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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um Posts
NewDaysChurch
Sep 30, 2023
In 목회칼럼
세상 살면서 물질적으로 풍요한 것도 축복입니다. 물질의 풍요가 행복의 뿌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물질의 풍요로움이 오히려 불행의 뿌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행복의 뿌리를 물질로 내리려 하지 말고, 믿음으로 행복의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후6:10에서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라고 말합니다.
겉으로 보면 가난해 보이는데 가진 것을 나누어 주며, 겉으로 보면 아무것도 없는 사람 같은데, 놀랍게도 모든 것을 가졌다고 하였습니다. 크리스천들은 많은 것을 가졌지만 겸손하고 검소하게 살다 보니까 가난한 사람처럼 보이고, 아무것도 없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많은 것을 가진 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가진 것이 없고 다만 주님이 내게 잠깐 맡긴 것이라고 말합니다. 물질의 풍요로움을 내 힘과 능력으로 쌓은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주님이 내게 잠시 잠깐 맡긴 것이라고 말합니다. 내게 잠시 잠깐 맡겼기에 주님이 원하시면 언제든지 다시 내놓을 재물이라고 말합니다.
믿음으로 사는 분들은 마음의 여유가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조금 부족하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주시기도 했으니 다시 채워주실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런 분들에게는 믿음의 확신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동행해주심을 확신할 때 영적인 부자요, 육신적으로도 부요케 하십니다. 우리들은 믿음의 부자들이니 믿음의 풍족함 속에서 평안을 누리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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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DaysChurch
Sep 23, 2023
In 목회칼럼
근심 걱정 없이 세상을 살아 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순간순간 근심거리가 엄습하면 겉으로는 웃는 것 같은데도 속으로는 걱정 거리가 가득하여 수심에 차 있습니다. 잠언 14장 13절에는 “웃을 때에도 마음에 슬픔이 있고 즐거움의 끝에도 근심이 있느니라”라고 기록합니다. 어떻게 하면 근심을 떨쳐버리고 평안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내 앞에 펼쳐진 상황 때문에 근심이 되고 두려운 마음이 생깁니다. 이럴 때 나는 무엇을 의지하고 있는가? 나를 구원하시는 예수님을 확실하게 믿고 의지하는가? 아니면 예수님도 의지하고 믿지만 이 땅 살아가는데 필요한 물질을 더 의지하는가? 물질을 더 의지하다 보니 내게 닥친 환경을 보고 근심과 걱정이 앞섭니다. 그러나 내게 닥친 환경이 주님이 주셨다고 믿어질 때, 다음 숙제가 풀립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뒤에 계신 주님을 의지할 때 문제를 주신이도 여호와 하나님이시오 문제를 풀어주실 이도 여호와 하나님임을 확신하면서 근심과 걱정보다는 먼저 엎드려 기도하게 됩니다. 지금까지도 지켜주시고 보호하셨는데, 이번에도 분명히 새로운 길을 열어주시고자 문제를 주셨으리라 믿으면서 문제 앞에서 당황하지 말고 새로운 출구를 볼 수 있는 눈이 열리기를 기도하세요. 이때 나도 모르는 평안이 마음을 감싸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4장 27절에 말씀하십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평안을 준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다르니까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평안한 삶과 행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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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DaysChurch
Sep 16, 2023
In 목회칼럼
