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um Posts

NewDaysChurch
Nov 22, 2022
In 목회칼럼
미국의 대표적인 명절은 성탄절과 부활절과 추수감사절이다. 추수감사절은 성경적 절기가 아니지만 기독교의 어떤 절기보다 더 성대하게 보낸다. 추수감사절을 맞이하는 전날 저녁에 유별나게 특정 가게 입구에 긴 줄을 볼 수가 있다. 어떤 가게일까? 주류를 판매하는 리커 스토어이다. 미국의 영적 대각성 부흥의 시대에는 교회에 들어가려는 줄이 그러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생각지도 못하는 꿈같은 이야기이다. 오늘날에도 추수감사절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기독교인들보다도 어쩌면 백화점 등 일반 가게들의 주인들이 추수감사절을 더 기다리고 있지는 않은가? 한편에서는 흥겹게 가족들이 모여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관광을 하는데, 또 한편에서는 이 땅의 원주민들인 인디언들은 통곡하며 보낸다. 강한 자는 살아남고 약한 자는 도태되어가는 자연의 법칙과도 같은 역사적 사실이다. 1620년 한겨울 동북부 매사추세츠 플리머스 항구에 첫발을 디뎠던 청교도들은 인디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어쩌면 추위와 굶주림으로 전멸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청교도들의 인디언들을 향한 감사한 마음은 세월이 흐르면서 사라졌다. 유럽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아서 물 밀 듯이 미국 땅에 들어온 각 민족들은 인디언들을 적으로 간주하고 총으로 싸워서 죽이거나 산속으로 쫓아버렸다. 죽임당하고 산속으로 밀려나서 살아남은 이들의 후손들이 추수감사절만 되면 플리머스를 찾아와서 조상들을 추모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추수감사절의 참다운 의미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내가 받은 은혜를 이웃들과 함께 나누면서 감사절을 지키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0
0
0
NewDaysChurch
Nov 12, 2022
In 목회칼럼
어느 누구보다 확실한 믿음을 가졌다고 생각될 때 한번 쯤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라.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살아왔는가? 내가 가진 믿음으로 주님께 매달려서 지금까지 잘 살아왔음에 감사만 할 것인가? 어쩌면 나 자신을 위해서, 가족들을 위해서 살아왔다고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주님을 위해서 무엇을 하였나? 주님이 좋아하는 일에 열심을 냈는가,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주님도 좋아할 거라고 착각하면서 열심을 내지는 안았는가? 내가 좋아하는 일에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죽도록 자신에게 충성하였는데, 주님이 좋아하는 일에는 나는 바빠서 시간 없고, 몸도 아프고, 하기 싫고 해서 거부하지는 안았는가? 주님의 일보다 내일만 앞세웠다면 지금이라도 주님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주님 죄송합니다. 이 시간부터라도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충성하겠습니다”라고 고백하세요. 이제부터는 주님을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기도하세요. 주님은 이 땅을 관광하러 오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이 땅에 휴양하러 오신 것이 아닙니다. 죽으러 오셨습니다. 왜! 누구 때문에? 나 한 사람을 건지려고 하나님의 아들의 신분을 내려 놓고 온갖 고난을 겪으셨습니다. 주님의 고난을 생각한다면,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고난이 뒤따를지라도 기쁜 마음으로 행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그 때 새 힘을 주십니다. 능력을 주십니다. “주님! 그 동안 너무 죄송했습니다. 내게 믿음이 있는 줄 알았는데 돌이켜보니 믿음이 없었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이제부터 주님의 마음이 아파하지 않도록 내게 주어진 일에 감사하면서 최선을 다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0
0
2
NewDaysChurch
Nov 08, 2022
