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um Posts

NewDaysChurch
Jul 03, 2022
In 목회칼럼
세상에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은 도덕과 윤리를 잘 지키고 사회로부터 지탄받지 않고 칭송받으며 살아야 사람답게 산다고 말합니다. 도덕과 윤리를 잘 지켜서 품위를 나타내려다 보니까 자칫 위선적인 면을 보여주게 됩니다. 속으로는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이면서도 겉으로는 점잖은 양반처럼 행세하는 것과 같습니다. 속이 텅 빈 사람이 겉으로 아는 체하며, 있는 체하면서 행세하는 사람을 만나면 잘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논어에서 말하기를 대인(大人)은 화이부동(和而不同), 남들하고 화목하게 지내나 무턱대고 어울리지 아니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소인(小人)은 동이불화(同而不和), 어울리는 것 같으나 화목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사람이 사람을 골라서 만날 수는 없습니다. 모두와 사이좋게 지내야 합니다. 그러나 누구와 자주 만나는가에 따라서 똑같이 취급당하기도 합니다. 사회적으로 덕망 있는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나도 덕망 있는 사람처럼 인정받습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나도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처럼 취급당합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사람답게 살 수 있을까요?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켜 내 사랑 안에 살라.” 예수님의 사랑 안에 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살아갈 때 충만한 기쁨을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기쁨이 충만할 때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을 주십니다. 이웃을 배려하는 것은 곧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크리스천이 크리스천답게 살아가는 법은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이웃들과 나누는 것입니다.
0
0
0
NewDaysChurch
Jun 26, 2022
In 목회칼럼
사람은 누군가를 사모할 때 우러러 본다고 말합니다. 내가 사모하고 우러러 보는 대상은 누군가? 물질인가, 사람인가? 세상에서 부요를 쌓고자 물질만을 우러러 보는가? 아니면 특정한 연예인 또는 스포츠인, 또는 정치인 등을 사모하며 우러러 보는가? 미가 선지자는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 본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들도 믿음의 대상인 여호와 하나님만을 우러러 보면서 생활하는가? 우러러 본다는 의미는 경외하는 마음이기도 합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우러러 볼 때 하나님도 우리의 삶 속에서 나를 대적하는 자에게서 건져주십니다. 이렇게 이 땅에서의 어려움에 빠졌을 때 건져주심이 구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탈출하여 홍해를 건널 수 있도록 구원하여 주셨듯이, 우리들의 어려운 환경에서도 건져주십니다. 그리고 마지막 이 땅에서 육신의 장막이 무너지면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고 예수님이 건져주심이 구원입니다.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님만을 우러러 보면서 기도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0
0
1
NewDaysChurch
Jun 19, 2022
In 목회칼럼
어떤 사람이 행복한 아버지며 행복한 자녀일까? 아버지가 자녀에게 너희는 나처럼 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면, 자녀가 자신도 아버지처럼 살고 싶다 말한다면 아버지는 잘 살아온 것입니다. 그럴 때에 자녀가 아버지를 존경하는 행복한 관계가 형성됩니다. 그러나 자녀도 아버지도 불행한 관계가 있습니다. 자녀가 자신은 절대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고 말한다면, 아버지의 삶이 사회의 지탄을 받아 자녀가 아버지를 부끄러워한다면, 자녀가 아버지를 존경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불행한 자녀의 삶인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아버지도 자녀에게 너희는 절대 나처럼 살지 말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불행한 아버지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자녀의 거울입니다. 아버지가 어떻게 사는지 보며 자녀는 성장합니다. 자녀에게 인생의 거울이 되어주는 아버지가 되시기 바랍니다.