이 세상 살아가면서 행복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파랑새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 내가 생각하는 파랑새를 찾기 위해서 인생을 걸고 열심히 찾았습니다. 어렵게 찾은 파랑새를 찾고 보니 내가 원하는 파랑새가 아니었습니다. 파랑새를 찾는 것이 곧 행복을 찾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또 다른 곳에서 파랑새를 찾았지만, 역시 내가 원하는 파랑새는 아니었습니다. 행복은 딱 정해진 수학 공식처럼 존재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행복하기를 원하지만 행복은 정해진 어떤 정의가 없었습니다. 대다수 사람들은 육체적 욕망을 따르는 외적 성취를 행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외적인 면에서 행복을 찾는 것보다 내적인 면에서 행복을 찾아야 합니다. 행복은 외부에서 찾는 것이 아니고, 마음에서 찾아야 합니다. 행복은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것은 인간들이 행복하게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외부에서 행복을 찾을 때든지, 마음의 평화를 통해서 행복을 찾을 때든지 어떤 경우든지 아주 작고 사소한 것에도 주님께 감사할 때 평안을 주시고 행복을 주십니다. 작은 것으로도 만족하고 자족하는 마음일 때 평안을 주시고 행복을 주십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좋아하는 말씀에 밑줄 쳐 놓고, 말씀대로 이뤄지기를 기도합니다. 그런데 좋아하는 말씀만 읽고 마음에 쓰다고 여기는 말씀들을 읽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영적편식증이 생깁니다. 행복도 다양한 환경에서 찾을 때 이 땅은 온통 행복거리만 충만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야 행복편식증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행복은 어려움 속에서도 찾아야 하며, 좋은 일 속에서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땅 어느 곳에든지 존재하십니다. 이 땅에 충만한 하나님의 존재를 찾아서 행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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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DaysChurch
Sep 09, 2023
In 목회칼럼
문화의 발견[김찬호지음]이라는 책에서 강남지역의 특성을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한국에서 기독교 인구가 30%로 높은 비율을 가진 지역이 강남이라고 합니다. 강남지역 인구의 30%라면 기독교 문화의 중심 지역이 될 수 있고, 생명 문화의 지역이 될 수 도 있습니다. 이렇게 높은 비율의 기독교 성도들이 살고 있는 강남 지역은 경건하거나 종교적이지 못합니다. 왜 그런가? 강남지역은 소비와 향락문화의 확대 재생산되는 지역이라고 말합니다. 왜 소비와 향락문화의 재생산지역이라고 하는가? 이 지역의 특성이 네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지역으로 식당들이 많고, 두 번째는 마시고 즐기는 유흥가가 번성하고 있고, 세 번째는 먹고 마신 후에 건강을 위해서 땀을 빼는 목욕문화가 번성하는 지역이요, 마지막에는 먹고 마시고 즐긴 후에는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종교기관이 즐비한 지역이라고 합니다. 먹고 마시고 즐기고 땀 빼고 마지막에는 교회에 와서 죄를 회개하고 용서받을 수 있는 특이한 지역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세상 풍조에 믿음조차도 흔들리는 현실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비록 믿음이 바로 서있을지라도 환경으로 인하여 믿음이 견고하지 못하고 흔들리기도 합니다. 이런 환경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다윗은 사울로부터 쫓겨 다니는 환난 속에서도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다윗의 부르짖는 기도를 성전에서 하나님이 귀를 기울이고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가 일어났는데 땅이 진동하고 떨었으며, 하늘의 기초가 요동하고 흔들렸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현상은 현재 지구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자연재해이기도 합니다. 땅이 요동치고 흔들리는 지진이 쉴 새 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늘의 기초가 요동치니 비가 오면 완전히 물바다가 되고, 가뭄으로 인한 산불이 하와이의 마우이 섬 전체를 불태웠습니다. 이런 자연재해를 지구온난화로만 볼 것이 아니고 영적으로도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열려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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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DaysChurch
Sep 03, 2023
In 목회칼럼
사람이 살다 보면 때로는 자신을 숨기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누가 나를 공격하려고 뒤따라오지 아니하더라도 환경을 벗어나 피하고 싶을 때 어디로 갈까, 이럴 때 어느 분은 여행지로 떠나 현실에서 도피하기도 하고, 어느 분은 기도원으로 들어가 오직 주님만을 붙잡으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어느 분은 자기 방에서 두문불출하면서 사람들과의 교류를 차단하기도 합니다.