In 목회칼럼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우리 앞에 생명과 복이 있는가 하면, 우리 앞에는 사망도 화도 있다고 하였다. 내 앞에 있는 네 가지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생명과 복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사망과 화를 선택할 것인가? 선택은 내가 하라고 하였다. 이런 문제 앞에서 세상 어느 누구도 생명과 복을 선택하지 절대로 사망과 화를 선택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세상 살다 보면 여전히 사망을 선택하여 화를 당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왜 생명을 외면하고 사망을 선택했을까? 처음부터 사망인 줄 알고 선택했을까? 아니다! 생명인 줄 알고 선택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사망을 선택한 것이다. 이런 문제는 항상 우리 앞에서 어른거린다. 그래서 사리 분별을 잘해야 한다. 분별력이 떨어지면 검은색을 흰색이라고 우기며, 흰색을 검은색이라고 우긴다. 열 사람이 저 사람은 사기꾼이라고 경고해도, 세상에 저렇게 착한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두둔하면서 가깝게 지내다가 결국은 사기를 당한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으라 전도하면 아무 종교든 믿기만 하면 된다고 외면한다.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신호등 색깔이 파란색이 끝나고 노락 색에서 빨강색으로 바뀌는데도 남들이 가니까 하면서 통과하다가 사고를 내는 것과 같다. 그리고는 재수 없다고 불평한다. 신호등 색깔이 노랑 색깔일 때 뇌에서 정지하라고 신호를 주어도 아직은 노란 색이니까 무시하고 건너는 것이다. 내가 잘못 선택하여 불이익을 당하고서도 인정하지 않는다. 이처럼 순간순간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오직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시고 좀 늦더라도 좀 돌아서 가더라도 바른 길을 선택하는 한 주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0
0
2
NewDaysChurch
Nov 08, 2022
In 목회칼럼
신앙 생활하면서 망설일 때가 있다.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갈피를 잡지 못하고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이럴 때 다니엘의 상황을 보자. 내가 다니엘의 상황이라면 다니엘처럼 용기 있는 말을 할 수 있었을까? 그는 바벨론 왕궁에서 제공되는 식사를 거부하고 자신이 요구하는 음식을 먹음으로 신앙의 지조를 지키고자 하였다. 바벨론에서는 유대의 귀족 또는 왕족 중에서 용모가 잘생기고 지혜와 지식과 학문이 있는 자들을 바벨론으로 데려왔지만 이들은 포로와도 같은 신분이었다. 이들에게 그들의 학문과 언어 등을 삼 년간 가르쳐서 왕 앞에 서게 할 계획이었다. 바벨론 왕의 신하로 세우려고 이들에게는 왕의 음식이 제공되었다. 왕이 제공하는 음식 중에는 우상에게 제물로 올렸던 고기 종류도 있었다. 다니엘은 우상에게 제물로 드렸던 음식들과 포도주를 먹지도 마시지도 않기로 결심하고 환관장에게 말하였다. 다니엘의 이러한 결심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다니엘의 용기 있는 결단에 하나님은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의 마음을 주셨다. 환관장이 은혜와 긍휼의 마음을 가졌으니 다니엘이 요구조건을 받아준 것이다. 우리들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망설일 때 먼저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 하나님을 찾고 용기 있는 결단을 하면 하나님은 나 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에도 은혜와 긍휼의 마음을 주신다. 어떤 상황에서도 세상을 찾기 전에 먼저 용기 있는 결단으로 하나님을 찾고 구하시는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
0
0
0
NewDaysChurch
Oct 23, 2022
In 목회칼럼
사람의 마음은 바다와 같이 마음이 넓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밴댕이 속같이 좁은 마음을 가진 사람도 있다. 마음이 좁은 사람을 세상에서는 좀팽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좀팽이 소리를 듣던 사람도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의 마음을 품을 때 넓은 마음으로 너그러운 성품으로 변화된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었을 때 건강이 치유되고 문제들이 해결되는 역사가 일어난다. 사도 바울이 말하기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니”라고 하였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기만 하면 세대 간의 벽도 허물어진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기만 하면 어떤 환경에서도 잘 적응하고 조화를 이룬다. 이 시대 크리스천들은 예수님의 진정한 사랑과 삶을 잊어버리고 산다. 오직 자신과 가정과 교회와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만나고 생각하고 기도하고 있다. 믿음의 공동체라는 프레임에서 때로는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 세상의 벽을 뛰어 넘어 예수님의 마음으로 비 기독교인들과도 교류하고 협력하면서 복음을 전할 수 있다. 내 힘과 능력으로는 쉽지 않지만 내 마음에 예수님의 마음을 품을 때 힘과 능력을 주신다. 우리들의 사명은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의 증인이 되는 것이다. 믿음의 사람들만 만나는 프레임 안에서 활동한다면 어느 누구에게 복음을 전할까? 세상의 벽을 뛰어 넘어 예수님의 마음으로 누구에게나 복음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0
