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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um Posts

NewDaysChurch
Jun 15, 2024
In 목회칼럼
한국의 성공회대학교 김찬호 교수가 펜데믹을 보내고 있는 2022년에 대면 비대면 외면이라는 책을 출판하였습니다. 인간관계는 대면함으로 관계가 형성됩니다. 그러나 2020년도 초반에 전 세계를 흔들었던 펜데믹을 겪으면서 사람이 직접 만나서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는 것을 법적으로 처벌하는 기이한 사회가 형성되었습니다.  이때 만들어진 단어가 비대면이었습니다. 대면의 반대말인 비대면이 지극히 정상적 사회적인 삶처럼 여겨지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가까운 친구라 할지라도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하기보다는 영상으로 또는 통화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보편화 되어갑니다.  이런 사회적 현상 속에서 또 하나의 문화가 유행하고 있습니다. 가까운 가족들, 친구들, 이웃들은 그래도 비 대면인 영상통화 등으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관계의 범주에 들지 못하면 어느 순간 외면하는 관계로 변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사회학에서 발표되는 숫자를 보면 펜데믹 이후로 가족들 관계도 많이 비대면화 되어가고 있으며, 관심 밖의 이웃들과는 아예 외면하는 관계로 되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들은 얼마나 대면으로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지요? 물론 멀리 떨어진 가족들과는 비대면일지라도 영상통화를 할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해요. 오늘날의 가족들과의 관계는 어떠세요? 부모와 자식 간에도 서로가 바쁘다는 핑계로 전화조차도 힘들어하지는 않는지요?  인간관계는 자주 만나야 할 말도 많아지고 더 친밀한 관계가 이어집니다. 그렇지 못하고 잊어버릴 만하면 한 번씩 만나는 가족들도 할 말이 없어집니다. 예수님은 철저하게 대면하면서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이제는 그동안 자주 만나지 못한 가족들과도 친구들과도 이웃들과도 대면하면서 관계를 이어가면서 복음을 전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들은 대면하는 관계인가? 비대면 관계인가?(24년 6월 16일)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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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DaysChurch
Jun 08, 2024
In 목회칼럼
세상 어느 일이든 기초가 튼튼하면 나중 결과가 아름답게 나옵니다. 인생에서도 자신만의 기초를 닦기 위해서 끊임없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며칠 몇 개월이 아니고 몇 년이고 자신이 정해놓은 법을 지키려고 애쓰면서 실천해야 합니다. 남들이 뭐라고 하던 뒷담화를 하든 개의치 않고 지켜야 합니다.  노아는 120여 년간 산속에다 방주를 지을 때 얼마나 귀가 따가웠을까? 뒷소리와 손가락질뿐만 아니라 어쩌면 대놓고 조롱하였을 텐데, 어떻게 이런저런 소리를 이길 수 있었을까? 노아에게는 믿음의 기초를 튼튼하게 닦았기에 사람들의 소리보다는 하나님의 소리를 믿고 지켜서 끝내는 승리하였습니다. 우리는 노아 한사람이 하나님께로 바로 서 있을 때 온 가족들도 믿음에서 흔들리지 않고 오랜 세월을 방주를 지을 수 있었습니다.  인생은 초로와 같다고 말합니다. 눈 한번 감았다가 떠보니 우리들은 어디에 있어야 할까요? 하나님 나라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살아생전 믿음의 기초를 게을리하고 훈련을 게을리하다가 눈을 감았다가 눈을 떠보니 아랫동네에 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신앙은 매일 매일이 훈련입니다. 기초가 안 된 신앙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신기루처럼 보일 것입니다. 신기루는 헛것입니다. 착시현상입니다. 그럼에도 신기루를 사실인 것처럼 목숨을 걸고 쫓아갑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인생도 한낮의 꿈과 같이 지나갑니다. 개인도, 교회도, 국가도 꿈처럼 물거품처럼 사라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초를 튼튼하게 닦아가는 인생은 하나님 나라를 눈에 선히 보면서 다가가고 있습니다.