0
0
1
NewDaysChurch
Jun 12, 2022
In 목회칼럼
사람은 하루 동안에 수많은 말을 자신의 입술을 통해서 하며, 하루 동안 수많은 말들을 자신의 귀로 듣게 됩니다. 내 입술을 통해서 나간 말들을 자신이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 자신이 자주 사용하는 용어는 어떠한가? 내 입술로 나가는 언어는 내 마음에 쌓여진 내용들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눅6:45]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악한 말을 잘하는 사람은 악한 마음을 항상 마음에 품고 사는 사람이며, 선한 말을 하는 사람은 선한 마음을 항상 마음에 품고 사는 사람입니다. 아무런 뜻도 없이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듣는 상대방을 쓰러지게도 할 수 있습니다. 내 입에서 무심코 나간 말 같지만 사실은 내 마음에 악한 마음이 가득했던 것입니다. 이와 반대로 무심코 내 입술로 나간 말을 듣고 좌절에 빠진 사람이 듣고는 용기를 내고 일어나기도 합니다. 나도 모르게 무심코 던진 말 같지만 이미 내 마음에 선한 마음이 가득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내 마음에 무슨 마음을 품고 사느냐에 따라서 내 입술로 나가는 용어가 됩니다. 사도 바울도 말하였습니다. [빌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한 주간 내내 내 귀로도 수많은 말들을 듣게 됩니다. 수많은 말들 중에서 선한 말도 들을 수 있으며, 악한 말도 들을 수 있습니다. 혹시라도 악한 말을 듣더라도 내 안에 쌓여있는 선한 마음이 악한 말들을 정화시켜줍니다. 선한 마음이란? 예수의 마음입니다. 어떤 악한 독극물이 내 귀를 통해서 들어올지라도 예수의 마음으로 정화시켜줍니다. 예수의 마음을 품고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0
0
4
NewDaysChurch
Jun 05, 2022
In 목회칼럼
고상하다는 단어를 사전적 의미로 본다면, 행동, 취미 등의 수준이 높고 품위가 있다는 뜻입니다. 유럽에서도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귀족제도가 있습니다. 유럽 외에도 일부 이슬람 국가와 왕정제도가 있는 나라에서는 지금도 귀족제도가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부와 권력과 특별한 권리를 부여 받았지만 특별한 의무도 지켜야 합니다. 사회적 지도자인 귀족에게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라는 의무가 있습니다. 부와 권력과 명성을 가졌다면 사회에 대한 책임과 의무도 함께 해야 합니다. 오늘날에 귀족과 같은 지도자층이 고상한 자기 위치를 망각하고 갑질한다는 불명예스러운 호칭을 얻기도 합니다. 신앙생활에서의 고상함이란,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어서 새로운 존재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옛사람을 벗고 새 옷을 입었다면 다시는 옛사람을 입지 말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옛사람을 벗었다가 다시 입기도 하고, 다시 벗기도 하다 보니 고상하기도 하면서 저속하기도 합니다. 성경에서는 어느 때 고상하다고 하였을까? 빌립보서 3장 8절에서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이와 같이 신앙에서 가장 고상한 것은 세상 학문과 예술 등에 대한 지식보다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가장 고상하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들도 예수님을 닮아가고 따라갈 때 고상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이웃들에게 입술로 예수를 믿으라고 하기 전에, 예수님을 닮은 고상한 나의 삶을 통해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0
0
3
NewDaysChurch
May 29, 2022
In 목회칼럼
세상적으로 성공한 요셉이 21년만에 자신을 팔아버린 형제들을 만났습니다. 버림받은 사람과 버린 사람들과의 만남입니다. 버림받은 요셉은 애굽의 총리로 성공하였으며, 요셉을 버린 형제들은 가나안 땅에서 양식을 구하러 온 사람들입니다. 요셉은 형제들을 만남으로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자신을 팔아버린 형제들에게 앙갚음을 할 것인가, 용서를 할 것인가, 만감이 교차될 때 침을 한번 삼키고 생각해보니 자신을 버린 형제들에게 복수할 것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요셉이 성공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사람이 형제들입니다. 형제들이 자신을 버리지 안했으면 우물 안의 개구리를 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버림받았기에 더 넓은 세상에서 강대국의 총리로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21년간 버림받았다는 외로움의 한스러움과 혈육을 만난 정의 울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대성통곡하였습니다. 21년간 헤어져 살면서 형제들을 얼마나 미워했을까요, 그리고 얼마나 아버지를 그리워했을까요?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요? 애증의 관계인 형제들과의 상봉을 통곡의 눈물로 다 씻어버리고 사랑으로 만났습니다. 그래서 눈물은 치료하는 역할뿐만 아니라 회복하는 역할을 합니다. 요셉은 통곡의 눈물로 마음 속에 깔려있던 형제들과의 앙금을 깨끗이 씻어버렸습니다. 내안에 미움과 원한의 앙금을 눈물로 씻을 때 용서가 되고 사랑으로 연결됩니다. 눈물은 메마른 마음을 촉촉이 적시는 묘약입니다.
