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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새날이 되자는 목표로

2001년 3월 14일 창립을 준비하여

2001년 5월 27일 첫 예배를 드리며

새날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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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68 Duluth Hwy

Duluth GA 30096

678-380-4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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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 by New Days Church, www.newdayschurch.org

                             무엇이 두려운가?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무엇일까요?

죽음일까, 질병일까, 귀신일까, 아니면 호랑이나 사자일까?

어떤 이는 사람이 가장 무서운 존재라고 말합니다.

두려움은 마음에서 만들어집니다.

같은 사람을 보아도 그 사람에 대한 인상은 각기 다릅니다.

누구는 참 선하게 생겼다고 말하고, 다른 사람은 사기꾼같다고 합니다.

또 다른 사람은 두렵고 무섭게 보인다고 말하기까지 합니다.

최근 만연하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이 자신을 지배하니,

세상이 망하는 것처럼 사재기를 하는 분들이 많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왜 저럴까’하며 비웃던 사람도 나중에는 사재기에 합류하게 됩니다.

그들은 사재기를 두려움에 대한 예방책으로 여기는 것 같습니다.

두려움에 대한 궁극적인 예방책은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특별히 사순절 절기 중 말씀을 손으로 필사하면서 기도할 때

두려움이 사라지고 평안함을 주십니다.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내일도 이미 와 계셔서 우리들과 함께 하십니다.

Mar. 8. 2020

사순절을 어떻게 보내야 성경적일까?

 

사순절은 성경에서 증명할 수 없는, 사람이 만든 계명입니다.

추수감사절이 미국의 문화임에도 절기처럼 보내는 것과 같습니다.

사순은 사십 일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왜 사십 일일까요?

성경에서 등장하는 많은 분들이 사십 일 동안 놀라운 일을 하였습니다.

노아의 홍수 때에는 사십 주야로 비가 내렸고, 출애굽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사십 년간

생활했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금식한 기간 역시 사십 일이고,

가나안 정탐 역시 사십 일이었습니다.

엘리야도 호렙산까지 사십 일을 걸었고, 사울왕과 다윗왕 역시 사십 년씩 통치했습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도 사십 일간 금식기도를 하셨습니다.

이처럼 사십이라는 숫자는 고난과 영광을 나타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기까지의 사십 일을 의미하는 사순절 기간,

우리는 예수님이 고난당하심을 기억하며 옷을 찢기 보단 마음을 찢으며 예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특별히 요엘 선지자 시대처럼 회개운동을 통해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켜 재앙을 멈추게 하시기를 함께 기도하기 바랍니다.

Mar. 1. 2020

서로 먼저 대접하라!

 

성경은 일방적으로 네가 먼저라고 하면서 나중에 서로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고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때 서로 사랑하는 관계가 됩니다.

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나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고 이웃에게도 주어졌습니다.

이 말씀을 지키다 보면 서로 사랑하는 이웃이 됩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7장 12절에서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누군가로부터 대접받기를 좋아합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내가 대접을 받고자 한다면 네가 먼저 대접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모두를 향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따라 남을 먼저 대접할 때,

서로가 대접하는 관계가 이뤄집니다. 이것을 사회에서는 황금률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구원의 은혜만 생각한다면 우리들 역시 얼마든지 먼저 이웃을 대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받은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를 생각치 못하니 남들이 나를 먼저 대접해 줄 때만

남들을 대접하려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이론으로만 가르치지 않으시고 몸소 실천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한다면 예수님의 마음도 닮아가야 합니다.

사람을 바라보면 도저히 내가 먼저 다가설 수 없을 지라도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구원의 은혜를 생각하면 얼마든지 다가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사탄에게는 절대 다가서지 마시고 내게 다가올지라도

영적 능력으로 물리치고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Feb. 23. 2020

가르쳐 지키게 하라!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 전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예수님은 마태복음 28:19-20절의 말씀에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가라고 하십니다.

어디로 가라고 하시는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찾아가서 예수님의 증인이

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증인은 어느 누구든 가르쳐서 지키게 하라 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가르치는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가르침을 받았다면,

이제 배운 대로 삶 속에서 행실로 보여줘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내 삶이

배운 바와 일치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많은 크리스쳔들은 교회 안의 삶과 밖의

삶이 나뉘어져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배우고 배운 대로 살겠다 다짐하고는 교회 문을 나와 주차장에 다다르면

이미 은혜로운 말씀들이 싹 씻겨지고 세속화됩니다. 이래서 어떻게 예수님이 당부하신 선교의 사명을

다하시겠습니까!

승천하신 예수님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계신다고 약속하셨는데, 누구와 항상 함께 하신다

하셨나요? 예수님이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침에서 끝나지 않고 가르치고 지켜 행하게 하는 사람과

항상 함께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전한 가르침을 이론에 머무르지 않고 사람들로 지키게

하려면, 가르친 사람이 먼저 행실로 보여줘야 합니다. 입술로만 복음을 전할 것이 아니라,

내 삶 속에서 복음을 나타내는 새날교회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Feb. 16. 2020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예물

 

내가 가장 소중하게 아끼는 물건을 주님이 필요하다고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선뜻 내놓으시겠어요?

아니면 몇날 몇일을 고민하다가, ‘주님! 다른 것으로 드리면 안될까요?’ 라고 거절하시겠어요?

사람들은 말하기를, 이 물건 만큼은 내 분신과 같이 여기기 때문에 절대 어느 누구에게도 줄 수 없다고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렸을 때 어떻게 갚아주시는지

사무엘상 1~2장에 아주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식을 낳지 못하는 한나는 울며불며 서원기도까지 하면서 결국 아들을 얻었습니다.

어렵게, 어렵게 얻은 아들이 사무엘입니다. 자식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께 서원기도하기를,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자식이 없다고 아랫동서로부터 온갖 멸시를 다 받으면서 기도로 얻은 아들을 젖을 뗄 무렵에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한나에게는 사무엘이 자신의 삶이었고 인생이었습니다.

이런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아들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어쩌면 자신의 삶을, 자신의 인생을 하나님께 드린 것입니다.

하지만 대역전의 사건이 일어납니다. 이렇게 애지중지하던 아들을 성전에 드린

한나의 마음을 아신 하나님은, 한나를 돌보시사 그로 임신하여 세 아들과 두 딸을 낳게 하셨습니다.