인생의 기초를 튼튼히 세우라(24년 6월8일)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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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 01, 2024
In 목회칼럼
옛말에 철들면 죽는다고, 사람이 무언가 알만하고 무엇을 좀 할 만할 때 되면 하나님은 부르십니다. 사람은 어머니 뱃속에 있는 동안 자신이 언제 세상으로 나갈지 얼마나 더 있어야 할지 모르고 열 달을 엄마 뱃속에 있습니다. 엄마 뱃속에서 자신의 형체가 하나씩 하나씩 만들어져 가는 과정을 모르고 있다가 때가 되면 세상으로 나옵니다. 이 땅에 태어나서 살아가는 과정을 우리가 얼마나 알면서 살겠어요. 앞날을 예측하지 못한 채 엄마 뱃속에 있었던 것처럼, 이 땅에서의 삶도 세월의 흐름에 맡기고 있습니다.  사람의 삶은 순간 순간이 모험이자 도전입니다. 인생을 모험으로 도전으로 살아가는 동안 생기가 있고 힘이 있고 소망이 있습니다. 모험으로 살아가면서 실패를 해도 다시 일어서서 도전합니다. 한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기회를 잡고자 했으나 놓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기회를 놓친 사람은 새로운 기회를 기다리다가 때를 만납니다. 마치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마음껏 역량을 펼치기도 합니다. 이럴 때 사람들은 말합니다. 위대한 역사를 이루었다고 평가합니다. 이런 저런 평가를 받으면서 자신의 삶을 뒤돌아볼 여유가 생깁니다.  인생의 끝은 어딜까? 어쩌면 내 코밑까지 따라왔습니다. 아니 발끝까지 따라왔습니다. 인생의 끝은 나와 동행하고 있습니다. 멀고 먼 곳에 내 삶의 끝이 기다림이 아니고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나와 동행하고 있습니다. 엄마 뱃속에 있는 태아처럼 세상으로 나갈 때를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 행복입니다.
나는 어디까지 왔을까? (24년 6월1일)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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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25, 2024
In 목회칼럼
사람은 과거를 사는 것도 아니고, 현재를 사는 것도 아니고, 미래를 사는 것도 아닙니다. 오늘 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하루 속에는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다 포함되었습니다. 하루를 잘 살았다는 것은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잘 살았고, 잘 살고 있으며, 잘 살아갈 것입니다.  사람들이 나이를 말할 때 젊었을 때에는 나이를 높이고 싶었으나 노년에 이르러서는 나이를 줄이고 싶은 심정입니다. 이렇게 사람의 나이는 높이고도 싶고, 낮추고 싶어 하는데, 역사는 어떠한가? 역사는 줄이고 싶지 않고 높이고 싶어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새날교회는 몇 살인가? 2001년에 세워졌으니 올해로 23살입니다. 돌이켜보면 하루하루가 정말 소중하였으며, 하루하루가 축복된 날들이었습니다. 하루하루가 없었더라면 오늘의 새날교회도 없습니다. 한분 한분의 보이지 않는 헌신이 있었기에 오늘의 새날교회가 세워질 수 있었습니다. 새날의 역사 23년을 뒤돌아보면 온통 성도님 한분 한분의 흔적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남기신 흔적들 중에는 아름다운 흔적도 있으나, 아름답지 못한 흔적들도 있습니다. 흔적들은 지우개로 지울 수 없는 흔적들입니다. 어째서 지울 수 없는 흔적들인가요? 하늘에 있는 책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새날의 역사에 아름다운 흔적만을 남기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을 사는 삶(24년 5월 26일)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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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18, 2024
In 목회칼럼
영국의 철학자이며 평론가인 토마스 카알라일은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우주는 성전이요, 세계는 제단이요, 인생은 제물이다. 대자연은 신의 의복이고 모든 상징, 형식, 제도는 가공의 존재에 불과하다고 하였습니다.  온 우주에 충만한 하나님의 기운이 성령이며, 성령이 임하는 곳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교회가 세워지면 물질이 제물이 아닙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 12:1절에서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사도바울의 말씀처럼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한 산 제물은 죽은 동물도 아니고, 물질도 아니고, 내가 제물이 되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카알라일의 말처럼 우리 인생이 제물이 될 때 주님께 바쳐진 삶이요, 이 길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길입니다.  성경에서는 이미 해답을 알려주었습니다. 내 인생을 제물로 드리라는 문제해결의 열쇠를 손에 쥐었어도 굳게 닫혀버린 문제의 문을 열지 않고 있습니다. 굳게 닫혀버린 인생의 문제의 문을 열지 못하는 것이 아니고 알면서도 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내게 임재했을 때만이 나의 인생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습니다.  인생을 주님께 바쳐질 때 조건부로 드린다면 수단이 되지만 아무런 조건 없이 드릴 때 목적이 됩니다. 이때 인간은 위대해지며 자유함을 누립니다. 백년을 살아도 천년을 살아도 아니 하루를 살아도 인생은 허무하다고 말합니다. 허무한 인생일지라도 우리에게는 영생이 있습니다. 죽어도 영원히 살 수 있는 생명이니 허무한 삶이 아니고 보람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가야 할 곳이 있음에 소망이 있습니다.