어떤 방법이 좋은가, 나쁜가의 평가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시편 27편 5절에서 다윗은 고백하기를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리로다.” 다윗이 어떤 상황에 있었을 때 초막 속에, 장막 은밀한 곳에 숨겨두시고 높은 바위 위로 숨기게 하셨을까? 사울을 피해서 도망 다닐 때 하나님은 순간순간 한눈도 팔지 않고 다윗을 항상 안전한 곳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다윗은 깊은 산속보다도 깊은 동굴 속보다도 자신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이 충만할 때 어느 곳으로 피신하든 안전지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만이 가장 완벽한 보호막으로 믿을 때는 내 몸을 숨기려고 피난처로 숨지 아니하고 백주에 활동해도 하나님은 나를 찾는 사람들의 눈을 어둡게 하십니다. 우리의 진정한 피난처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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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DaysChurch
Aug 26, 2023
In 목회칼럼
어느 분의 글에서 꿈과 망상의 차이점을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꿈은 계획이 있으나, 망상은 운과 요행만을 바라본다고 합니다. 꿈은 고난이 오더라도 인내로 견뎌내지만, 망상은 어려움이 오면 현실에서 도망합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려운 결단을 하지만, 망상은 핑계로 결단을 못합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잠자는 시간도 아깝다고 말하는데, 망상은 오직 꿈속에서만 이뤄집니다. 꿈을 꾸면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꿈을 이루어 가는데 망상은 함께 나누지 못하고 뺏길까봐 혼자서 궁리만 합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행동으로 이어지는데, 망상은 입술로만 합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시간을 투자하는데, 망상은 시간이 없다고 포기합니다. 꿈은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행복해하는데, 망상은 누군가 알아주지 않으면 불행하다고 합니다. 이렇게 꿈과 망상은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나는 과연 꿈을 꾸고 있는가? 아니면 나도 모르게 망상에 젖어 살고 있지는 않은가? 나 개인의 꿈이 하나님의 꿈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랬을 때 그 꿈을 이루도록 성령님은 내 꿈과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을 보내주십니다. 이번에 전 국민의 10%만이 성경책을 가지고 있다는 아이티인 들에게도 하나님의 꿈을 심어주고자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꿈을 전하고자 새날교회 교육용 교재인 복음기초 12강을 아이티 언어[크레올]로 번역이 끝났고, 편집 디자인도 마무리 되어가면서 마지막 표지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손대지 못했던 작업을 새날교회에서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니 감사할 뿐입니다. 이 책이 출판될 수 있도록 협조해주신 분들과 기도해주시는 모든 분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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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DaysChurch
Aug 19, 2023
In 목회칼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시를 [사26:3]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라.” 심지 곧 마음의 중심이 견고한 사람에게 주시는 축복이 있습니다.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마음을 지켜주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으로 마음의 성을 세울 때 견고하게 세워주십니다. 마음의 성이 견고해야 어떤 풍파가 밀려와도 흔들림 없이 자리를 지킬 수 있습니다.
마음의 성이 견고하지 못하면 주변에서 작은 요동에도 흔들림이 있습니다. 솔로몬 왕은 마음의 성이 견고하지 못하고 조금씩 허물지고 있었습니다. 마음의 성이 허물어지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니까 사리 분별력이 떨어지고, 이런 틈새를 마귀들이 파고듭니다. [왕상11:4] “솔로몬이 나이가 많을 때에 그의 여인들이 그의 마음을 돌려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하였으므로,” 마음의 성이 견고했더라면 어떤 여인이 와서 왕의 마음을 돌리려 해도 견고한 성은 흔들림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견고했던 성벽이 허물어지면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신뢰도가 떨어졌습니다.