0
4
NewDaysChurch
Oct 16, 2022
In 목회칼럼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의 확신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구원의 기쁨이 있는가? 아니면 구원이라는 단어가 무덤덤하게 느껴지는가? 구원만 생각하면 기쁨이 충만해야 하는데 구원만 생각하면 감격스러움과 감사가 있어야 하는데, 아무런 기쁨도 감격도 감사도 없지는 않은가! 세상 사람들도 신명나게 흥겹게 살아가는데, 하나님의 자녀들이 신명도 없고 흥도 없이 무표정한 모습으로 살고 있다면 다시 한번 자신을 뒤돌아보아야 한다. 신명도 없고 흥도 없다면 어쩌면 무미건조하고 한스러운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가? 한국인들만큼 신명 있고 흥이 넘치는 민족도 드물다. 사람들은 남미사람들이 흥겹게 산다고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신명을 위해서는 이웃을 상관하지 않고 장소와 때를 가리지도 않는다. 그러나 한국인들에게는 흥과 신명도 때와 장소를 잘 구별해서 누리고 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한국인의 정서는 ‘한(恨)’ 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정말 한국인은 한스러운 민족일까? 전혀 아니다. 한국인에게 흐르고 있는 핏속에는 신명과 흥이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많이 있다. 수없는 외세의 시달림 속에서 한스럽게 부르던 민요와 판소리 굿거리 등에 분명히 애절하게 애간장을 녹이는 소리가 담겨 있다. 그러나 한스럽게 토해내는 소리를 통해서 흥으로 신명으로 풀어버린다. 현재 한국의 유명한 지휘자들이 세계 각국의 교향악단과 합창단에서 아리랑을 연주하고 부르고 있다. 애절하게 들려지는 가락이 흥과 신명으로 이어지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특히 믿음 생활하면서 얼굴에 신명과 흥겨운 모습이 넘침이 곧 기쁨이 충만한 상태이다. 예수님이 나를 사랑한 것 같이 우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다. 사랑할 때 흥이 있고 신명이 넘친다. 예수님이 주시는 기쁨이 충만하여 흥이 있고 신명 나는 삶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0
0
3
NewDaysChurch
Oct 09, 2022
In 목회칼럼
사람과 짐승은 귀소본능을 가지고 있다. 특히 낙타, 비둘기, 말, 또는 물고기 중에서는 연어가 대표적이다. 다 큰 연어는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돌아와서 알을 낳고 수정하고는 죽는다. 동물과 물고기나 새들은 어떻게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찾아가는지는 불가사의하다. 사람에게도 귀소본능이 있다. 자신이 태어난 고향을 그리워하고 다시 찾아가기도 한다. 우리도 내가 돌아가야 할 곳이 어디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내가 출생하고 성장한 고향 땅일까? 눈에 보이는 고향 땅은 일시적인 귀소의 장소일 뿐이다. 그렇다면 나는 영원히 돌아가야 할 곳이 어느 곳인지 알며 살아가는가? 아니면 살다 보니 지금까지 살아온 것인가? 이민자들이 힘들고 어려울 때 갈 곳은 어디일까? 자신이 태어난 고국이라면 갈 곳이 많다. 학연, 지연, 혈연 등으로 연결되어 있기에 자신의 상황에 맞춰서 갈 곳이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이민 사회에서는 한정된 사람들과의 관계로 인하여 갈 곳이란 마땅히 교회밖에 없다고 한다. 그래서 교회는 어머니의 품과 같아야 한다. 아무리 죄를 지은 자식이라도 어머니는 반겨주고 품어준다. 성경의 기록을 보면 탕자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을 허랑방탕 다 탕진하고는 거지가 되어서 아버지 품으로 돌아왔다. 그런가 하면 삭개오는 세상에서 누리던 부요를 버리고 예수님의 품으로 돌아왔다. 우리도 주님의 품 안에서 살아갈 때 영원한 안식처로 갈 수 있다. 영원한 안식처인 하늘나라만이 우리가 마지막으로 가야 할 곳이다. 주님이 기다리시는 영원한 안식처인 천국이 내가 가야 할 곳이라는 확신을 갖고 행복한 삶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0
0
3
NewDaysChurch
Oct 02, 2022
In 목회칼럼