마음 속 깊이 숨겨놓은 아들을 서원한 기도대로 여호와께 드렸더니,

하나님은 한나의 마음을 헤아리시고 그에게 다섯 명의 자녀들을 주셨습니다.

무엇을 하나님께 드릴지라도 감사한 마음으로 드리세요.

하나님이 받으시고 30배, 60배, 100배로 다시 채워주십니다.

그러나 보상받을 마음으로 드리면 아무리 드려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지 않습니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가정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Feb. 9. 2020

성경을 읽고 있나요?

 

성경에서 밥이라고 하면 빵이 생각나고, 빵 하면 만나가 생각나고, 만나는 또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겨집니다. 육신은 밥을 아주 적게 먹을 수도 없고, 너무 많이 먹을 수도 없습니다. 밥을 멀리하고

적게 먹으면 체력을 유지 못하고, 너무 많이 먹으면 역시 체력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적당하게 먹어야

함에도 혹 과식으로 연결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영적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은 얼마나 즐겨서 먹고 있나요? 최근 들어 교회에 성경책을 들고

오는 사람들은 점점 줄고 있습니다. 성경책 대신 스마트폰 어플을 이용해 성경을 읽고 찬송을 하기도

합니다. 이젠 필기도 공책이 아닌 태블릿이나 노트북을 사용합니다. 일부 학교에서는 종이책과 연필이

아닌 전자책과 키보드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이런 시대의 흐름과 상반되는 학자들의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전자책이 아닌 종이책을 주었을 때

학생들의 집중력과 학습 성취도가 2배 이상 높았고, 키보드와 태블릿을 사용해 글을 쓰고 공부한

아이들보다 직접 손으로 써가며 공부한 아이들이 월등한 학습능력을 보여줬습니다.

ADHD와 같은 학습장애의 경우 발생확률이 50%정도가 적었고, 기억력은 80%, 성적은 30%가

더 높았습니다. 이러한 결과가 나온 이유는 종이에 적힌 글을 보고 손으로 직접 글을 쓰는 과정 자체가

뇌를 활성화시키고 자극하기 때문입니다.

시대에 뒤떨어진 구시대적 방식처럼 보이지만, 사실 뇌를 가장 발달시키는 효율적인 방법은 종이와

펜이라고 연구는 말합니다. 종이에 인쇄된 글자를 보고 손으로 쓰는 공부가 효과적이듯,

아직은 성경책으로 보고 손으로 쓰는 말씀이 묵상하는데 더 효과적입니다.

조금 불편한 신앙생활처럼 여겨질지라도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해 온 가족이 말씀을 읽는

가정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Feb. 2. 2020

나는 왜 기도하는가?

 

기도는 호흡이라고 말합니다.

숨을 쉬지 않고는 살 수 없듯이, 믿음의 사람들은 기도없이는 견딜 수 없습니다.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쉴 새 없이 기도합니다.

기도는 호흡처럼 우리의 삶에 항상 함께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왜 숨을 쉴까요? 인체구조상 자신도 모르게 숨을 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도는 왜 할까요? 기도 역시 그렇습니다.

우리는 늘 습관적으로 무엇인가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하나님께 내가 원하는 것들이 이뤄지기를 바랐습니다.

이제부터 하나님이 원하는 것들이 나를 통해 이뤄지기를 기도해 보는 건 어떨까요.

기도는 사명입니다.

사명감을 가지고 기도하다 보면 나 자신을 위한 기도보다

먼저 이웃을 위한 중보기도를 합니다.

이제부터는 기도의 순서를 바꿔 이웃들을 위한 중보자가 되세요.

그때에 누군가가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을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를 위한 중보자가 되어줄 때,

누군가는 나를 위해 기도합니다.

중보기도를 통해 내가 미처 구하지 못한 것까지도 이뤄지는

놀라운 기도의 사명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Jan. 26. 2020

누구를 닮아가는 인생인가?

 

 

  이런 책제목이 있습니다, “아버지, 당신은 카피되고 있습니다.” 이 책은 부모, 특히 아버지들에게 많은 경각심을 일깨워줍니다. 왜냐하면 자녀들은 아버지의 등을 보고 인생을 배우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고사성어 중 부전자전이란 말이 있습니다. 신조어로는 부전여전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부전자전이든 부전여전이든 자식들이 부모의 성품이나 행동, 습관 등을 닮아간다는 뜻은 같습니다.

  부모의 행동이 자녀들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자녀들이 은연중에 부모를 닮아간다는 뜻입니다. 자녀의 행동과 말투를 듣고 그가 누구 집 자식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누구를 닮아가는 인생을 살고 있나요?

  세상을 자신있게 살아온 아버지는 자식에게 ‘너는 나를 닮으라’고 말하고, 세상을 부끄럽게 살아온 아버지는 자식에게 ‘너만이라도 나를 닮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우리들은 어떤가요? 자녀들에게 자신있게 나를 닮으라고 말할 수 있는 부모일까요, 아니면 너희들만큼은 절대 나를 닮지 말라고 권면하는 부모일까요?

  누군가와 함께 동행 할 때, 우리들은 닮아갑니다. 지금 우리들은 예수님과 동행하고 있나요? 만약 그렇다면 우리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예수님을 닮아가고 있을 겁니다. 자식이 부모의 외모와 습관까지 닮아가듯이, 예수님과 동행하다보면 우리들의 얼굴과 사용하는 언어마저도 예수님을 닮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목표는 무엇일까요? 바로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마치 아들 딸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외모와 성격을 닮아가는 것처럼, 우리들도 예수님을 닮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예수님과 꼭 닮아갈 때, 그것을 보는 예수님은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나를 만난 사람들마다 “당신을 만나니 마치 예수님을 만난 것 같다”고 말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Jan. 19. 2020

예배와 축복

 

                                       웃어야 복이 올까요? 복이 와야 웃을까요? 이에 대한 해답은 웃어야 복이 온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예배드리면 축복을 받을까요? 아니면 축복을 받기 위해서,

                               무엇을 얻기 위해서 예배드릴까요?

                         기도하고 예배드리는 목적을 축복과 연관 지어서 기도하고 예배드립니다.

                         나는 왜 예배를 드려야 하는가? 나를 구원해 주신 은혜에 감사하고 감격의 표시로

                         예배드려야 합니다.