솔로몬은 이런 틈새를 파고 든 마귀의 말에 미혹되어 넘어졌습니다. 마음의 성이 흔들릴 때 [사26:4]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신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인간관계에서도 한번 신뢰도가 허물어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집니다. 그동안 아무리 아름다운 관계일지라도 신뢰를 회복하는데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이 깊을수록 마음의 성은 더 견고하게 세워집니다. 아무리 큰 태풍이 와도 주변에서 아무리 미혹해도 흔들림 없도록 성을 하나님이 지켜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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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DaysChurch
Aug 13, 2023
In 목회칼럼
하나님의 천사가 기드온을 처음 만났을 때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너는 가서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 천사가 기드온에게 소명을 줄 당시 이스라엘은 미디안으로부터 혹독하게 핍박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견디다 못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신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서 기드온을 찾았습니다. 천사는 기드온에게 큰 용사라고 하면서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니 너는 가서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기드온은 여기에서 아멘으로 답하지 아니하고 변명하였습니다.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 천사가 기드온에게 소명을 주실 때의 모습이 어쩌면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주님은 항상 우리들을 찾아서 소명을 주고 계십니다. 소명을 받을 때는 세상에서 가장 존귀함을 받을 때가 아니고, 세상에서 가장 낮아졌을 때 찾고 계십니다. 세상의 밑바닥에서 기어가고 있는 나를 찾아서 큰 용사여 주님이 너와 함께 계신다고 하십니다. 이때 우리들의 반응은 어떨까요? 기드온의 고백처럼 ‘나는 약하고 가장 작은 자인데 어떻게 주님의 큰 사명을 감당하오리까’라고 겸손할 때 주님의 놀라운 능력을 우리에게 부어주십니다.
교회에서 ‘내가 무엇을 하오리까. 그러나 말씀만 하옵소서. 듣고 행하겠나이다’라고 고백하세요. 큰 사명을 주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큰 용사로 보고 계시는데 정작 본인은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미천한 사람이라고 뒤로 숨지 마세요. 주님과 함께 하시면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부정적인 말로 나는 연약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거절합니다. 존 맥스웰이 말하기를 리더쉽의 전제 조건 중에 하나는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어떤 사명이든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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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 10, 2023
In 목회칼럼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만의 성을 쌓고 있습니다. 나를 위한 성은 마음 안에 쌓으면서 어느 누구도 접근할 수 없고 들어갈 수도 없는 철옹성과 같은 견고한 성을 쌓아놓고 지키고 있습니다. 세상은 수많은 법으로 거미줄을 쳐놨을지라도 세상 사람들은 법망에 걸리지 않고 살아갑니다. 이렇게 눈에 보이는 법은 잘 지킴으로 법망에 걸리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내 마음으로는 어떤가요? [잠4: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겉으로 보이는 법은 잘 지켜도 보이지 않은 마음으로는 지키지 않습니다. 잠언 기자는 모든 지킬만한 법을 잘 지킬지라도 네 마음을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의 성을 견고하게 세워놓고 내 마음의 성안으로 내가 들어가서는 나오지 않는 분들도 계십니다. 내 마음의 성은 하나님께로 향한 성을 쌓고 있는가? 아니면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내 명예를 위해서 마음의 성을 쌓고 있지는 않는가? 아무리 하나님을 향한 마음의 성을 쌓을지라도 내 마음을 빼앗기면 성은 허물어집니다.
내 마음의 성을 쌓고 지키려면 심지가 견고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심지가 견고한 사람에게 평강하도록 마음을 지켜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마음의 성이 허물어질 때는 커다란 구멍이 나서 허물어지는 것이 아니고 바늘 구멍만한 아주 작은 구멍에서 시작됩니다. 자동차 타이어에 작은 못이 하나 박힌 것을 모르고 주행하다가 며칠이 되어서야 완전히 바람이 빠진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처럼 아주 작은 바늘구멍이 성을 허물어지게 하듯이 작은 일에도 대수롭지 않게 넘길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의 본바탕인 심지가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했을 때 어떤 공격에도 견고하게 마음의 성을 지켜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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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 30, 2023
In 목회칼럼
청교도 설교가인 토마스 브룩스는 이런 말씀을 하였습니다. 삶에서 가장 달콤해 보이는 죄들이 죽음 이후에는 가장 쓰라린 것들이 될 것이다. 죄의 결과에 대한 가장 적절한 표현이기도 합니다. 살다 보면 죄성이 있는 것들은 아주 달콤하게 보이도록 유혹합니다. 유혹에 빠지면서 하나님을 신뢰하기보다는 죄성이 있는 것들을 더욱 신뢰하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예수님의 부활하심과 연합하라고 하였습니다. 연합이란 아주 신뢰하는 관계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서로 간에 신뢰하지 못한다면 연합이 될 수 없습니다.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인정하지 못하면 마지막에는 끔찍한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죄의 유혹은 마지막에 돌이킬 수 없는 덫이 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면 죄의 노예가 되어 끌려 다닙니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예수님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고 하였듯이 고난에도 연합할 때 마지막 부활 같은 모양으로 연합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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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DaysChurch
Jul 23, 2023
In 목회칼럼
사람이 살다 보면 별의별 일들을 겪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단순한 일들은 내 힘과 내 지식으로 상식으로 해결하지만, 조금 어려운 사건들이 내게 닥치면 주변 이웃들의 도움도 요청합니다. 주변 이웃들의 도움도 안 되면 법에 호소합니다. 법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내게 닥치면 누구를 찾아야 할까요.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사건을 겪으면서 우리는 찾는 분이 계십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위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를 찾습니다. 내 건강도 염려 없이 살아오다가 불의 사고로 때로는 불치의 질병으로 판명되면 멍하니 하늘을 바라봅니다.