거룩한 산 제물이 되어라(24년 5월19일)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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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11, 2024
In 목회칼럼
성경에서는 부모를 공경하라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하였습니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네가 잘되고 이 땅에서 장수하리라. 그렇다고 자녀들만이 부모에게 일방적으로 효도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엡6: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부모의 의무를 다하고 자녀의 의무를 다할 때 비로소 행복한 가정으로 이루어집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의 생각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접근을 하니까 자녀들과 갈등이 생기기도 합니다. 부모는 자녀들이 원하지도 아니한 것들을 사주면서 배부르니까 고마운 줄을 모른다고 자녀들만 책망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부모 세대가 겪었던 보리고개와 같은 어려운 시절을 말해줍니다.  자녀들은 부모 세대가 겪었던 고생을 이해하지 못하니까, 왜 그런 말을 우리에게 하느냐 하면서 반문합니다. 부모와 자녀들과의 대화에는 전혀 공감대를 이루지 못한 것입니다. 효도는 자녀들만의 노력도 아닙니다. 부모들만의 욕심으로도 아닙니다. 서로의 삶을 이해할 때 효도가 이루어지고 서로 사랑하는 관계가 이어집니다.  이민사회에서 흔히들 하는 말이 있습니다. 문화적 차이라고 말하면서 부모는 자녀들의 문화를 이해하려 하지 않습니다. 부모 세대는 과거를 돌이켜 보면 자녀들이 겪고 있는 문화를 다 겪어봤지만, 자녀들 세대에서는 부모가 겪었던 것들을 전혀 겪어보지 못했습니다. 부모와 자녀들과의 문화적 격차를 줄일 수 있는 것은 서로의 문화를 이해할 줄 알아야 합니다.
부모와 자식들 (2024년 5월 12일)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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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04, 2024
In 목회칼럼
예수님의 공생 기간 중에 하루도 쉴 새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오는가? 예수님의 한 마디의 말씀이면 어떤 질병도 치료되는 기적과 같은 일들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어린 아이들이 예수님을 찾아오면 안아주시고 안수하시고 축복기도까지 해주었습니다. 어른들에게는 안수보다는 말씀으로 낫게 하셨는데 어린아이들에게는 특별하게 하셨습니다. 몰려오는 인파에 시달린 제자들은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사람들을 향하여 꾸짖었다고 하였습니다.  이 모습을 보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진노하시면서 어린아이들이 내게로 오는 것을 막지 말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의 나라는 어린아이들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어째서 하나님의 나라는 즉 천국은 어린아이들의 것이라고 하셨을까?  어린아이들에게는 분열이 없습니다. 남녀의 사랑도 없고, 죽음도 이별도 슬픔도 없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새들과도 말하고 꽃들과 말하고 인형과도 말하면서 친구처럼 지냅니다. 적도 없고 아군도 없는 천진난만한 모습이 곧 천국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어린이를 얼인이라고 부릅니다. 어린아이들 중에서도 갓난아기는 얼 덩어리입니다. 얼은 우리의 정신을 말하며, 얼은 우리의 얼굴을 말합니다.  얼굴에 나타난 얼이 곧 정신입니다. 얼굴에 나타난 얼이 어린아이와 같을 때 우리는 천국의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어린이날에 어른들의 모습에서도 얼인이의 모습이 얼굴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이때 우리 안에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린 아이들의 것이라(24년 5월 5일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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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 27, 2024
In 목회칼럼