                         받기 위해서 예배드림이 아니고 이미 받은 것에 감사해서 예배드려야 합니다.

                         내가 받은 것 중에 가장 큰 것은 나를 지으시고 구원해 주심에 감사하세요.

                         하나님이 나를 지으시고 구원해 주시는 목적이 무엇인가요? 

                         이사야 43장 21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이 하나님을 위해서 나를 지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나를 지으신 것은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려함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찾는 사람은 찬송하는 사람 즉 예배드리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금년 일년 내내 하나님이 찾고 계시는 예배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Jan. 12. 2020

Jan. 5. 2020

시간과 세월

 

이전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며 쉽게 들을 수 있는 말이 있습니다.

세월이 아깝다, 세월이 허무하다, 혹은 세월이 너무 빠르게 지나간다고 합니다.

그에 반해 시간이 너무 아깝고, 시간이 너무 허무하고, 너무 빠르다고 하는 분들은 많지 않습니다.

세월이 아깝고 허무하며 빠르게 느껴진다면, 제일 먼저 아껴야 할 건 시간입니다.

시간을 아낄 때 세월을 아낄 수 있습니다.

시간을 알뜰하게 보낼 때 세월도 허무하게 보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시간은 공짜인 것처럼 물 쓰듯 낭비하며 일 년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와서야

세월이 너무 아깝다고 말합니다.

2020년을 새롭게 시작하는 첫 시간부터 보람차게 보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주님이 내게 주신 시간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이 땅을 사는 동안만이 내게 주어진 시간입니다.

또한 내가 현제 사용하고 있는 이 순간만이 내 시간입니다.

이 시간 이후는 내 시간이 아닙니다. 오직 주님이 가지고 계시는 시간입니다.

시간을 알뜰하게 보내는 사람은 하루하루를 보람차게 보냅니다.

매 시간, 하루, 한 달이 쌓여서 일 년이 됩니다.

일 년을 꽉 채우고 나서야 허송세월 보냈다고 탄식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일 년이 소중하면 지금 이 시간도 소중합니다.

그래야 세월을 소중하게 여기게 됩니다.

올 한 해, 매 순간 매 시간을 알뜰하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싸움에서 이기는 사람이 되라

 

 

 

눈을 감고 한 해를 돌이켜보면 수없이 앞을 가로막았던 사건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내 앞을 가로막고 있던 환경, 사람관계, 물질과 싸워서 이기셨습니까?

어떻게 이기셨습니까?

일방적으로 이기셨습니까, 아니면 지고서도 이기셨습니까?

진정한 승리는 졌지만 이기는 것입니다.

졌다는 것만 생각하면 자존심이 상하고 좀 억울한 듯하지만,

내가 져주고 상대방이 일어설 수만 있다면 진정한 승리는 오히려 져준 내가 얻게 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사람의 계산으로는 분명 실패하고 사탄에게 졌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서 사탄은 실패했습니다.

우리들의 한 해를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싸움에서 일방적으로 승리했다면 어쩌면 싸움에서 진 것일 수 있습니다.

선한 싸움은 내가 져줌으로 승리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승리입니다.

새해에도 예수님의 방법대로 악을 선으로 이기는 사명을 잘 감당하셔서

날마다 위로부터 칭찬받는 새날교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Dec. 29. 2019

우리를 구원하실 메시아의 탄생!

 

                              우리가 지키는 기독교 절기 중에서도 성탄절과 부활절이면 미국의 웬만한 가게들은 휴업을

                              합니다. 미국 사회에 깔려있는 기독교 문화의 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중에서 성탄절은 기독교인들보다 더 기다리는 세상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상업성 광고가 메시아의 오심과는

상관없는 성탄절이 됩니다. 아기 예수님이 구원자라고 여기지 않는 세상에게 성탄절을 빼앗긴 듯 합니다.

오죽하면 세상에 빼앗긴 성탄절을 다시 찾아와야 한다고 말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각 교회에서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기 전에 백화점과 호텔 등 대형 마켓에서는 먼저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하여

성탄절 분위기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타 종교에서도 12월이면 교회의 성탄절 장식을 비슷하게 꾸며놓고 자신들의

종교행사를 합니다. 얼핏 보기에는 아기 예수님 오심을 준비하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분명히 구원의 메시아로 오셨지만 때로는 세상의 침체된 경제에 활력을 넣어 주시기도 합니다.

성탄절 아기 예수님은 세상 경제를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이 땅을 회복시키고자 오셨습니다.

세상에서는 성탄절 대목도 중요하지만, 성탄절을 맞이하는 우리들은 어떤 마음으로 맞이하는가?

느헤미야 1장 9절 말씀입니다. “만일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예수님께로 돌아와서 말씀을 지켜 행하면 회복시켜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목적은 하나님과

멀리 떨어진 관계를 회복시켜 주시려고 보내셨습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거리가 멀어졌다면 이번 성탄절 아기 예수님 오심을 통해서

내 안에 하나님이 계시는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기를 기도드립니다.

Dec. 22. 2019

Dec. 15. 2019

대강절 - 3

 

세상이든 믿음의 세계이든 세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 종류의 사람들은 새로운 길을 만듭니다.

다른 사람들은 누군가 만들어 놓은 길을 갑니다.

마지막 사람들은 만들지도 않고 만들어진 길을 가지도 않으며,

오히려 누군가 열심히 만든 길을 다른 사람들도 못 가도록 파헤칩니다.

나는 어떤 사람에 속할까요? 길을 만드는 사람인가요? 아니면 길을 파헤치는 사람인가요?

매년 맞이하는 대강절에 한 번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대강절은 길을 닦고 오실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절기입니다.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 나는 열심히 길을 닦고 있나요?

아니면 누군가 만든 길로 예수님이 오시겠지 하며 막연하게 기다리고 있나요?

혹은 예수님이 오시든 말든 상관없이 매년 반복되는 행사로 여기고 있나요?

해마다 맞이하는 대강절이지만, 항상 새롭게 맞이하는 자세가 매우 중요합니다.

작년에 열심히 길을 닦았을지라도 일 년이라는 세월 동안 길은 허물어지기도 끊어지기도 합니다.