하나님은 어디에 계실까? 하늘 높이 계실까? 하나님은 하늘 높이 계신다면 나하고는 너무 먼 거리라서 내가 위급할 때 언제 내 곁에 오실 수 있을까. 그러나 [시121:3-4]에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않고 나를 지켜주고 계신다고 하였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나의 출입조차도 지켜주시고 내 영혼까지도 지켜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분명하게 우리 곁에 계시면서 졸지도 않고 잠을 자지도 않고 지켜주시니 얼마나 감사한 일 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지켜줄 것은 의술이요, 내 물질이요, 내 명예요, 내 건강과 내 자식들이라고 착각하기도 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이 나를 지켜주기보다는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만이 나의 영혼까지도 지켜주고 계심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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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 23, 2023
In 목회칼럼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들은 사용하려고 구입하였거나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사랑하기 위해서 관계를 맺게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반대로 살아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물건은 사용하지 않고 얼마나 애지중지 하는지 사람보다 더 사랑하고 있으며, 사람은 서로 사랑하라고 관계를 맺게 하였더니 마치 물건처럼 이용하려고 합니다.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고 이용하려고 하다 보니 회사와 근로자간에 갈등이 깊어지면서 서로 적대시 하는 관계가 됩니다.
이런 갈등 속에 있는 분들은 항상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살펴봐야 합니다. 능굴능신이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사람은 펼 줄도 알아야 하지만 굽힐 줄도 알아야 합니다. 자신에게 닥친 상황에 맞춰서 지혜롭게 자신의 뜻을 굽힐 줄도 알아야 하지만 상황에 맞춰서 자신의 뜻을 펼칠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대쪽 같은 성품이라도 때로는 굽힐 줄도 알아야 악한 관계에서 선한 관계로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서로 간에 악한 감정으로 이용하려다가 한편에서 굽혀질 때 서로 사랑하는 관계로 이루어집니다.