사람과 짐승은 귀소본능을 가지고 있다. 특히 낙타, 비둘기, 말, 또는 물고기 중에서는 연어가 대표적이다. 다 큰 연어는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돌아와서 알을 낳고 수정하고는 죽는다. 동물과 물고기나 새들은 어떻게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찾아가는지는 불가사의하다. 사람에게도 귀소본능이 있다. 자신이 태어난 고향을 그리워하고 다시 찾아가기도 한다. 우리도 내가 돌아가야 할 곳이 어디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내가 출생하고 성장한 고향 땅일까? 눈에 보이는 고향 땅은 일시적인 귀소의 장소일 뿐이다. 그렇다면 나는 영원히 돌아가야 할 곳이 어느 곳인지 알며 살아가는가? 아니면 살다 보니 지금까지 살아온 것인가? 이민자들이 힘들고 어려울 때 갈 곳은 어디일까? 자신이 태어난 고국이라면 갈 곳이 많다. 학연, 지연, 혈연 등으로 연결되어 있기에 자신의 상황에 맞춰서 갈 곳이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이민 사회에서는 한정된 사람들과의 관계로 인하여 갈 곳이란 마땅히 교회밖에 없다고 한다. 그래서 교회는 어머니의 품과 같아야 한다. 아무리 죄를 지은 자식이라도 어머니는 반겨주고 품어준다. 성경의 기록을 보면 탕자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을 허랑방탕 다 탕진하고는 거지가 되어서 아버지 품으로 돌아왔다. 그런가 하면 삭개오는 세상에서 누리던 부요를 버리고 예수님의 품으로 돌아왔다. 우리도 주님의 품 안에서 살아갈 때 영원한 안식처로 갈 수 있다. 영원한 안식처인 하늘나라만이 우리가 마지막으로 가야 할 곳이다. 주님이 기다리시는 영원한 안식처인 천국이 내가 가야 할 곳이라는 확신을 갖고 행복한 삶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0
0
3
NewDaysChurch
Sep 26, 2022
In 목회칼럼
성경을 읽을 때 자신의 성향을 살펴보아야 한다. 나도 영적 편식증을 가지고 성경을 읽는가! 신앙 생활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좋아하는 말씀에 밑줄 쳐 놓고, 그것만 읽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복된 말씀과 은혜로운 말씀 성구를 벽에 걸기도 한다. 어떤 방법이든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하게 여기고 사모하는 좋은 마음을 가진 것이다. 그런데 좋아하는 말씀만 읽고 맘에 안 드는 말씀들은 읽지 않다 보면, 영적 편식이 생긴다. 음식도 내 입맛에 맞는 음식만 골라서 먹고 아무리 영양가가 높다 하더라도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거절하다 보면 인체에서 영양 불균형을 유발하여 건강상으로도 결코 좋지 않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기 마음과 생각에 맞는 말씀들만 읽다 보면, 성경에 대한 편향적 사고를 갖게 되며 선과 악에 대한 분별력도 저하된다. 나중에는 ‘어째서 내게는 축복이 없을까? 왜 나는 남들처럼 건강하지 못할까? 왜 내 자녀들은 남의 자녀들보다 앞서지 못할까?’하면서 말씀을 불신하고 말씀을 비판적으로 보게 된다. 영적 편식을 버리고 다시 성경을 읽다 보면 해답을 주신다. 축복을 주신다는 말씀의 전후 맥락에서는 반드시 축복받을 조건이 제시된다. 축복받을 조건을 지키는 것이 조금 힘이 들 수는 있지만 그 말씀이 진정 축복의 말씀이다. 영적 편식에서 벗어나려면 말씀을 골고루 먹어야 한다. 그리고 조건부 말씀을 지켜 행할 때 축복된 삶으로 변화된다. 읽기 지루한 부분도 불편한 내용도 가슴이 서늘한 경고와 저주의 말씀도 반드시 읽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0
0
1
NewDaysChurch
Sep 18, 2022
In 목회칼럼
다윗왕은 죽을 날이 임박하여 왕권을 이어받은 솔로몬에게 유언하기를, ‘나는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가게 되었으니, 부디 너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라’ 하였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당부한 유언은 아버지의 뜻을 지키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에 기록된 대로 지켜 행하라고 하였다. 우리는 후손들에게 무슨 말을 남길 것인가! 내가 이루지 못한 꿈을 네가 이어받으라고 할 것인가? 아니면 다윗과 같이 하나님을 사랑하되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진실하게 사랑하라고 말할 것인가? 고 이어령 교수의 유고집 ‘눈물 한 방울’ 서문에서 말하기를,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를 쉴 새 없이 오간 게 내 인생이다. 물음표가 씨앗이라면 느낌표는 꽃이다. 궁금하게 여겼던 수수께끼가 풀리는 순간의 기쁨은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다.”고 하였다. 인생길을 가면서 궁금한 것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정말 나는 믿음대로 하나님 나라로 올바르게 향하고 있는가? 젊었을 때는 이 길도 저 길도 다녀보았지만 나이가 들수록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가고 있는가? 