나와 예수님 간의 관계에서 길이 끊어지고 허물어진 상태라면

이번 대강절을 통해 다시 깨끗하게 닦으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아기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모두가 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대강절 - 2

 

 

성경의 수많은 말씀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 아닐까요?

구약에서 수많은 선지자들은 예수님의 탄생을 예언했습니다.

그리고 예언대로 예수님이 탄생하셨습니다. 성탄절은 바로 예수님이 탄생하신 날입니다.

성탄절이 오기 전, 예수님이 오심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기간이 대강절입니다.

예수님의 오심을 맞이할 준비의 기간 동안 우리는 어떻게 기다려야 할까요?

먼저 내 마음을 청소해야 합니다. 1년 동안 내 마음 안에는 온갖 잡동사니들로 꽉 차 있을 것입니다.

때로는 과감하게 버릴 것은 버려야 합니다.

가정에서도 유행이 지난 옷을 처리하지 못하고 보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느 분은 수십 년 전 결혼식 때 입었던 의상을 보관하기도 합니다.

또 다른 분은 유행이 한참 지난 옷을 버리지 않고, 다시 복고가 유행하면 입으신다고도 합니다.

몇 년간 한 번도 입지 않은 옷이 있다면 대강절 기간 동안 과감하게 처리해보시면 어떨까요?

마음을 청결하게 비우면 눈에 보이는 환경도 정리된다고 합니다. 예수님 역시 속을 먼저 깨끗이 하면

겉도 깨끗해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을 준비하기 전 먼저 내 마음을 청결하게

씻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마음을 청결하게 씻을 수 있을까요?

말씀과 기도, 예배로 내 마음 안에 불필요하게 쌓여 있는 불순물들을 제거하시고,

청결한 상태로 대강절을 보내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Dec. 8. 2019

대강절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여러 종류의 절기를 맞이합니다. 사순절과 부활절, 이어서 성령강림절과 초막절을 보낸 후, 겨울로 들어서면 대강절과 성탄절이 이어집니다. 그 중 대강절은 어떤 절기일까요?

성탄절 4주 전 시작하는 대강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도착하다,’ ‘오다‘의 뜻을 가진 라틴어 어드벤트(advent)에서 유래된 이 절기는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기간입니다.

대강절을 한자로 풀어보면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기다릴 대(待), 내릴 강(降)자로 이뤄진 이 단어는 위에서 내려오는 것을 기다리라는 의미입니다. 위에서 무엇이 내려오기에 기다릴까요?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심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예수님의 처음 오심-초림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마지막에 다시 오실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이 절기를 지킵니다.

그렇다면 대강절 절기를 어떻게 보내야 할까요? 가까운 이웃이 찾아와도 집안을 치운 후에 맞이하는데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오실 예수님을 우리는 어떤 자세로 맞이하고 있나요? 무엇보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예수님을 맞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보통 겉을 신경쓰기 마련이지만, 마태복음 23장 26절에서 예수님은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우리들은 먼저 우리의 내면을 깨끗이 정리해야 합니다. 1년 동안 마음에서 정리하지 못하고 쌓아놓은 일들이 있다면 이번 대강절을 맞아 깨끗하게 정리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겉으로 드러나는 우리들의 외형 역시 바뀔 것입니다.

대강절을 시작으로 성탄절에 이르기까지 성도 여러분 모두가 아기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하며 기다리시길 진심으로 기도하겠습니다.

Dec. 1. 2019

풍성한 결실

 

추수감사절은 절기인가? 문화인가? 추수감사절은 기독교의 문화임에도 절기 중 하나로 지내고 있다. 한국은 미국 선교사들의 영향을 받아 11월 셋째 주일에 추수감사절 예배를 드리고,

캐나다는 10월 둘째 주 월요일을, 미국은 11월 넷째 주 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지정해 기념하고 있다.

기독교 절기처럼 굳어진 추수감사절의 유래를 살펴보면, 당시 영국 국교회였던 성공회의 핍박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온 청교도들에게 뿌리를 두고 있다. 전통적 복음주의자들이었던 청교도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영국에서 미국 동북부 지역 매사추세츠의 플리머스로 이주했다.

1620년 11월 플리머스에 도착한 청교도들이 혹독한 겨울을 살아남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정착지 주변의 인디언 부족의 도움이 있었다. 다음 해 봄철 청교도들은 인디언들이 가르쳐준

경작법으로 옥수수를 재배하여 가을에 풍성한 수확을 할 수 있었다. 청교도들이 가을에 수확한

농산물과 과일, 야생 칠면조를 잡아 자신들을 배려해준 인디언들을 초대해 함께 식사한 것이

추수감사절의 기원이라고 한다. 이런 따뜻한 행사는 오래가지 못했다.

유럽 각국에서 건너온 이주민들이 인디언들이 살던 지역을 빼앗기 시작하면서 유대관계는

깨어지고 양측은 적대적이 되어갔다.

미국 초대 대통령이었던 조지 워싱턴에 의해 국경이로 지정됐던 추수감사절은 3대 대통령 제퍼슨에 의해 국경일에서 제외되기도 했다. 여담으로 제퍼슨은 추수감사절이 영국 문화를 접목한 것이라

여겨 국경일에서 제외시켰다. 추수감사절이 다시 국경일로 살아난 때는

링컨 대통령 재임시절이었다. 남북전쟁 중이던 1863년 10월 3일 링컨 대통령은

11월 마지막 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지정했다.

분명한 것은 추수감사절이 기독교의 절기가 아닌 미국의 명절처럼

지켜지고 있는 현실이다. 청교도들의 생존을 도와주었던

인디언의 흔적은 사라졌다.

추수감사절을 맞아 미국으로 이민 오며 가장 크게 도움을

주었던 분들이 있다면 집으로 초대해 함께 보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Nov. 24. 2019

나는 무엇 때문에 감사하는가?

 

우리는 무엇을 가장 먼저 구할까? 기도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구하는 기도는 무엇일까?

그때그때의 사정에 따라 달라질까? 아니면 기도할 때마다 가장 먼저 기도하는 제목이 있을까?

우리는 가장 먼저 감사하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요?

감사하는 마음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것을 받아도 감사할 줄 모릅니다.

아무리 귀한 것을 받아도 감사한 마음으로 말하지 못합니다.

탈무드에서 말하기를 혀에게 감사를 가르치기 전에 다른 말을 가르치지 말라고 했습니다.