내게 닥친 상황에서 굽혀질지라도 나는 누군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였다고 이사야 선지자는 말씀하기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나의 완전한 소유권자는 하나님이심을 분명하게 밟혔습니다. 하나님의 소유가 되면서 놀랍게 나를 지켜주시는데, 졸지도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고 보호하시고 인도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소유가 된 우리들은 물건을 사용하되 사람은 서로 사랑하는 관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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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DaysChurch
Jul 23, 2023
In 목회칼럼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구원은 따 놓은 당상이라고 여기면서 대단한 일로 여기지 않습니다. 구원받을 우리는 구원을 별스럽지 않게 여길지라도 구원의 길을 열어주신 예수님은 쉽게 길을 열어주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자신의 목숨과 구원받을 우리들의 생명과 맞바꾸셨습니다.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시려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세상 누가 나를 살리기 위해 자기 목숨을 버렸을까요? 상대방이 죽어야 내가 사는 기막힌 비밀스러운 사건이 곧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어느 누구도 없습니다.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면서 우리에게 주신 예수님의 생명은 거저 준 것이 아닙니다. [고후 1:5] “그리스도의 고난이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십자가의 죽음이며, 위로는 죽음을 이기고 승리한 부활을 말합니다. 고난과 위로는 각각 분리된 것이 아니고 한 가지를 이루고 있습니다. 지금 고난 중에 계신가요? 예수님의 위로하심을 부어주십니다. 고난과 위로를 받으면서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영원한 구원을 향하여,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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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DaysChurch
Jul 02, 2023
In 목회칼럼
만물은 자연에 잘 순응하면서 살아가지만 인간만은 환경 탓을 많이 합니다. 아무리 쾌적한 환경이라 할지라도 그 환경에서 성장하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서 자신은 가장 불행한 환경에서 성장하고 있다고 불평합니다. 그러나 인간을 제외한 모든 생명체는 환경의 조건을 탓하지 않고 주어진 환경에 묵묵히 적응합니다. 생명체의 시작과 성장조건이 열악하면 열악한 대로 힘써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절벽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식물들, 사막이든, 물속이든 생명은 잉태하여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위로 뻗어 올립니다. 사막이나 바위에 뿌리를 내린 식물들은 밤에 내리는 이슬로 생명을 이어 가면서 후대를 이어가려고 꽃을 피우고 열매까지 맺게 합니다. 어느 환경에 씨앗이 떨어졌을지라도 환경에 맞지 아니하면 몇 년 후에라도 싹을 틔워서 종족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연의 생태를 보면서 탄생은 수동이지만 성장하는 것을 보면 능동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적응하면서 꽃을 피우고 결실을 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정신과 의사가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삶의 성장과 행복은 얼마나 더 좋은 조건을 타고 났느냐 보다는,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적응하는가에 달려있다고 하였습니다. 나에게 삶의 가장 중요한 선택에서 무엇을 선택하겠습니까? [신30:15]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우리 앞에는 생명과 사망, 복과 화도 두었으니 선택은 내가 하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생명과 복을 선택하시면 열악한 환경을 쾌적한 환경으로 바꿔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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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DaysChurch
Jun 25, 2023
In 목회칼럼
세상 어느 일을 하더라도 분명한 방향이 정해져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도 자신의 가야할 방향을 정하고 살아야 합니다. 가야할 방향이 불분명하다보니까 바람 부는 대로 이리로 흔들리고 저리로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정함이 없는 사람, 또는 줏대가 없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교회도 사역의 방향이 있습니다. 사역의 방향은 한번 정했다고 끝까지 가기보다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서 방향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 미국의 흐름을 보면 하나님 중심의 방향이 아니고, 인본주의적인 흐름에 끌려가고 있습니다. 신앙도 정치권의 흐름과 함께 춤을 추면서 떠밀려 가고 있습니다. 이런 불확실한 시대에 교회들이 영원한 언약으로 연합되지 못하면 정치의 파도에 휩쓸려서 정체성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기독교 문화를 찬란하게 꽃피웠던 유럽을 보세요. 현재 어떤 모습의 기독교인가요? 우리는 유럽의 기독교를 항상 반면교사로 삼아야 합니다. 유럽의 기독교가 어떻게 저렇게 몰락할 수 있을까 의아하면서도 미국 이 땅이 점점 닮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시점에 서있는 미국의 기독교는 어디로 방향을 정할 것인가? 이제는 다민족으로 구성된 교회들만이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지역도 인종도 초월한 교회가 영원한 언약으로 연합된 교회가 됩니다. 연합되기 위해서 비빔밥처럼 비벼질 때 마찰도 있을 수 있고 아픔도 있을 수 있고, 고통도 있을 수 있지만 끝내는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교회가 세워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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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DaysChurch
Jun 17, 2023
In 목회칼럼
인터넷에 작자 미상의 ‘아버지란 누구인가’라는 글에서 몇 줄 퍼왔습니다.