다윗왕은 죽을 날이 임박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은 인생에 연연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 나라에 확신을 가지고 자식에게 유언의 말을 할 수 있었다. 고 이어령 교수도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를 쉴 새 없이 오가면서 마지막 하나님 나라의 확신으로 인생의 수수께끼가 풀린 것이다. 인생의 수수께끼가 풀리면서 찾은 기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고 하였다. 우리도 인생길을 가면서 우리에겐 무엇이 궁금한 수수께끼일까? 내가 수수께끼를 풀었을 때만이 다윗과 같은 유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0
0
2
NewDaysChurch
Sep 10, 2022
In 목회칼럼
우리들은 인류문명의 대전환점을 지켜보고 있다. 만약에 스마트폰이 일상 생활화되지 않았더라면 바이러스와 싸움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2년 반 동안 거리두기와 자택대피령 등 외출보다는 온 가족들이 가정에 머무는 시간이 많았을 때 모두가 견딜 수 있었던 건 스마트폰 덕분이 아니었을까! 가정에서 가족들은 각자가 스마트폰으로 모든 정보를 보고 듣고 있다. 또한 자신이 배우고 싶어 하는 운동과 취미생활, 요리 등을 유튜브로 배우고 즐기다 보니 지루한 줄 모르고 바이러스와 싸워서 여기까지 왔다. 이처럼 스마트폰을 신체의 일부처럼 사용하는 사람을 신인류라고 명칭하며 ‘포노 사피엔스’라고 말한다. 영국의 경제주간지에서 지혜 있는 인간이라는 의미의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를 빗대어 지혜가 있는 폰을 사용하는 인간이라는 의미로 현대인을 ‘포노 사피엔스’라고 칭했다. 이와같이 인류의 문명이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있다. 어린아이로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손에는 스마트폰이 쥐어져 있는 현실이다. 이제는 스마트폰으로 자신이 원하는 상품을 구입 할 수 있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부동산, 동산, 현금과 유가증권까지 다 관리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가정의 가전제품뿐만 아니라 에어컨 히터까지도 먼 거리에서 스마트폰으로 작동시키고 있다. 얼마 전까지도 당신 없으면 못 살아 하면서 인간과 인간과의 사랑의 표현을 하였다. 이제는 스마트폰 없이는 못 산다고 말하며, 잠시도 손에서 눈에서 보이지 않으면 불안하게 여기고 있다. 우리는 분명 스마트폰이 낳은 새로운 인류문명의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스마트폰과 AI기술이 발달해도 영적인 문제만큼은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는 믿음에 달려 있다. 스마트폰은 구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오직 예수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였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만을 바라보며 포노 사피엔스 시대에 적응하여야 한다.
0
0
5
NewDaysChurch
Sep 04, 2022
In 목회칼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도마는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를 우리가 모르는데 어떻게 알겠느냐고 반문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로 가려면 내게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절대로 아버지께로 갈 수 없다고 하시면서, 길 되시고 진리 되시고 생명 되시는 예수님만 따라가면 아버지께로 간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길인지 진리인지 생명인지 모르는 도마의 질문이 우리들의 질문이기도 합니다. 나는 어디를 향하여 가는 인생길인가? 혼자서 가는 인생길인가? 아니면 주님이 닦아놓은 길을 함께 가고 있는 인생길인가? 세상에서는 내 마음대로 내가 만든 길을 가고 싶어 하며, 인생 끝자락에서야 사람들은 주님이 닦아놓은 길을 가는 경우가 허다 합니다. 사람은 자신이 가고 있는 인생길을 다 안다고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입니다. 수십 년 신앙생활을 하였지만, 때로는 영적으로 너무 무지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도마의 질문은 나를 대신해서 한 것입니다. 나는 예수님이 가신 그 길을 알고 가는가? 아니면 사람들에게 등 밀려서 가고 있는가? 이 땅에서는 사람들에게 등 밀려서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넘어야 할 육신의 장벽 앞에서는 내 믿음으로 넘어가야 합니다. 우리 인생길의 최종목적지를 알고 간다면 어떤 장벽을 만날지라도 거뜬하게 넘어갑니다.