성경에서 등장하는 위대한 인물들의 자랑거리를 살펴본다면 거의 다 겸손하게 하나님만을 자랑하였습니다. 이 중에서도 사도바울은 철저하게 자신의 자랑거리를 앞세우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영적인 자랑을 하는 것도 [고후11:30]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즉, 약한 것을 자랑하는 바울은 무엇을 자랑하였을까요?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힌 자랑, 수없이 매 맞은 자랑, 여러 번 죽을 뻔한 자랑, 태장을 다섯 번이나 맞은 자랑, 돌에 맞고, 항해 중 세 번이나 파선한 자랑, 춥고 목마르고 굶고 헐벗었던 자랑들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자랑은 가장 약한 것을 자랑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자랑거리는 무엇일까요?  어쩌면 예레미아 선지자가 자랑하지 말라고 한 자랑거리가 있습니다. [렘9:23]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요함을 자랑하지 말라, 세상에서 제일 자랑하고 것임에도 이런 것을 자랑하지 말고 하나님을 아는 것을 자랑하고 하나님이 나를 아는 것을 자랑하라고 하였습니다.  독일의 위대한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이런 고백을 하였습니다. 자신은 평생 고질적인 질병을 통해서 니체가 되었다. 질병이 없었으면 영원히 니체가 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병 때문에 인생을 깊이 생각하게 되고, 질병이 자신의 몸에 불붙을 때 니체의 학문도 불이 붙었다. 병든 천재의 작품이 건강하기 때문에 앓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보약이 되었다. 우리들도 남들에게 말하기에 창피스러운 일들을 자랑스럽게 발표할 수 있을까? 위대한 인간의 정신은 어떤 부조리한 삶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나의 자랑거리는 무엇일까?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고 오로지 하나님을 찾는 생활, 하나님을 만나는 생활,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을 자랑하시길 바랍니다.
나의 자랑거리는 무엇일까?(24년 4월 28일)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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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 20, 2024
In 목회칼럼
인생은 사는 것이 아니고 누리는 것입니다. 산다는 것은 의무처럼 느껴지나 누린다는 것은 즐기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무엇을 하든지 누리면서 일을 하다 보면 하는 일에서 맛을 아는 것입니다. 인생을 누리다가 보면 먹는 맛도 있어야 하고, 노는 맛도 있어야 하고, 남들이 모르는 것을 내가 안다는 아는 맛도 있어야 합니다. 어쩌면 인생은 맛으로 살고 있습니다.  옛말에도 저 잘난 맛에 산다고 합니다. 남들이 어떻게 보든지 말든지, 뒷소리를 하든 말든, 내 인생 내 멋으로 사는 분들도 계십니다.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살 수 있는 삶의 여유가 인생의 맛입니다. 이렇게 먹는 맛도 좋고 노는 맛도 좋지만,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 맛을 보세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먹고 있는가? 누군가가 전하는 말씀을 귀로만 먹지 말고 내 입술로 먹을 때 말씀의 맛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도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이런 염려는 식물과 동물의 염려라고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보고 말씀의 맛을 누리는 삶이 되시길 바랍니다.
말씀의 맛! (2024년 4월 21일)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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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 13, 2024
In 목회칼럼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같은 말을 두 번 이상 반복하면 짜증을 냅니다. 제대로 이해 못한 것 같아서 다시 반복하면, 화를 내면서 한번만 이야기해도 다 알아들었다고 버럭 화를 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세 번을 반복하였습니다.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이어서 두 번째에는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째에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왜 세 번씩이나 반복하며 사랑하느냐고 말씀을 하셨을까? 사명을 주시기전에 먼저 주님과 베드로와의 사랑하는 관계를 확실하게 하고자 하였습니다. 세상 그 어떤 것보다 정말 주님을 사랑한다고 확실하게 대답을 받으면서 두 가지 사명을 주셨습니다. 첫 번째 사명은 내 양을 먹이라고 하였습니다.  두 번째 사명은 내 양을 치라고 즉 돌보라고 하였습니다. 내 양을 먹이라고 한 것은 꼴만 먹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먹이라고 하였습니다. 양을 치라는 말씀은 내 양이 아닌 예수님의 양을 돌볼 때 의무가 아니고 사명으로 돌보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베드로에게 사랑을 확증한 후에 사명을 주셨듯이 우리들에게도 매일 같이 질문합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사랑한다고 하면 내 양을 먹이고 내 양을 돌보라고 하십니다. 양을 돌봄이란 목자가 양을 돌보기도 하지만 더 나가서는 양이 양을 돌보는 사랑하는 관계가 이루어지기 바랍니다.