0
0
3
NewDaysChurch
May 22, 2022
In 목회칼럼
새날교회가 설립된 지 벌써 21년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21년을 하루같이 독수리의 날개로 품어주시듯 감싸주고 계셨습니다. 마치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과 같이 품어 주셨습니다. 21년간 별의별 일들을 겪으며 그 당시에는 어려움처럼 여겨졌지만 돌이켜보면 다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에 남게 하시니 감사할 뿐입니다. 많은 성도님들이 새날교회에서 은혜 생활하시다가 다른 교회로 떠난 분들도 계시지만 설립 때부터 지금까지 계신 분들도 계시니 감사하고 감사할 뿐입니다. 항상 목회자 자신을 들여다봅니다. 나는 성도님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는가? 그리고 성도님들을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랑하는가? 성도님들이 하루 종일 세상에서 일하고도 새벽예배와 저녁예배에 참여하시고 교회에서 행사 때면 팔 걷어붙이고 봉사하시는 열정을 나는 따라갈 수 있을까! 여기까지 오는 동안 온갖 시험을 잘 극복하고 오직 예수님의 사랑으로 교회를 사랑하고 목회자를 섬겨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성도님들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주님께 무슨 말을 하오리까. 에스라가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럽고 낯이 뜨거워서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스 9:6] 항상 주님 앞에 설 때마다 부끄러운 마음이 듭니다. 부족한 목회자에게 이렇게 훌륭한 성도님들을 맡겨주셨으니 무슨 말을 하오리까. 태초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영원까지 성령님이 새날교회를 품어주셔서 이민 사회에 길이길이 예수님의 영광을 남길 수 있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0
0
4
NewDaysChurch
May 15, 2022
In 목회칼럼
하나님을 믿노라 하면서도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잊고 살아갑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 앞에서,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할 수 있을까요? 갑작스럽게 내 앞에 펼쳐지는 환난 앞에서 내 힘의 한계를 알고는 하나님의 힘을 구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서 굳이 하나님을 찾지도 않습니다. 내가 도저히 감당 못할 환난 앞에서 비로소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게 만듭니다. 그러나 개구리가 따뜻한 냄비 속에서 느긋하게 있다가 점점 뜨거워지는 물속에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결국은 삶아 죽습니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환경이 서서히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2년 정도의 펜데믹 기간으로 인해 평생 간직했던 예배와 교회론이 허물어져 가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 오직 교회만 바라보던 믿음이 환경에 의해서 서서히 세속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게 아주 조금씩 바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보면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데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지극히 정상으로 생각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멀리하는 환경으로 바뀔 때 나를 지키지 못하면 나 자신도 모르게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들어가 변화의 주역이 됩니다. 세상은 날로 날로 변화의 소용돌이가 있을지라도 믿음의 사람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항상 깨어서 근신하며 기도로 헤쳐 나가야 합니다. 날이 갈수록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하고 예배를 멀리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자신도 모르게 믿음이 세속화되어 갑니다. 그리고 주장하기를, 내 믿음은 정상이라고 말합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한 주간도 마음을 지켜서 변화되어가는 환경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반듯하게 서 있기 바랍니다.