입술로 감사하는 것은 훈련입니다. 마음으로는 감사하는데 입술로 말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입술로 먼저 감사할 때 마음에서도 감사가 우러나옵니다.

한 해를 정리하며 올해에 나는 얼마나 주님께 감사했나요?

그리고 이웃들이 내 곁에 있어 얼마나 감사했나요?

내 입술에 감사가 충만하다면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에서 바울은 항상 기뻐하며, 범사에 감사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2019년 한 해 동안 내가 받은 감사의 제목들을 돌아보며,

새로운 해를 준비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

Nov. 17. 2019

나의 가장 큰 감사는

 

내 인생에서 가장 자랑스럽게 내세울 수 있는 감사는 무엇일까? 사랑스런 아내 혹은 남편을 만난 것이 가장 큰 감사일까? 아니면 남들보다 건강해서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감사일까? 사람마다 자랑할 만한 감사의 제목은 제 각각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고백할까요? 기대하지 않거나 기대 이상의 무엇을 얻을 때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반면 어떤 일이 기대에 못 미칠 때 우리는 실망과 불평을 토로하기도 합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기대 이상은커녕 기대 이하의 결과를 마주하게 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러나 크리스챤은 자신이 원하던 일의 결과가 기대 이상이든 기대 이하이든 상관치 않고 감사합니다. 왜 감사할까요?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4장 6절에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라고 말합니다.

염려가 앞설 때, 근심과 불안함이 우리를 흔들지라도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무엇이 감사할까요? 예수님께서 나같은 죄인을 불러 자신의 생명을 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예수님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생각하면 나를 짓누르던 염려와 근심, 불안이 씻겨나가고 평안이 마음에 가득해집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을 만나 영원한 생명을 얻은 것이 내 인생 가장 큰 감사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크리스챤은 눈에 보이는 것을 얻어 감사하기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생명인 구원을 얻은 것을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통해 날마다 공급받은 생명이 있기에 감사하며 세상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또한 감사 안에서 말씀과 기도로 승리하는 한 주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Nov. 10. 2019

사명자!

 

크리스천에게는 사명자라는 특별한 호칭이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소명과 사명도 있습니다. 먼저 소명의 의미는 ‘부름 받았음’을 말하며 영어로는 ‘Calling’ 이라고 합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 받았습니다.

이번에는 사명이 있습니다. 국어사전에서는 ‘맡겨진 임무’라고 말하며 영어로는 ‘Mission’ 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나에게 사명을 주시려고 소명하셨습니다. 먼저 나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에게 부여하신 사명을 얼마나 감당하고 있으신가요? 어느 분은 자신은 예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고, 지금까지 사명을 생각해 본 일도 없다고도 합니다.

사명은 예수님이 내게 맡겨진 명령이기 때문에 어명과도 같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우리 모두에게는 예수님이 사명을 주셨습니다. 이미 나를 소명하셔서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사명을 받았으면 사명자입니다.

예수님이 내게 주신 사명은 무엇일까? 나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라고 했습니다. 오늘도 우리들은 받은 사명대로 이웃들에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내게 주어진 사명에 최선을 다하는 한 주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Nov. 3. 2019

삭개오의 믿음

 

삭개오는 사회적으로 비난을 받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나쁜 사람, 악질, 인정머리도 없고 돈만 아는 사람으로 평가했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을 보려고 길가로 나왔습니다. 사람들은 아마도 수군거렸을 것입니다.

‘저런 사람이 왜 예수님을 보러 나왔지?’ ‘예수님에게도 세금을 내라고 하려는 걸까?’

그러나 삭개오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악하기만 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내적인 갈등으로 인해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 틈으로 예수님을 볼 수 없었던 그는 나무 위로 올라가 예수님과 눈을 맞추었습니다.

그와 눈이 마주친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서 머물러야겠다.“

삭개오는 눈으로 예수님을 보았고 귀로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삭개오는 그 즉시 변화됐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돈의 노예로 사람들의 비난을 받아가며 열심히 돈을 모았습니다.

그런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난 후 돈의 노예에서 돈의 주인으로 바뀌었습니다.

주인은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돈의 주인이 되어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다고 했습니다.

어느 시대든 삭개오와 같은 사람은 반드시 있기 마련입니다.

어쩌면 우리들 역시 삭개오와 같은 사람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돈의 노예 역할을 하다 예수님을 만난 후에 돈의 주인이 됐습니다.

돈의 주인이 되어 예수님 보시기에 아름답게 쓰임 받으시길 바랍니다.

Oct. 27. 2019

너희를 축복하였도다

 

나는 어떤 축복을 받았을까?

사람은 누구든지 복 받기를 소원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이유 중 하나 역시 복을 받기 위함이고,

우리는 또한 복을 받기 위한 기도를 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복이란 무엇일까요? 사전적 의미로는 삶에서 누리는 큰 행운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적 복이란 무엇일까요?

구약에서 복이란 많은 후손과 소유물의 증가, 영토 확장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아브라함의 축복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신약의 복은 다릅니다.

복이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이 땅의 가시적인 축복보다는 하늘의 신령한 복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신령한 복이란 영생을 뜻합니다.

즉 구원의 은혜와 선물이 가장 큰 축복입니다.

구원의 은혜를 받으려면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난 것을 최고의 축복으로 여기셔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면서 우리들이 받아 누리고 있는 축복을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 때문에 많은 복을 누리고 있음에도 감사치 못할 때가 너무 많습니다.

내가 누리고 있는 축복을 위로부터 내려주심에 감사하는 한 주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Oct. 20. 2019

예수님의 계산법과 사람의 계산법!

 

 

세상 살면서 계산을 아주 잘 해야 손해 보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자동차를 구입하려고 때로는 하루 온종일 숫자 가지고 판매원과 흥정하기도 합니다.

주택을 구입할 때도 역시 숫자 가지고 흥정을 합니다.

숫자 계산을 잘못하면 손해를 볼 수도 있고, 이득을 볼 수도 있습니다.

식당에서 식사 후에는 반드시 팁을 음식 값과 함께 계산해야 합니다.