아버지란 자기가 기대한 만큼 아들, 딸의 성적이 좋지 않을 때, 겉으로는 괜찮아, 괜찮아 하면서 속으로는 몹시 화가 나는 사람이다. 아버지의 마음은 먹칠을 한 유리로 되어 있다. 그래서 잘 깨지기도 하지만, 속은 잘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란 울 장소가 없기에 슬픈 사람이다. 아버지란 자식을 결혼시킬 때 한없이 울면서도 얼굴에는 웃음을 나타내는 사람이다. 아들, 딸이 밤 늦게 돌아올 때에 어머니는 열 번 걱정하는 말을 하지만, 아버지는 열 번 현관을 쳐다본다. 아버지의 최고의 자랑은 남들이 자식들을 칭찬할 때이다. 아버지는 이중적인 태도를 곧잘 취한다. 그 이유는 아들, 딸들이 나를 닮아 주었으면 하고 생각하면서도, 나를 닮지 않아 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동시에 하기 때문이다.
작자 미상의 아버지란 누구인가의 말씀이 모든 아버지들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현 시대는 아버지 중심의 가정이 허물어지고, 어머니 중심의 가정들이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조금 강하게 훈계하고 책망하면 어머니들은 자식 편에서 서서 애 잡는다고 남편의 훈계를 막아버립니다. 남편의 마음을,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기보다는 야속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자식들은 아버지의 나이가 되면서 비로소 아버지를 이해하게 됩니다. 결국 아버지만이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리워합니다. 추락하고 있는 아버지의 권위는 가정에서 예배 인도자가 될 때 주님이 추락한 아버지의 권위를 세워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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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DaysChurch
Jun 11, 2023
In 목회칼럼
모든 식물들은 성장하기 위해서 뿌리를 땅속으로 내려서 영양분을 끌어 올립니다. 토양에 양분이 충분하면 힘들게 뿌리를 땅속 깊이 내리지 않고 옆으로 퍼져나갑니다. 그러나 토양에 양분이 부족하면 좀 더 깊이 좀 더 깊이 뿌리를 내려서 양분을 끌어올립니다. 토양에 양분이 부족해서 땅속 아주 깊이 뿌리를 내린 나무들은 어떤 태풍이 불어도 절대 뿌리 채 뽑히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토양에 양분이 충분하면 힘들게 뿌리를 땅속 깊이 내리지 않고도 양분을 쉽게 얻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나무들이 태풍에는 속절없이 뿌리 채 뽑히게 되었습니다.
우리들도 척박한 환경에서 신앙 생활할 때는 믿음의 뿌리를 깊이 내렸기 때문에 어떤 핍박에도 끄떡없이 신앙을 지켜나갑니다. 그러나 쾌적한 환경에서 신앙 생활하다 보니 깊이 뿌리를 내림보다는 옆으로만 퍼져갑니다. 이럴 때 신앙의 핍박이 오고 환란이 닥치면 뿌리 채 뽑힐 수도 있습니다.
나는 믿음의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는가? 아니면 옆으로 얕게 뻗치고 있는가? 내 믿음의 뿌리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믿음의 방향이 오직 예수님께로 향하고 있는가? 예수님은 사랑이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고전 13:13]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 말하였습니다. 내 믿음의 뿌리는 오로지 예수님을 향하여 깊게 뻗고 있을 때 나도 모르게 믿음의 양분이, 소망의 양분이, 사랑의 양분이 섭취되는 것입니다. 세 가지 양분이 항상 우리 안에 있어야 하지만 이중에서도 사랑의 양분이 더 충만하게 채워지는 한 주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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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DaysChurch
Jun 04, 2023
In 목회칼럼
많은 이민자들의 일상적인 삶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손바닥 크기의 여백도 없이 살았다고 말합니다. 1년 365일 일 만하는 것이 인생의 끝이 아님을 알면서도 삶에서 여백을 만들지 못한 채 죽기 살기로 일만하며 살았다고 고백합니다. 인생의 여백은 누가 만들어 주기보다는 내가 만들어야 합니다. 서양화 그림을 보면 화면에 조금의 여백도 없이 색깔을 다 칠합니다. 그러나 동양화에서는 화면의 많은 여백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처럼 인생에서도 내 손으로 여백 없이 색깔로 다 칠할 것이 아닙니다. 물감으로 칠하지 아니한 여백이 자연스러운 색깔이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인생의 색깔을 내가 칠하면서 남겨둔 여백의 색깔은 주님이 대신 칠해주십니다. 내가 칠하지 못한 인생의 여백을 누리는 축복을 구해야 합니다. 