0
0
4
NewDaysChurch
Aug 28, 2022
In 목회칼럼
사람의 겉옷만큼 유행에 민감한 것이 없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의상들이 출시되고, 오래전 세대에서 입었던 민족 고유의 의상도 시대에 맞춰서 개량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느 민족은 그들만의 고유의상을 일상복처럼 사시사철 당당하게 입기도 합니다. 우리들도 일부는 전통의상을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사시사철 입기도 하나 대부분은 거추장스럽게 여기고 일상복으로는 입지는 않습니다. 사람은 시대에 맞춰서 옷을 입어야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시대의 유행에 맞추는 것은 옷만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도 시대에 걸맞은 옷으로 갈아입어야 합니다. 의상은 시대에 맞게 입었는데 사고방식이 옛날 것만을 고집한다면 우리는 그런 사람을 옛날 사람이라고 부를 것입니다. 겉모습도, 나의 내면도, 시대에 맞춰서 옷을 입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자신의 내면을 시대에 맞는 지식으로 먼저 채우다 보니 옛것인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고, 의상이 바뀌고, 사고방식이 바뀔지라도 영원한 생명의 양식만은 변하지 아니하고 여전히 우리들에게 공급되고 있습니다. 생명의 말씀으로 먼저 내 안을 채우고, 그다음 시대에 걸맞은 옷을 입으시기를 바랍니다.
0
0
3
NewDaysChurch
Aug 21, 2022
In 목회칼럼
에스겔 선지자가 바벨론 포로로 끌려온 지 5년만에 선지자로 소명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 중에 살아남은 자가 하나님을 기억하리라. 무엇을 기억하리라고 하셨는가? 나라가 망하고 온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온 것을 생각해보아라. 왜 이곳까지 끌려왔는지, 하나님께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기억하라고 하였습니다. 생각도 생각이 나야 생각을 하는데, 아무런 생각을 못하는 백성들에게 생각이 나도록 말씀을 주셨습니다. 에스겔 6장 9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을 떠나 음란한 마음과 음란한 눈으로 우상을 섬김으로 하나님을 근심시킨 것을 기억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믿음 생활을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믿음인지, 아니면 하나님을 근심시키는 믿음은 아닌지, 내 열심이 내 의를 나타내기 위함은 아닌지, 마귀를 기쁘게 하려는 열심은 아닌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빌 3:6]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열심으로 믿는 사람들을 잡아 가두는데 앞장섰던 사람이 부활의 예수님을 만나면서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우리들도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래야 내 의를 나타냄이 아니고, 마귀의 의를 나타냄도 아니고, 오로지 주님의 의를 나타낼 때 주님이 기뻐하십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내 의는 숨겨지고 주님의 뜻만을 내세웁니다. 내 의가 숨겨져 있을 때 주님은 숨겨졌던 내 의를 드러나게 하십니다.
0
0
1
NewDaysChurch
Aug 16, 2022
In 목회칼럼
아름다운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우리의 눈은 아름다운 시각으로 바뀐다. 아름다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세상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하면서 감탄한다. 자연 만물이 하나님의 손길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손길로 만들어진 만물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드러내고 있다. 화단이나 잔디밭에서 멋대로 성장하는 잡초로 인하여 하나님은 왜 불필요한 잡풀까지도 만들어서 일거리를 만들어 주느냐고 말한다. 우리가 보기에는 잡초로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가 없다. 한국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참새는 인간에게 이로움보다는 해를 끼치는 잡새로 여긴다. 그럼에도 우리 조상들은 잡새와 같은 새의 이름을 왜! 참새로 지었을까? 참은 진짜를 말한다. 그렇다면 참새가 진짜 새라는 말인가? 얼핏 보기에는 참새는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새로 여겨진다. 그러나 가을철 수확할 곡식들 위에 앉아서 쪼아 먹는 참새를 해롭게만 여기지 말아야 한다. 농사는 심기만 한다고 수확하는 것이 아니다. 봄철부터 여름철 내내 곡식들이 성장하면서 벌레들과의 싸움이 있다. 지금이야 농약으로 다 박멸하지만 옛날에는 오로지 자연의 힘만을 의지했다. 자연의 힘이란! 참새들이 해충들을 먹잇감으로 잡아먹으며 한철을 보낸다. 그리고 가을 찬바람이 불면서 해충들도 사라지면 참새들은 일 년 동안 해충들로부터 보호해준 대가를 보상받는 것처럼 곡식을 먹는다. 농부는 손익계산을 해보라! 참새인가 해조인가? 참새가 여름철 내내 해충을 잡아주지 안했다면 어쩌면 농사를 완전히 버릴 수도 있다. 완전히 농사를 버림보다는 해충 없이 결실한 곡식을 참새들이 먹는 편이 더 훨씬 이득일 것이다. 그래서 조상들은 해조로 여기지 말고 참자를 붙여서 참새라고 하지 안했나 생각이 든다. 이렇게 자연 만물의 순환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은 참새들조차도 귀하게 여겼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손길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느낀다! 마음이 아름다우니 바라보는 눈도 아름답고, 아름다운 눈으로 세상과 사람들을 보니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하는 아름다운 눈이 열리시길 바랍니다.
