 등으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관계의 범주에 들지 못하면 어느 순간 외면하는 관계로 변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사회학에서 발표되는 숫자를 보면 펜데믹 이후로 가족들 관계도 많이 비대면화 되어가고 있으며, 관심 밖의 이웃들과는 아예 외면하는 관계로 되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들은 얼마나 대면으로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지요? 물론 멀리 떨어진 가족들과는 비대면일지라도 영상통화를 할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해요. 오늘날의 가족들과의 관계는 어떠세요? 부모와 자식 간에도 서로가 바쁘다는 핑계로 전화조차도 힘들어하지는 않는지요?  인간관계는 자주 만나야 할 말도 많아지고 더 친밀한 관계가 이어집니다. 그렇지 못하고 잊어버릴 만하면 한 번씩 만나는 가족들도 할 말이 없어집니다. 예수님은 철저하게 대면하면서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이제는 그동안 자주 만나지 못한 가족들과도 친구들과도 이웃들과도 대면하면서 관계를 이어가면서 복음을 전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들은 대면하는 관계인가? 비대면 관계인가?(24년 6월 16일)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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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 08, 2024
In 목회칼럼
세상 어느 일이든 기초가 튼튼하면 나중 결과가 아름답게 나옵니다. 인생에서도 자신만의 기초를 닦기 위해서 끊임없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며칠 몇 개월이 아니고 몇 년이고 자신이 정해놓은 법을 지키려고 애쓰면서 실천해야 합니다. 남들이 뭐라고 하던 뒷담화를 하든 개의치 않고 지켜야 합니다.  노아는 120여 년간 산속에다 방주를 지을 때 얼마나 귀가 따가웠을까? 뒷소리와 손가락질뿐만 아니라 어쩌면 대놓고 조롱하였을 텐데, 어떻게 이런저런 소리를 이길 수 있었을까? 노아에게는 믿음의 기초를 튼튼하게 닦았기에 사람들의 소리보다는 하나님의 소리를 믿고 지켜서 끝내는 승리하였습니다. 우리는 노아 한사람이 하나님께로 바로 서 있을 때 온 가족들도 믿음에서 흔들리지 않고 오랜 세월을 방주를 지을 수 있었습니다.  인생은 초로와 같다고 말합니다. 눈 한번 감았다가 떠보니 우리들은 어디에 있어야 할까요? 하나님 나라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살아생전 믿음의 기초를 게을리하고 훈련을 게을리하다가 눈을 감았다가 눈을 떠보니 아랫동네에 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신앙은 매일 매일이 훈련입니다. 기초가 안 된 신앙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신기루처럼 보일 것입니다. 신기루는 헛것입니다. 착시현상입니다. 그럼에도 신기루를 사실인 것처럼 목숨을 걸고 쫓아갑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인생도 한낮의 꿈과 같이 지나갑니다. 개인도, 교회도, 국가도 꿈처럼 물거품처럼 사라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초를 튼튼하게 닦아가는 인생은 하나님 나라를 눈에 선히 보면서 다가가고 있습니다.
인생의 기초를 튼튼히 세우라(24년 6월8일)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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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 01, 2024
In 목회칼럼
옛말에 철들면 죽는다고, 사람이 무언가 알만하고 무엇을 좀 할 만할 때 되면 하나님은 부르십니다. 사람은 어머니 뱃속에 있는 동안 자신이 언제 세상으로 나갈지 얼마나 더 있어야 할지 모르고 열 달을 엄마 뱃속에 있습니다. 엄마 뱃속에서 자신의 형체가 하나씩 하나씩 만들어져 가는 과정을 모르고 있다가 때가 되면 세상으로 나옵니다. 이 땅에 태어나서 살아가는 과정을 우리가 얼마나 알면서 살겠어요. 앞날을 예측하지 못한 채 엄마 뱃속에 있었던 것처럼, 이 땅에서의 삶도 세월의 흐름에 맡기고 있습니다.  사람의 삶은 순간 순간이 모험이자 도전입니다. 인생을 모험으로 도전으로 살아가는 동안 생기가 있고 힘이 있고 소망이 있습니다. 모험으로 살아가면서 실패를 해도 다시 일어서서 도전합니다. 한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기회를 잡고자 했으나 놓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기회를 놓친 사람은 새로운 기회를 기다리다가 때를 만납니다. 마치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마음껏 역량을 펼치기도 합니다. 이럴 때 사람들은 말합니다. 위대한 역사를 이루었다고 평가합니다. 이런 저런 평가를 받으면서 자신의 삶을 뒤돌아볼 여유가 생깁니다.  인생의 끝은 어딜까? 어쩌면 내 코밑까지 따라왔습니다. 아니 발끝까지 따라왔습니다. 인생의 끝은 나와 동행하고 있습니다. 멀고 먼 곳에 내 삶의 끝이 기다림이 아니고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나와 동행하고 있습니다. 엄마 뱃속에 있는 태아처럼 세상으로 나갈 때를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 행복입니다.
나는 어디까지 왔을까? (24년 6월1일)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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