나는 예수님을 사랑하는가? (24년4월14일)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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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 06, 2024
In 목회칼럼
예수님은 33년이라는 짧은 삶을 사는 동안 온갖 고난과 수치와 수모를 겪으시고 죽으셨습니다. 세상에서의 죽음은 모든 것이 끝이 났고 한 생명도 없어졌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 땅에서 십자가의 죽음은 끝이 아니고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셨습니다. 새로운 세계란 영생이라는 영원한 생명의 세계를 열어주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사람들이 죽음으로 이 땅에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해결된 것입니다. 무엇이 해결되었다는 것일까? 유한된 이 땅에서의 생명이, 영원한 생명의 세계로 옮겨진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쉬지 않고 부활을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으라고 그리하면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는 영생을 주시겠다고 전파하십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의 가장 큰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신앙으로 성숙할수록 문제에 매달리지 아니합니다. 그 문제를 놓고 몇 날 며칠 밤잠 설치며 고민에 빠지지 않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할 때 없어진 줄 알았는데 없어진 것이 아니고 해결된 것입니다. 오늘도 내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할 때 오늘의 문제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오늘의 문제가 해결된 것입니다.
문제는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해결된 것이다(24년 4월 6일)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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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 30, 2024
In 목회칼럼
세계 많은 종교에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고, 오직 예수님만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세계 많은 종교에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나, 분명히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음에 부활이라고 말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살아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이 아니라,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심으로 부활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여자들은 부활의 예수님을 만나러 무덤에 간 것이 아닙니다. 아무도 없는 새벽시간에 죽은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이나 다시 넣으려고 왔는데, 놀랍게 부활의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부활의 예수님이 여자들에게 첫 인사가 샬롬, 평안하냐! 이 시간에 우리들에게 부활의 예수님은 평안하냐? 라고 하십니다. 죽음을 이기고 부활의 승리는 예수님만의 승리가 아니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우리 모두의 승리로 부활을 축하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24년 3월31일)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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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 23, 2024
In 목회칼럼
예수님이 베다니에서 예루살렘 성으로 가시기 전에 감람산 인근에서 제자 두 명을 동네로 보내면서 매여 있는 나귀와 새끼를 풀어서 내게로 끌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매여 있다는 것은 임자가 있는 나귀와 나귀새끼인데, 망설이는 두 명의 제자들에게 누군가가 왜 매여 있는 나귀를 끌어가려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끌고 가라 할 것이다. 이렇게 구한 새끼 나귀를 타시고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갈 때 수 많은 백성들이 길가에서 종려 나무가지를 손에 들고 흔들면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외치면서 환영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생애에서 처음이요 마지막으로 환영을 받았습니다. 백성들의 마음속에는 응어리들이 폭발 직전까지 가득차 있는 상황입니다. 