0
0
3
NewDaysChurch
Aug 07, 2022
In 목회칼럼
옛날에는 손 글씨로 한자씩 자신의 마음을 담은 편지를 써서 우체통에 넣으면 우체부가 수신자에게 전달하였다. 유치환 시인의 ‘행복’이라는 시에서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하였다. 시인은 무슨 내용의 편지를 쓰는가?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하면서 사랑하는 이에게 행복한 마음으로 편지를 쓰고 있음을 시로 표현하였다. 그리운 사람에게 마음을 담은 손 글씨 편지가 그리운 시대다. 객지에 살고 있는 자녀들이 고향 집 부모에게 안부의 편지도, 존경하는 분에게도, 신세 진 사람에게도, 삶에 지쳐있는 사람들에게도 마음을 담은 손 편지로 서로 소통하였다. 예수님은 손으로 편지를 써서 제자들을 가리친 것이 아니라 제자들의 마음 판에 편지를 쓰셨다. 제자들의 마음에 담겨진 예수님의 말씀을 글로 기록한 것이 사복음서이다. 지금도 이북의 지하교회에서는 성경책을 소지하기 어려우니까 말씀을 마음에 담아둔다. 마음에 담아둔 성경 말씀이 내 마음 판에 쓴 편지이다. 오늘날 누가 손 글씨로 편지를 쓰고 있을까? 찾아보기 힘들다. 전화 통화보다도 더 쉽게 전달하는 문자가 일상화되었다. 긴 문장의 문자는 읽다가 포기한다고 아주 짧은 문자로 의사 소통을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오죽하면 세줄 문학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점점 대화의 시간도 짧아지고, 문자의 문장 길이가 줄어가는 시대에 우리는 예수님의 편지가 되어 사랑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0
0
1
NewDaysChurch
Aug 02, 2022
In 목회칼럼
북한 사람들은 대부분이 먹지 못해서 병이 들지만 아주 쉽게 고칠 수 있다고 한다. 반대로 남한 사람들은 너무 잘 먹고 많이 먹어서 생긴 병은 현대 의학으로도 쉽게 고치기 어렵다고 한다. 먹을 것이 없을 때에는 배불리 먹기만 하면 행복할 줄 알았다. 배고픈 시절을 잘 극복하고 이제는 잘 먹고 배불리 먹으면서 새롭게 생기는 질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겉으로의 질병은 그래도 현대 의학에서 고쳐주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마음의 질병이라는 복병이 또 기다리고 있다. 마음의 질병 중에 하나가 외로움이다. 평생을 노력해서 살 수 있는 기반도 닦았고, 자녀들도 제 앞가림을 할 수 있는데 무엇이 부족해서 마음으로 외로움을 타고 있을까? 겉으로 보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환경인데도 왜 외롭다고 할까? 외롭다고 말하는 분의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음에도 정을 나눌 수가 없다고 한다. 가족들과 만나서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옛날에는 온 가족이 거실에서 함께 TV를 보면서 대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시대에는 각자의 방에는 컴퓨터가 있고, 손에는 스마트폰이 있다. 식사하면서도, 잠깐 잠깐의 대화를 나누면서도, 눈은 여전히 스마트폰에 가 있다. 문자가 왔다는 신호가 오면 하던 대화를 중단하고 문자 보내기에 열중한다. 이런 상황에서 진솔한 대화가 이어지기도 쉽지 않다. 이런 현실에서 사람들은 가족은 있으되 언제나 본인 혼자가 된 듯 외롭다고 말한다. 가족을 기대하고 의지하는 대상으로 여기지 말고 사랑하고 품어줄 대상으로 여겨야 한다. 외로움은 기대치가 무너질 때 생길 수 있다. 모든 기대를 내려놓고 사랑으로 품어주면서 모든 생각의 방향을 예수님께로 돌리고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0
0
4
NewDaysChurch
Jul 24, 2022
In 목회칼럼
세상은 혼자서 살 수는 없다. 한국에서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깊은 산속에서 문명을 거부하고 혼자 살아가는 삶을 영상으로 담은 것이다. 이런 프로그램을 누가 시청할까 했는데, 놀랍게도 현대 문명을 누리면서 사는 남자분들이 의외로 많이 시청한다고 한다. 어쩌면 인간 본래의 모습으로 사는 것을 동경하는 것과도 같다. 이분들은 어째서 세상을 벗어나 깊고 깊은 산속에서 홀로 살아가는가? 왜 세상을 등졌을까? 수도원과 같은 환경을 만들고 기도하려는 것도 아니다. 이분들의 이야기는 한결같다. 질병 때문에 세상에서 별의별 치료를 다 해봐도 고칠 수 없는 불치의 병과 싸우다가 마지막 선택지인 산속으로 들어온 사람들이다. 