0
0
4
NewDaysChurch
May 07, 2022
In 목회칼럼
어머니는 언제나 불러 봐도 그리운 이름입니다. 어머니는 언제나 바라봐도 정겨운 얼굴입니다. 자식이 필요할 때 그리워하며 찾아가면 어머니는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뻐하십니다. 자식들이 어머니를 해바라기처럼 바라보는 것이 아닙니다. 어미니들에게 해바라기는 자식들입니다. 자식이 웃으면 어머니도 기뻐하며 웃고 계십니다. 자식이 울고 있으면 어머니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이 아파합니다. 말썽부리고 집나간 자식이라도 언젠가는 돌아올 줄 믿고 문 열어놓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해바리기는 태양이 움직이는 대로 바라보듯이 어머니는 자식들만 바라보고 계십니다. 오늘은 어머니날입니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어머니를 기억하시고 불러보세요. 어머니날만이라도 다시 한 번 불러보고 싶은 이름인 어머니! 어릴 적에는 엄마 없이는 못산다고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으려고 떼썼는데 중학생 즈음이 되면 엄마보기를 데면데면하면서 엄마의 잔소리를 피하려고 합니다. 잔소리 듣기 싫다고 곁길로 나가면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하던 어머니, 자식들 다 커서 결혼시키면서 한시름 놨나 싶었는데, 결혼한 자식들이 사네 못사네 하는 소리가 들리면 어머니들은 또 억장이 무너지듯 하면서 눈물로 기도하는 어머니들, 눈에서 눈물이 마른날 없는 어머니들입니다. 평생을 자식들을 해바라기처럼 바라보면서 살고 있는 어머니들, 어머니날만이라도 멀리 떨어진 어머니들에게 안부와 위로의 전화를 하시고 가까이 계시면 찾아뵙고 자식 된 도리를 다하는 어머니날이 되시기 바랍니다.
0
0
1
NewDaysChurch
May 01, 2022
In 목회칼럼
속담에 손톱 밑의 가시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주 작은 가시 하나가 손톱 밑에 박히면 고통스럽고 성가시다는 뜻입니다. 그냥 넘어가도 될 만한 일이지만 마음에 꺼림 직한 일들을 말합니다. 이렇게 눈에 잘 띄지도 않는 가시하나가 육체에 박히면 고통스럽고 성가신데 주님은 사도 바울에게는 육체에 가시를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그 가시 때문에 바울도 고통스러워서 세 번씩이나 기도했지만 주님의 응답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주님이 주시는 은혜로 여기라고 하였습니다. 왜 주님은 바울에게 박혀있는 가시를 제거하지 않으셨을까요? 바울이 주님으로부터 받은 많은 은사들로 인하여 교만해질까봐서 가시를 주셨습니다. 우리들에게도 바울처럼 육체에 가시를 주셨습니다. 나에게 준 가시는 어느 때 나를 찌르고 있을까요? 내가 처한 환경이 나를 찌르고 있습니다. 나와의 인간관계에서 누군가가 나를 찌르고 있습니다. 나를 찌르는 가시를 피할 것이 아니라 이겨야 합니다.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요? 가시에 찔릴 때마다 아픔이 있고, 아프면 약해집니다. 아픔으로 약한 그 때에 주님은 놀랍게 강함을 주십니다. 강함을 주시는 능력은 가시 같은 존재를 사랑하는 마음을 주시고 가시 같은 존재와 화목하게 하는 마음을 주십니다. 바울은 육체의 가시를 제거해주기를 기도했지만 주님은 은혜로 여기라고 하였습니다. 내게 있는 가시를 통해서 약할 그 때에 강함을 주시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0
0
4
NewDaysChurch
Apr 24, 2022
In 목회칼럼
고 이어령 교수님의 저서 ‘의문은 지성을 낳고 믿음은 영성을 낳는다’의 제목처럼 의심하는 사람을 나쁘다 하기 전에 이들이 갖고 있는 의심을 풀어줄 때 그들이 믿음의 길로 들어설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의심하는 사람을 대표하는 인물은 도마입니다. 도마는 처음부터 예수님의 사역을 의심하거나 반대하지는 않았습니다. 일부 유대인들은 예수님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돌을 던져 위험에 빠트리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마르다가 곧 죽게 되었다는 연락을 받은 예수님은 지체 없이 마르다가 살고 있는 동네로 가자고 했습니다. 그때 제자들은 예수님을 만류했습니다. 지금은 위험하니 유대인들의 반감이 잠잠해지면 가자하면서 주저했던 것입니다. 그때 도마가 나서서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고 다른 제자들을 설득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사역에 동역했던 도마였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고 자랑하는 다른 제자들에게 도마는 “아니라, 내 눈으로 봐야 하고 내 손가락으로 상처난 곳에 넣어봐야 믿겠다” 하였습니다. 이런 의심이 풀어질 때 진정한 믿음의 길로 들어설 수 있습니다. 우리들도 부활의 예수님을 막연하게 믿으며 수십 년 신앙생활하기도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 하였습니다. 무슨 말을 들어야 믿음이 바로 설까요? 성경말씀을 내 입술로 읽고 내 귀로 듣고 내 마음에 쌓일 때 주님의 탄생과 십자가의 부활, 승천과 재림을 믿게 됩니다. 바로 의문이 믿음을 낳고 영성으로 이어지게 되는 길입니다.