이때 얼마를 지불해야 적당한 금액인지 모두들 한참 계산을 합니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식당에서 손님들의 편의를 위해 음식 값의 10%, 15%, 18%, 20%의 금액을

계산서에 미리 적어주고는 손님이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어느 식당은 손님의 양해 없이 자신들의 임의대로 팁까지 계산된 음식 값을 청구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사람은 눈에 보이는 상식적인 숫자와 씨름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계산법을 성경에서 읽다보면 우리들의 상식 밖에서 계산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오병이어의 계산법입니다.

어떻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이 먹고도 열두 바구니 가 남을 수 있을까?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네 계산법에 의존하지 말고 믿음의 계산법을 찾아보라고 하십니다.

사람이 아무리 예측을 정확하게 하였을지라도 결국 빗나갑니다.

우리들의 앞날을 어떻게 계산할 수 있겠어요!

오직 예수님만이 나의 갈 길조차 계산하시면서 나와 동행하시고자 합니다.

예수님과 동행함에 내 앞날에 벌어질 어떤 금전적인 계산과 인간관계의 계산도 손해보지 않는

은혜로운 계산법을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께 감사하는 한 주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Oct. 13. 2019

작은 관심!

 

커피를 주문하고는 창구 앞에서 주문자의 이름을 부를 때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오늘날에는  주문하면 진동 벨을 줍니다. 내가 주문한 커피가 준비되면 진동 벨이 울릴 때 창구로 가서 주문한 상품을 찾습니다. 참 편리해서 좋다고 하였는데, 이런 편리함을 떠나 종전하던 방식대로 하는 업소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스타벅스 커피 점에서는 절대 진동 벨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주문할 때 고객의 이름이나 성을 질문하고 컵에다 프린트 해줍니다. 주문한 상품이 나오면 매장을 향하여 이름을 부르거나 아니면 본인들이 창구로 가서 찾아가서 자신의 이름이 프린트된 컵을 찾도록 합니다.

어째서 스타벅스만은 다들 사용하는 진동 벨을 사용하지 않고 옛날 방법을 사용하는가?

이들은 손님의 이름이 프린트된 컵으로도 하나의 마케팅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이용하는 장소에서 특징이 있으면 친구들과 공유하려고 합니다. 자신의 이름이 프린트된 컵을 사진을 찍어 올릴 때 자연스럽게 매장 로고도 찍힙니다.

사람들은 커피 컵에 기록된 자신의 이름이 때로는 잘못되어도 기분 나빠 하기보다는 잘못 프린트된 자신의 이름을 SNS에 올림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커피점을 광고하게 하고 있습니다.

매장에서 실수한 것을 따지기보다는 즐거운 마음으로 홍보하는데 앞장서게 만듭니다. 편리성보다는 작은 관심이 실수조차도 입소문으로 더 좋은 소문을 퍼트리게 합니다.

요즘에는 많은 분들이 성경책을 이용하기보다는, 스마트 폰 앱을 이용하여 성경을 읽고 있습니다. 시대를 따라가는 것도 좋지만 교회에 갈 때에는 보란 듯이 성경책을 들고 가시면 그 자체가  전도하는 것입니다.

성경책이 장식품이 아닌 필수품이요 나는 크리스천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렇게 작은 관심으로 나 자신과 기독교를 마케팅 하는 기회를 만드시기 바랍니다.

Oct. 6. 2019

기다림의 행복!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기다리다 지쳐서 포기하는 기다림도 있습니다.

그러나 위에서 내려주시는 좋은 소식은 포기하지 말고 기다리셔야 합니다.

때로는 좋은 소식이 오기만을 기다리다보니 우체통만 바라보기도 합니다.

합격 통보서, 입학 허가 통보서 등을 예전에는 우편으로 보냈습니다.

이제는 우편보다는 이메일로 보내는 경우가 점점 늘어납니다.

우체통을 바라보던 기다림이 이제는 이메일을 수시로 확인하면서 기다립니다.

이런 경우에는 행복한 기다림이겠지요!

그러나 무덤덤하게 맞이하는 소식들도 우체통에 쌓입니다.

수시로 우체통에 넣어져있는 Bill이죠!

어쩌면 인생은 Billbill 거리다가 진작 기다려야 할 기다림을 놓칠 수도 있습니다.

인생에서 기다리고 기다리는 것은 하나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장막이 무너지고 하나님 앞에 서야 하지만, 이 땅에서도 매일같이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말씀 앞에서 서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찾고 있는 예배자가 되셔야 합니다. 말씀을 붙잡고 예배자가 되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매주일 예배드리러 오시면서 어떤 기대감으로 오시는지요?

오늘은 무슨 말씀을 주시려나, 오늘은 주님이 나에게 어떤 은혜를 주시려나, 하는 기대감으로 오셨을 때

놀랍게도 말씀도 주시고 은혜도 주십니다.

기대감을 가지고 무언가를 기다릴 때 행복한 마음을 주십니다.

한 주간도 기대감을 가지고 주님의 예비하심을 행복한 마음으로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Sep. 29. 2019

소통

 

각 가정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가족들이 유일하게 한 자리에 모일 수 있는 기회는 식사시간입니다.

먹을 때만 모였다가 금세 각자의 방으로 뒤돌아갑니다.

설령 한 자리에 모였다 할지라도 대화를 나누는 것이 아니고,

각자가 스마트 폰을 가지고 무언가를 열심히 들여다봅니다.

어린 아이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고개를 숙이고 스마트 폰에 열중합니다.

독서 삼매경이 아니고 스마트 폰 삼매경에 빠졌습니다.

스마트 폰 삼매경에 빠진 사람들에게 오죽하면 새로운 용어로 수구리 족이라고 말할까요?

머리를 숙이고 스마트 폰을 본다는 은어입니다.

대화로서 어떤 문제를 풀기보다는 이제는 문자로서 의견을 주고 받으면서 해결을 하려고 합니다.

말로 해도 언어의 소통이 힘들다는데, 과연 문자로서 얼마나 소통이 될까요?

이제는 할 수만 있다면 대화로 소통하는 관계가 되셔야 합니다.

언어보다는 문자기능에 맞추다보면 언어기능이 퇴화됨으로 나중에는 말을 더듬기까지 할 수도 있습니다.

전화벨만 울리면 겁이 덜컹 난다고 합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이미 유럽에서는 대화를 훈련하는 학원이 번성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들은 성경만 소리 내어 읽어도 이미 대화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과의 소통은 성경 말씀을 소리 내어 읽는 것입니다.