이들은 가족도 등지고 혼자서 산속에서 들어와 살다 보니 병이 치료되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세상에서 세파에 시달리며 살다가는 죽을 것 같아서 세상을 떠나서 산속으로 들어와서 정신적으로 회복되었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이분들이 일절 사람과의 접촉 없이 사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세상에 나가서 필요한 음식물과 생필품 등을 구입한다. 결국 혼자서 고립된 채 사는 것 같아도 역시 사람들과 더불어 살고 있다. 사람은 더불어 사는 환경 속에서 살고 있다. 내가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기도 하고 누군가는 나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기도 한다. 혼자서 외롭게 사는 것 같아도 항상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이 계신다. 예수님과 더불어 살고 예수님과 더불어 먹는 삶이 되어야 한다.
0
0
2
NewDaysChurch
Jul 17, 2022
In 목회칼럼
세상 만물 중에 생명이 있다면 생존 기간이 있으며, 생명이 없는 물체라도 움직일 수 있는 기한이 있습니다. 아무리 대륙간 탄도미사일이라도 사정거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매일같이 하나님께 간구하는 기도에는 유효기간이 없으며 사정거리도 없습니다. 언제 어느 때 어디에서 어떻게 내가 구했던 기도의 응답이 이뤄질지 알 수 없습니다.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말씀을 주셨습니다. 네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닷가 모래와 같이 번성하고 충만하리라. 아브라함의 생전에 이루어질 말씀이 아닙니다. 수백 년 후에 이루어질 약속을 아브라함에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들이 구하는 기도에 응답도 내 생전에 이루어질 수도 있지만 내 후대에서 이루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에는 유효기간이 없습니다. 스티브 로슨은,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바꾸지 않는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도록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자신의 문제해결에 목적을 두고 합니다. 이렇게 자기중심의 기도에 우리는 익숙해졌습니다. 기도하는 내 노력으로 하나님을 설득해서 내가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의 뜻을 이뤄나가고자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의 유익을 위해서 기도하다가 나 자신의 유익을 위한 기도를 빼먹어도 주님은 알고 계시면서 구하지 않은 기도까지도 이루어 주십니다.
0
0
1
NewDaysChurch
Jul 10, 2022
In 목회칼럼
인생길 가다 보면 수없이 펼쳐진 길 중에서 어느 길을 선택할 것인지 망설일 때가 있습니다. 집을 나설 때는 한 길인데 조금만 가다 보면 두 개의 갈림길을 만납니다. 좀 더 가다 보면 더 많은 갈림길을 만납니다. 처음 가보는 길에서 여러 갈래 길을 만나면 얼마나 망설이나요, 물론 GPS가 있어서 상세하게 안내해 주지만, 한순간 한눈팔다 보면 다른 길을 선택합니다. 이렇게 세상 길을 찾을 때는 GPS가 안내원이 되어줍니다. 매일 다니는 길인데도 어느 때는 다른 길을 선택할 때도 있습니다. 다른 길을 선택하여 빠르게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하지만 다른 길을 선택한 결과 더 늦게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인생길에서는 길을 잘못 정했을 경우 전혀 다른 목적지로 갑니다. 우리는 영적인 길을 가고 있습니다. 영적인 영생을 향하여 가다가 어느 길이 맞는지 자신감이 없어 주저하게 될 때 우리도 영적인 GPS를 켜야 합니다. 말씀이 믿음의 GPS가 되어서 사망의 길에서 영생의 길로 바로잡아 줍니다. 길이 익숙하면 GPS를 끄고 가지만 영적인 영생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아무리 잘 알고 익숙한 길이라도 항상 말씀과 믿음의 GPS를 켜고 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지극히 정상적인 길로만 갈 수 있습니다.
0
0
2

NewDaysChurch

Admin
More ac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