0
0
1
NewDaysChurch
Apr 17, 2022
In 목회칼럼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안에 있으면 그 누구라도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가요. 새로운 피조물은 과거의 죄에 매여 살지 않습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다 하였습니다. 이전 것들인 내 모든 죄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피로 싹 씻겨졌습니다. 내 죄가 내 삶에서 지나갈 때 나는 새것이 됐습니다. 물건이 사람이든 ‘새’자가 붙으면 새로워 보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을 맞는 오늘 우리들을 가리켜 “보라 새것이 되었다” 하였습니다. 오늘 새로운 피조물로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예배자임에 감사하세요. 부활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 이전 것, 즉 죄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우리들은 해방자입니다. 자유자입니다. 세상에 눌리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어떤 속박과 핍박도 우리를 붙잡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무덤에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살아나셨습니다. 누구를 위해 부활하시고 살아나셨을까? 나를 위해 부활하시고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나의 부활을 땅끝까지 이르러 전파하시기 바랍니다.
0
0
1
NewDaysChurch
Apr 10, 2022
In 목회칼럼
일일삼성이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날마다 자신을 뒤돌아보며 말과 행실에서 세 가지 잘못한 것을 반성한다는 뜻입니다. 매일매일 자신에 대해 얼마나 뒤돌아보는지요? 이것을 자기성찰이라 합니다. 자기성찰을 하며 잘못한 말과 행실이 있으면 반성하고 내일을 준비해야 합니다. 만약 하고 싶은 말을 다하고, 하고 싶은 행동을 다하며 살다보면, 자신은 속이 후련할지 몰라도 주변사람들에게는 알게 모르게 해로운 존재가 되고 맙니다. 되는대로 말하고 행동하며 자신은 정의롭게 살고 있다 착각하며 살아기기도 합니다.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요, 만물의 으뜸이라 하지만 말과 행실에서 으뜸이 아니라 저질스럽다면 짐승만도 못한 존재가 됩니다. 다니엘도 바벨론 정부의 눈치를 보며 대충 살았다면 위대한 선지지가 될 수 없었습니다. 바벨론 정부의 어떤 압력에도 다니엘은 창문을 열어놓고 하루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해 감사기도를 하였습니다. 공자는 하루 세 번 자신을 성찰하며 세 번 반성하라 하였지만, 하나님은 하루 세 번씩 기도로 마음을 하나님께 향하게 하라 하였습니다. 기도는 왜 하는가? 내가 하나님께 요구할 것이 많아 하는가? 올바른 기도는 내가 변함없이 하나님 편에 있기를, 내 혈기를 죽이고 오직 예수의 사랑을 구하는 것입니다. 하루 세 번씩 기도하세요. 기도를 통해 내가 나를 살아가는 것이 아닌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의 뜻대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때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게 됩니다.