백성들은 춥고 배고픈 것보다 더 한 것은 로마 식민지로서의 억압으로 인한 분노가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인도의 간디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자신은 신을 백성들 속에서 보았고, 백성들은 신을 간디에게서 보았다고, 간디가 본 신은 백성들에게 힘이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삼백여년간 영국의 식민지생활에 지치고 지쳤을 텐데 무슨 힘이 있어 보인다고 하였을까? 인도 백성들은 영국의 압제로부터 마음속에 팽창된 힘을 보았다고 하였습니다. 분노가 마음속에 터질듯하게 팽창되었음을 보고는 힘이 있는 신을 보았다고 한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도 분노가 마음속에 팽창되어 곧 터질 듯 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니까 분노가 팽창되어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대대적으로 환영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환영은 금방 시들어지고 다시 예수님을 십자가 못 박으라고 분노의 폭발을 예수님께 돌렸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수난을 겪으면서 결국 십자가의 죽음이 실패가 아니고 영광의 승리를 하였습니다. 종려주일은 나를 죽이고 오로지 예수님의 마음을 마음에 담아두면서 부활을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부활을 준비하는 종려주일 (24년 3월24일)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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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 16, 2024
In 목회칼럼
신앙에서도 세상에서도 위로 올라갈수록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다리의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 위를 올려다보아도 아찔하고 아래를 내려다보아도 아찔합니다. 높은 사다리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땅이 나를 잡아끄는 것 같고 하늘을 올려다보면 하늘이 잡아당기는 듯합니다. 사다리를 한 단계, 한 단계 올라갈 때는 몰랐는데 막상 도달해서 위아래를 바라보았더니 내가 서 있는 높은 자리가 결코 쉬운 곳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이것을 깨달을 때 위로 올라갈수록 사람이 사람다워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올라갈 때는 두렵고 불안한 마음으로 올라갑니다. 정상에서 위도 바라보아야 하는데 위는 바라보지 않고 오직 아래만 바라보니까, 세상이 다 자기 것으로 착각할 때 사람이 사람다워질 수 없는 교만이 앞섭니다. 왜 그럴까! 아래만 바라보았지, 위를 바라보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위를 바라보면서 위에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합니다. 위를 바라볼 때 비로소 여기까지 올려주신 주님의 은혜를 생각합니다. 사다리 중간까지 와서는 더 이상 올라가지 않고, 내려가지도 않고는 여기가 좋습니다! 하면서 만족해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위로 향하여 날마다 올라가야 합니다. 그곳에서 하늘도 바라보고 땅도 바라볼 때 자신의 위치가 얼마나 소중한 줄을 알게 합니다. 사순절을 절반 정도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계속 위로 향하여 전진해야 합니다. 어디까지 부활의 날까지 땅을 바라보지 않고 부활을 향하여 오늘도 내일도 전진하시기를 바랍니다.
어디를 바라볼 것인가? (24년3월17일)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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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DaysChurch
Mar 09, 2024
In 목회칼럼
내가 듣기에 좋으면 소리라고 말하며, 내가 듣기에 시끄러우면 소음이라고 합니다. 반대로 나는 소리로 들려서 볼륨을 높였더니 다른 사람들은 소음이라고 듣기 싫어합니다. 미국은 수많은 국가의 이민자들로 구성되었습니다. 이민자들의 성향에 따라서 조용한 성품도 있지만 흥이 넘치는 이민자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집 밖에서 틀어놓고 즐깁니다. 이웃들이 항의 합니다. 너무 시끄러우니 소리를 줄여달라고 요구합니다. 이들은 의아해하면서 이렇게 좋은 음악을 이웃들과 함께 나눌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고, 내가 듣기에 좋으면 소리가 되지만 내가 듣기에 시끄러우면 소음이 됩니다. 세상은 나를 기준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내 의견만이 가장 좋다고 강하게 주장할 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고립 되어가고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배려할 수 있는 사회, 상대방의 입장도 생각해보면서 이해하는 사회가 오늘날 우리들에게 필요로 합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강하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사순절을 보내면서 생명의 말씀을 붙잡고 광야의 삶을 살아보라고 권면합니다. 예수님의 고난에 조금이라도 동참하고자 하루 한 끼 금식을 하기도 합니다. 이보다는 문화금식 하는 것이 더 고난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 사용을 줄여보고, TV 시청시간을 줄여보고 인터넷사용도 줄여보는 것이 세끼 금식보다 힘들고 불편하다고 합니다. 힘든 것을 절제할 때 나도 모르게 광야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사순절 기간에 문화금식을 하면서 예수님의 고난당하심을 조금이나마 경험해보세요. 내가 듣기에도, 이웃들이 듣기에도, 주님이 듣기에도, 아름다운 말씀을 읽고 들을 때 소음이 아니라 가장 좋은 소리를 들으면서 사순절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소리와 소음 (24년3월10일)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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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DaysChurch