성경을 소리 내어 읽음으로 하나님과의 소통이 잘된다면

사람들과의 소통도 어려움이 없습니다.

성경을 소리 내어 읽음으로 하나님과의 소통과 사람들과의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기 바랍니다.

Sep. 22. 2019

여유를 누리는 삶인가!

 

사람에 따라서 어느 분은 항상 바쁘게 살아갑니다.

이런 분은 입만 열면 바빠, 바빠하면서 무엇을 하든지 서두릅니다.

세상일 다하는 것처럼 바쁘게 살다보니 마음에 여유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렇게 바쁜 것은 마음만 바쁜 것인지? 아니면 정말 삶에서도 바쁜 것인가?

어쩌면 마음만 바쁜 것이 아닐까?

바쁘게 살아가는 것도 어쩌면 습관이 몸에 밴 것이 아닐까요.

‘나는 바빠서 기도합니다.’ 라는 책 제목처럼 바쁠수록 말씀을 놓치지 마시고, 기도하셔야 합니다.

촌각을 다투는 바쁜 일정에서 잊고 넘어가기 쉬운 것이, 말씀과 기도의 시간입니다.

말씀과 기도의 시간을 하나님은 귀하게 보고, 듣고 계십니다.

바쁠수록 더욱 성경 읽는 시간과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기도할 때 바쁘던 나의 일상사가 좀 여유롭게 진행 될 것입니다.

내가 서둔다고 일들이 빨리 완성될 수도 있지만

여유롭게 일을 진행하여도 결과에서는 큰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옛말에 아무리 바빠도 바늘허리에 실을 매어서 사용할 수 없다고 했듯이,

거쳐야 할 과정이 있으면 다 거치면서 결과를 얻게 하십니다.

한 주간도 바쁠수록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말씀으로 기도로 무장하시고 승리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Sep. 15. 2019

집중하지 못하는 시대

 

학교에서 선생님의 강의만 집중해서 잘 들어도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다고 말합니다.

강의를 들으면서 마음이 흐트러진 채로 듣다보니 강의가 끝나고 나서는 무엇을 배웠는지 절반 이상을 놓친다고 합니다. 아날로그 시대에서는 강의 내용을 기억하지 못할 경우에는 열심히 강의를 들으면서 노트에 필기한 학생에게 사정사정하면서 필기노트를 빌려달라고 부탁하기도 합니다.

디지털 시대에서는 부족한 공부를 누군가의 도움으로 해결하기보다는 아주 쉽게 인터넷에 떠도는 자료들을 활용한다고 합니다. 이것조차도 이제는 본인이 해결하기보다는 정보력이 많은 부모가 앞장서서 정보들을 제공해 줍니다.

갈수록 정보는 홍수처럼 밀려오는데 내게 무엇이 필요한지 걸러내지 못하므로 혼탁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너무 많은 정보에 묻혀서 살다보니 어느 정보가 정확한지 부정확한지 판단을 못하니까 상대방의 어떤 말에도 집중을 하지 못하고 건성 건성으로 듣곤 합니다.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수많은 정보를 어디에서 얻고 있는가?

많은 분들은 스마트 폰에서 얻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학교뿐만 아닙니다. 직장에서도 집중해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지 못하다보니 가장 중요한 업무적 지시를 잘못 알아듣고 실수를 하게 됩니다.

가정에서 부부사이에 대화조차도 집중하지 못한 채 이야기를 하고, 들어주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는 어쩌면 스마트 폰이 삶의 일부가 되면서부터 아닐까요?

문자로 빠르게 대화하다보니 길은 문장보다는 짧은 단어로 소통하는 습관이

되었습니다. 이런 형상이 결국 문학으로까지 번지고 있는 듯합니다.

문학에서도 긴 문장보다는 짧은 문장을 선호하다보니, 세줄 문학이라는 용어가

생길 정도입니다. 말이 길고 짧고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집중해서 듣느냐에

달렸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집중해서 문장을 읽느냐에 달렸습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이리 저리 휩쓸리지 말고 오직 주님을 향한 마음으로

말씀을 읽고 듣고 마음에 담으시는 한 주간 되시기 바랍니다.

Sep. 8. 2019

내 인생의 디딤돌은 누굴까?

 

 

 

세상 살다보면 앞길이 막막할 때가 있습니다.

손에 잡힐 듯 말 듯 한 높이에 내게 가장 소중한 물건이 있습니다.

이럴 때 디딤돌이 있으면 밟고 올라가면 손에 잡히는데,

가야 할 길을 보니 질퍽질퍽한 흙탕물로 범벅이 된 도로를 만납니다.

이런 도로를 건너 갈수도 없고, 포기하고 돌아갈 수도 없고, 망설일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중간 중간에 돌멩이들이 깔려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돌멩이들이 디딤돌이 되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디딤돌들을 밟고 건너가면 신발도 바지도 깨끗한 채 목적지까지 갈 수 있는데...

그래요! 인생길 가다보면 질퍽질퍽한 길도 만납니다. 때로는 망망대해도 만납니다.

때로는 내가 원하는 목표가 손에 닿듯 말듯한 높이에 있습니다.

때로는 비단결과 같은 포장된 도로도 만납니다.

어떤 길을 갈지라도 나와 동행하는 예수님이 계시면 걱정 없습니다.

질퍽거리는 도로에서는 예수님이 디딤돌이 되어주시고,

망망대해에서는 예수님이 독수리가 되어서 우리를 등에 업어서 목적지까지 도착시켜 주십니다.

비단결과 같은 잘 포장된 도로에서는 잠들지 않게 항상 깨어있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좋을 때나, 힘들 때나 항상 나와 동행하십니다.

내가 힘들어 지쳐 있을 때에는 예수님이 나를 등에 업고도 가십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나와 동행하면서 독수리가 되어주시기도 하며, 디딤돌이 되어 주시기도 합니다.

Sep. 1. 2019

Aug. 25. 2019

걸림돌은 비켜가지 말고 빼어버리라

 

태산이 나를 넘어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돌부리가 나를 넘어지게 합니다.

나를 넘어지게 하는 돌부리를 걸림돌이라고 합니다.

내 인생에서 걸림돌은 무엇인가?