0
0
1
NewDaysChurch
Apr 03, 2022
In 목회칼럼
세상은 혼자서는 살 수 없는 공동체 구조입니다. 물론 깊은 산 속이나 무인도 등지에서 혼자 사는 분들도 계십니다. 이렇게 특별한 경우 외에는 사람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한 공동체의 최소단위는 가정입니다. 가정에서 자녀들은 가족과의 관계를 배웁니다. 그리고 학교에 가게 되면 더 많은 사람들과 관계 맺는 법을 배우며 사회성을 키워갑니다. 예수님도 홀로 완벽하심에도 항상 제자들과 자신을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다보면 서로간에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합니다. 내 주장만을 강하게 주장하다보면 전체적인 사회성이 흐려집니다. 나중에 마찰이 생기고 마찰을 풀지 못하면 분쟁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이럴 때 어떻게 하시기를 원했을까?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말씀하셨을 때 악한 자는 누구일까?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속옷을 원하면 겉옷까지도 주라고, 너로 오 리를 걷게하면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라, 손해보라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세상적으로 손해를 본다 불평할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죄 없이도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예수님은 우리들 손을 잡고 일어나라, 나와 함께 가자 하십니다. 어디를 함께 가자고 하시는가? 고난을 통과해 부활을 향해 가자 하십니다. 사순절 고난을 유익으로 받으시고 부활의 영광을 위해 주님과 함께 가시기 바랍니다.
0
0
3
NewDaysChurch
Mar 27, 2022
In 목회칼럼
이런 저러 소리를 다 듣고 살다보면 훈련된 마음에서 걸러낼 말은 걸러내고 담아둘 말은 담아둘 분별력이 생깁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긍정적인 말은 한쪽 귀로 들은 후 다른 귀로 흘려보내고, 부정적이 말은 양쪽 귀로 듣고 마음에 담아둡니다. 마음에 담아둔 말은 언제든지 거룩한 내 입술로 퍼냅니다. 잠언에서 말씀하시기를 사랑은 어떤 허물도 덮어준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남들의 허물을 덮어주는가 아니면 남들의 허물을 들춰내고 나팔을 부는가! 우리들은 항상 주님 앞에 설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주님 앞에 섰을 때 주님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실까! 거룩한 내 입술로 복음의 소식을, 좋은 소식만을 나팔 불었었나, 아니며 부정적인 소식만 거룩한 내 입술로 나팔을 불지 않았는가. 내가 받은 은혜만을 생각하면 어떤 환경에서도 감사가 먼저 나옵니다. 예수님이 사도 바울에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저런 일들로 지쳐 주저 앉았을 때 주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생각하세요. 새로운 힘과 능력으로 채워주십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받은 은혜가 족하도다 고백하며 사순절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0
0
2
NewDaysChurch
Mar 20, 2022
In 목회칼럼
코로나 바이러스 예방수칙에 따라 얼굴을 가렸던 마스크의 시대가 끝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앞으로 다른 종류의 바이러스가 더 나타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환경은 일상으로 돌아가려 하는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그 마음으로부터 코로나 바이러스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사순절을 보내며 얼굴이 아닌 마음을 가렸던 마스크, 가면을 벗고 하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항상 하나님께 돌아온 듯 하지만, 가면을 통해 이중적인 인격체처럼 두 얼굴과 두 마음으로 하나님을 대하기도 했습니다. 마음을 가면으로 가리면 얼굴 역시 가면을 쓴 것처럼 속일 수 있습니다. 누구나 그 마음에 선과 악이 공존합니다. 한쪽이 강하면 다툼이 없지만, 서로가 비슷한 상태라면 싸움 끝에 악이 선을 이기고, 얼굴엔 선한 가면을 써서 선하게 보이려 하기도 합니다. 마치 성령의 법과 육신의 소욕이 공존하는 가운데 육신의 소욕이 성령의 법을 이기고도 얼굴엔 성령 충만한 가면을 쓰는 것처럼 말입니다. 성령의 법이 충만해 마음을 덮은 가면을 벗어버리고 두 얼굴이 아닌 하나님의 사람 본래의 얼굴로 언어와 행실에서도 변화되는 사순절 보내시기 바랍니다.