Mar 02, 2024
In 목회칼럼
사순절은 방향을 정하는 절기입니다. 무슨 방향을 정하는가? 평안한 삶의 방향에서 불편한 광야의 삶으로 방향을 바꾸어야 합니다. 풍요로운 삶을 누려도 부족한데 어째서 불편한 광야의 삶으로 방향을 바꾸라고 하는가? 삶이 풍요로우면 예수님을 바라보는 삶이 아니고 좀 더 풍요로운 삶을 누리려는 곳으로 방향을 바꿉니다. 사순절은 예수님이 겪었던 고난의 과정을 함께 가면서 마지막 부활을 준비하는 절기입니다. 왜! 풍요로운 곳을 벗어나 메마르고 삭막한 광야의 삶을 살아보라고 하는가! 광야에서는 볼 것들이 없습니다. 들을 수 있는 것들도 없습니다. 볼 것들이 없고 아무소리도 들을 수 없는 환경에서는 오로지 위에 계신 예수님만을 바라 볼 수밖에 없습니다. 광야의 삶을 살아보아야 예수님을 더 가까이에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이 땅에서 광야의 삶은 어디에서 살아볼 수 있을까? 문명의 생활에서 벗어나면 광야의 삶이 됩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스마트 폰만 사용하지 안 해도 어쩌면 광야와 같은 삶이 될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내가 좋아하는 취미생활도 내가 좋아하는 영화도 얼마든지 볼 수 있으며, 인터넷이 연결된 세계 어느 지역과도 영상통화가 가능합니다. 사순절만큼이라도 문명생활에서 벗어나는 것이 광야의 삶입니다. 현대문명을 잠시라도 벗어나서 예수님의 고난 길을 함께 가면서 부활을 준비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광야에서 삶(24년 3월 3일)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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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DaysChurch
Feb 24, 2024
In 목회칼럼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위치한 외국인 선교사들이 잠든 양화진 외인묘지가 있습니다. 14여개 국가에서 한국으로 파송된 선교사들이 복음을 위해서 사역하다가 한국 땅에묻히신 분들입니다. 약 사백여명의 선교사들과 가족들이 죽어서도 본국의 가족들 품으로 돌아가지 아니하고 한국 땅에 묻히면서 재림하실 예수님을 기다리며 잠든 묘지입니다. 이분들은 이 땅에서의 생명을 다하면서 유언처럼 남긴 말이 이 땅에 묻히리라, 이분들은 한국을 얼마나 사랑했으면 유교와 불교와 가난에 찌들어있던 이 땅에 예수님의 사랑을 심어주었고,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였습니다. 선교사들은 한국인들과 동화하려고 성씨도 이름도 개명하였습니다. 그런가하면 자신만이 죽어서 한국 땅에 묻히는 것이 아니라 아내도 자식들조차도 이 땅을 떠나지 아니하고 대대로 살면서 한국 화된 가정들이 많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연세대학을 세웠던 언더우드 가문은 원씨로 개명하여 지금까지도 후손들이 한국에서 살고 있으며, 대전의 한남대학교와 호남지역에 수많은 결핵요양원을 세웠던 린튼 가문은 인씨로 개명하고 지금까지도 후손들이 4대째 한국에 살고 있습니다. 한국정치계에 등장했던 인요한 박사도 린튼 가문의 후손입니다. 이분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기독교의 꽃을 피울 수 있었습니다. 이분들은 예수님의 어떤 말씀을 붙잡고 한국 땅에서 대대로 살게 하였을까?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이요, 마지막 당부하신 말씀을 붙잡았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할지어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세상 끝 날은 예수님이 재림하는 날입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며 해외 각국에서 헌신하는 선교사님을 기억하고 기도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이 땅에 묻히리라 (24년 2월25일)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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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DaysChurch
Feb 18, 2024
In 목회칼럼