삶의 여백을 누릴 때 비로소 나를 뒤돌아보면서 나의 잘못된 삶을 고쳐나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과 나와의 관계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여백 없이 정신없이 살아가는 믿음 생활에서는 나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여유도 없습니다. 한번 즈음 눈을 들어 파란 하늘을 바라보세요. 구름 한 점 없는 텅 빈 여백의 하늘이지만 참 아름답다고 감탄합니다. 내 인생도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처럼 텅 빈 여백을 만들어 나가세요. 텅 빈 것 같은 하늘이라도 때로는 뭉게구름으로, 솜털 구름으로, 먹구름으로 다 채워주십니다. 그리고나서 다시 텅 빈 여백의 푸른 하늘을 만들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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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28, 2023
In 목회칼럼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심으로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40일간 이 땅에 계시면서 제자들과 사람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고 승천하실 때 제자들에게 [행1:4]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하신 것은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시고는 승천하셨습니다. 승천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제자들에게 이번에는 천사들이 말하기를, [행1:11]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구름 타고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님은 10일 만에 성령으로 다시 오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10일 만에 성령으로 다시 오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이 땅에서 40일간 계셨고, 승천하시고 10일 되는 50일, 오순절에 육신의 모습이 아닌 성령으로 제자들에게 임재 하였습니다. 이 날이 오순절 성령가림절입니다.
승천하시면서 당부하신대로 120여명의 제자들은 흩어지지 않고 마가의 다락방에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며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50일 되는 오순절에 홀연히 하늘로부터 성령의 강한 임재가 기도하며 기다리던 모든 제자들에게 임재하였습니다. 성령이 오셨네, 성령이 오셨네, 성령 받은 제자들은 이 떄로부터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고 전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성령이 내게 임재하면 우리에게 권능을 주시고 권능을 받았으면 땅끝까지 이르러 예수의 증인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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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21, 2023
In 목회칼럼
새날교회 목회 22년을 뒤돌아 보면 모두가 그리운 사람들입니다. 그간 미풍과 같이 잔잔한 바람처럼 스쳐 지나간 분들이 그립습니다. 목회자가 의기소침하여 주저 앉을까봐 주님은 미풍과 같은 잔잔한 바람으로 힘과 용기와 은혜와 사랑을 주신 분들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런가 하면 태풍처럼 몹시 세찬 바람을 일으키며 지나간 분들도 그립습니다. 목회자가 교만 할까봐 주님은 거센 태풍이 온 나뭇가지를 흔들어 놓을 때 바짝 긴장하고 근신하며 기도하게 만든 성도님들까지도 보내주셨습니다. 미풍처럼 태풍처럼 지나간 분들도 계셨지만 지금까지 변함없이 훈풍으로 자리를 지키는 분들에게 더 할 나위 없이 감사하고 감사할 뿐입니다. 이처럼 주안에서는 불필요한 존재는 없습니다. 한분 한분이 그때마다 새날교회에서 역할을 다해주셨기에 감사할 뿐입니다. 구약의 역사 속에는 수많은 인물들의 이름이 단 한 번의 기록으로 끝난 분들이 수없이 많을지라도 그분들 나름대로 한 시대의 역사의 흔적을 기록한 분들입니다. 교회도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갔지만 나름대로 새날의 역사에 흔적을 남긴 분들입니다. 새날교회 역사에 잠시 이름만 남긴 분들도 계시지만, 22년이라는 세월을 보내면서 흔들림 없이 자리를 지키면서 새날교회에서 귀한 역사를 쓰고 계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한분 한분이 다 소중했으며 상황마다 가장 존귀하게 쓰임 받았기에 그리운 분들입니다. 그리운 분들이 어디에 계실지라도 제 마음속에는 함께 하고 계시기에 항상 평안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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