0
0
3
NewDaysChurch
Mar 12, 2022
In 목회칼럼
사순절은 광야의 삶을 살아보는 절기입니다. 광야의 삶을 살아보려고 사막으로 나갈 필요는 없습니다. 현대인들에게 광야란 문화가 차단된 곳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현대문화가 차단된 곳에서 바라볼 것은 위에 계신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만 바라볼 때 예수님이 겪었던 고난이 보입니다. 그럼에도 고난만 바라봐서도 안 됩니다. 소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어야 합니다.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면 고난 뒤에 하나님이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고난 뒤에 계신 하나님이 보일 때 어떤 고난 중에도 하나님을 찬송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찬송하는 일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곡조가 있는 찬송가를 부르는 일, 곡조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소리 내어 있는 일,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내 손으로 한 자씩 쓰는 일입니다. 고난과 환난, 연단 중에 하나님만을 찬송할 때 위로해 주십니다. 어떤 위로를 주실까요? 부활과 구원, 소망으로 위로해 주십니다. 어떤 고난과 환난, 연단이 올지라도 찬송함으로 위로받고 부활의 소망을 주십니다.
0
0
4
NewDaysChurch
Mar 05, 2022
In 목회칼럼
해마다 맞이하는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순절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부활절까지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며 준비하는 기간입니다. 사순절 기간은 자신의 신앙을 뒤돌아보는 절기입니다. 지금까지 풍요만을 쫓던 삶에서 메마른 광야의 삶으로 방향을 바꿔야 합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아왔다면 사순절 기간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여유로움을 찾으세요. 마음의 여유로움을 환경에서 찾지 말고 성경 말씀을 한 자씩 쓰며 찾아보세요. 광야는 눈과 귀로 보고 들을 것이 없습니다. 현대인들이 즐길 만한 문화가 없는 곳입니다. 광야에서는 인터넷이 안 됩니다. 광야는 스마트폰이 없는 세상과도 같은 곳입니다. 문화시설이 없다보니 한가한 곳입니다. 또한 평화가 있는 곳입니다. 광야에서는 오직 위만 바라볼 뿐입니다. 위에 계신 예수님만 바라볼 때 광야에서 은혜를 주십니다.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는 사순절 되시기 바랍니다.
0
0
4
NewDaysChurch
Feb 27, 2022
In 목회칼럼
“손님은 왕이다,” 이 말의 진의는 손님 한 분 한 분을 왕처럼 친절하게 모시자는 것입니다. 손님 중에는 정말 왕 대접받을 만큼 직원들에게 친절하고 인격적으로 대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런가하면 식당이나 가게에서 직원들에게 비인격적으로 대하면, ‘오늘 장사 안 해도 좋으니 제발 나가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나는 어떤 부류에 속할까? 어디가든 일하는 분들에게 친절하고 인격적으로 대하나, 아니면 가정이나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식당에 와서 화풀이 하듯 풀지는 않는가? 사람은 어디에서나 자신이 말하고 행동하는 대로 대접을 받게 됩니다. 내 돈을 쓰면서도 하인처럼 행동한다면 하인 취급을 받게 됩니다. 하인처럼 행동하면서 하인 취급받았다, 푸대접을 받았다 불평한듯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왕이 없는 이 시대, 서로가 왕처럼 살아갈 때 왕 대접을 받게 됩니다. 어디에서나 하인처럼 행동하지 말고 왕처럼 행동하시기 바랍니다.
0
0
2
NewDaysChurch
Feb 20, 2022
In 목회칼럼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 그리고 이들에게 성부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민족을 예수님의 제자로 삼고 세례로 베풀라는 명령은 특별한 사람들만이 받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우리 모두가 받았습니다. 우리 모두는 선교지에 대해 무관심해서는 안 됩니다. 항상 관심을 가지고 선교지와 선교사님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나를 대신해 선교지로 나간 선교사님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는 사실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비록 선교지에 직접 가지 못할지라도 기도와 후원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님의 증인이 되라 하셨습니다. 땅 끝까지 갈 것 없이 내 삶과 환경 속에서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 위대한 명령을 지켜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0
0
3

NewDaysChurch

Admin
More ac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