선교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요, 예수님을 전하는 것입니다. 수많은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하는 지역은 결코 평안한 환경이 아닙니다, 선교사님들은 나를 높일 수 없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를 내려놓고 오직 예수님만을 높이고 앞세우며 주어진 사명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떤 방법으로 하나님나라를 전파하셨을까? 오늘날 우리들의 전도방법과는 전혀 다른 방법을 사용하셨습니다. 어떤 방법을 사용하셨을까? 예수님은 나를 영접하라고 구호를 외치듯이 전하기보다는 먼저 전도대상자들과 친구가 되어주셨습니다. 친밀한 관계를 맺으시고 그리고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예수님처럼 전도대상자들과 관계를 맺어가면서 서둘지 않고 복음을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전도하는 방법을 보면, 첫 번째 복된 소식을 가르치며 전하였습니다. 두 번째는 긍휼한 마음으로 전도하였으며, 세 번째는 질병을 고쳐주었으며, 네 번째는 먹을 것을 주었으며, 다섯 번째는 세상으로 향한 마음을 하나님나라로 방향을 바꾸도록 마음을 바로잡아주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가르치고, 전도하고, 고쳐주는 사역을 하셨듯이 우리들도 전도대상자를 먼저 긍휼한 마음으로 가르치고 전도하고 고쳐주는 사명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전하는 사명 (24년2월18일)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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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DaysChurch
Feb 10, 2024
In 목회칼럼
예수님시대에 바리새인들은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올무에 걸리게 할까 여러번 시도했지만 다 실패했습니다. 이번에는 세금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예수님당시나 오늘날이나 세금문제는 누구나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안낼까 하는 탈세가 아니고, 어떻게 하면 적게 낼 수 있도록 절세를 할 것인가! 미국에서의 세금탈세는 무덤까지 추적한다고 할 만큼 탈세는 무섭게 처벌합니다. 그러나 탈세가 아니라 절세를 잘해서 합법적으로 세금을 적게 내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작은 비즈니스를 운영하면서 절세보다는 아애 내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합법적으로 세금내고 운영한 비즈니스를 매매할 경우 세금 낸 매상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다시 예수님시대로 돌아가 보면, 바리새인들이 예수에게 질문합니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옳은 것이냐? 옳지 못한 것이냐? 이 질문을 받은 예수님은 명쾌하게 답변하기를,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들도 세상 세금을 잘 내듯이 하나님에게도 잘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것은 소득의 십일조입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느냐 했더니 백성들 대답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였느냐 라고 반문하였습니다. 적든 크든 내게 수입이 있으면 십에 일을 하나님께 기쁘게 드렸을 때 기쁘게 받으시고 다시 뒤돌려주심을 믿고 하나님의 것을 잘 드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것과 세상의 것을 구별하자(24년 2월11일)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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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DaysChurch
Feb 03, 2024
In 목회칼럼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였으면, 예수님의 삶을 배워가야 합니다. 사복음서에는 예수님이 어떻게 사셨는지 자세하게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마다 예수님은 이렇게 사셨구나! 감동하면서도 예수님의 삶은 배우려 하지 않습니다. 현대인들은 예수님의 삶은 까마득하게 잊고 살면서 자신의 구원에는 열심입니다. 이제는 우리들만의 세계, 교회 안에서 믿음의 사람들만의 세계를 벗어나서 아직도 예수님을 모르는 비 기독교인들과도 협력해야 합니다. 이런 일을 위해서 교회에서는 직분자들을 세웁니다. 직분자란 꼭 집사다 권사다 장로다 라는 호칭만이 직분자는 아닙니다. 나에게 예배드리는 직분을 주셨구나, 기도하는 직분을 주셨구나, 찬양하는 직분을 주셨구나, 봉사하는 직분을 주셨구나 여기시고 교회 안에서와 교회 밖에서 최선을 다할 때 세상 속에 새날교회가 됩니다. 교회는 산속 깊은 곳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무인도와 같은 섬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세상 속에 존재해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 속에 있는 교회가 됩니다. 이런 일을 위해서 직분자를 세웠습니다. 건물교회가 일일이 하지 못하는 일들을 직분자들이 하셔야 합니다. 그럼에도 직분자들이 받은 직분을 헌신짝 버리듯 쉽게 쉽게 버리고, 다시 받기도 합니다. 내가 받은 직분에 감사함으로 교회 안에서와 교회 밖에서 내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여 칭찬받는 한주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NewDaysChurch
나의 직분에 감사하는가! (24년2월4일)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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