무언가 일이 잘 풀린다 싶을 때 가로막는 사건들이 터집니다.

잘 풀리는 인생길에서 때로는 걸림돌에 걸려 넘어지기도 합니다.

자신을 넘어트린 걸림돌을 그냥 지나가지 아니하고

빼내서 다른 사람들이 걸려서 넘어지지 아니하도록 합니다.

그런가하면 자신을 넘어지게 한 걸림돌을 원망하면서 재수 없다고 다른 길로 방향을 바꿉니다.

인생길 가면서 걸림돌만 만나면 통과하지 아니하고 돌아가거나 뒤돌아갑니다.

나를 넘어트린 걸림돌은 내가 부수고 깨트려서 제거해야 합니다.

인생길 가면서 걸림돌이 나를 훈련시키는 것이요,

나를 연단시키는 과정입니다.

어떤 걸림돌이 내 인생길을 가로막더라도 주님께 기도하세요.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면 어떤 걸림돌도 제거하고 통과할 수 있습니다.

Aug. 18. 2019

생각과 속도

 

하늘에서 천둥이 칠 때 사람들은 놀라서 숨을 곳을 찾기도 합니다.

천둥소리가 나기 전에 먼저 번개가 번쩍인 다음에서야 천지를 진동하는 소리가 납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번쩍하는 번개에 놀라기 보다는 천둥소리에 놀랍니다.

총 소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총소리를 내 귀로 들었을 때에는 총알은 벌써 총신을 떠나서 어딘가를 명중시켰습니다.

우리들이 말하는 속도와 생각하는 속도가 있습니다.

아무리 말을 빠르게 하여도 생각이 앞서 있습니다.

번개와 천둥소리처럼 이미 생각한 것을 뒤늦게 입술로 말을 합니다.

소리로 기도하는 내용보다는 어쩌면 생각의 기도가 더 정확할 수 있습니다.

내 입술로 무슨 말을 하는가는 내 생각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가복음 7장 15~1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마음에 간직한 생각이 내 입술을 통해서 나갈 때 살려주는 언어요,

일으켜 세우는 언어를 사용하는 한주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누가 나를 대접해 줄까?

 

어느 누구든 대접을 받고 싶어 하지 푸대접 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대접이라는 문제를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하셨을까요?

“남에게 대접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 말씀을 성경의 황금률[the Golden rule]이라고 말합니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관계입니다.

관계에서도 누가 먼저 대접해 주느냐에 따라서 상하가 구별되기도 합니다.

세상에서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먼저 대접하는 것이 지극히 정상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네가 대접받고자 하면 네가 먼저 대접하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상대방의 나이와 상관없이 섬겨주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 말씀처럼 나보다 어린 아이일지라도 내가 먼저 대접해줄 때

대접받은 아이는 어려서부터 배운 대로 남들을 먼저 배려해주고 대접해줍니다.

이 말씀에 관하여 전설 같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로마의 제 24대 황제는 이 말씀이 너무 귀한 말씀이라고 여기고는 자신의 사무실에

황금으로 글자를 써서 벽에 붙였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글자가 황금색이라고 해서 성경의 황금률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정말 황금으로 기록하여도 아깝지 아니한 예수님의 말씀이며,

기독교 윤리관의 기초를 이루는 귀중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처럼 누가 나를 대접해주기를 기다리지 말고

내가 먼저 누군가를 대접해주는 한 주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Aug. 11. 2019

영향력!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학교에서나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건강한 곳이 됩니다.

좋은 영향력이란? 좋지 않은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들을 포용하고 품어주는 것입니다.

겉으로 힘을 쓰는 항우장사보다도 더 큰 힘은 믿음의 내면에서 나옵니다.

믿음의 내면에서의 힘은 성령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성령을 받기 전까지는 세상말로 비리비리 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 보는 안목이 저렇게 없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성령을 받은 후부터는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가장 늦게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은 말하기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다.

성령은 내면의 숨겨졌던 힘을 겉으로 표출하게 합니다.

내면의 힘이 무력으로 나옴이 아니고 보이지 않은 영향력이 나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내면의 힘이 나올 때는 말을 하지도 않는데 어떤 행동도 하지 않음에도

주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줍니다.

어떤 감동을 주는가! 뒤쳐진 사람들을 내버려두지 아니하고 함께 동행 합니다.

오늘도 우리들은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열심히 가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뒤에서 따라오지 못하는 분들이 있으면 어깨동무해서 함께 동행 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Aug. 4. 2019

Jul. 28. 2019

내 인생에서 누구 없이는 살 수 없을까?

 

아무리 낯선 도시라 해도 주소만 있으면 아주 쉽게 찾아갈 수 있다.

옛날에는 지도로 찾다보니 쉽게 찾지 못하고 헤맬 때가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스마트 폰에 있는 GPS라는 프로그램에 주소만 넣으면 척척 안내를 해준다.

무엇이든 궁금한 것을 입력만하면 시원스럽게 답을 얻을 수 있다.

잠시도 내 손에 떨어질 시간이 없을 만큼 자신의 분신이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새로운 용어가 생겼는데 ‘폰아일체’라고 말한다.

스마트 폰하고 자신하고는 일체가 되었다는 말이다.

사실 밥은 굶어도 스마폰은 충전해서 가득채워야 한다.

배터리 용량이 50%만 남아도 불안하다고 여긴다고 한다.

해외여행을 떠나면서 여권보다도 스마트 폰을 더 먼저 챙긴다고 한다.

해외 나가서 스마트 폰이 방전되는 순간 국제미아가 된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정도이면 부인 없이는, 남편이 없는 못살아가 아니라

스마트 폰이 없으면 못산다고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되어 AI 기능만 있으면 만사형통의 시대가 눈앞으로 다가 왔을지라도

우리들에게는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들이 가야할 길이요, 진리요, 생명으로 믿으셔야 합니다.

아무리 GPS 프로그램이 정확하다 할지라도 우리들이 가야할 인생길은

오직 예수님이심을 믿고 따라가시기 바랍니다.

그래도 감사하는 자가 되라!

데일카네기라는 미국 작가는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나는 매일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제일 먼저 감사할 일을 머릿속에 그리려고 노력했다.’ 맞는 말입니다.

우리는 아침에 눈을 뜨면서 감사거리를 찾기보다는 오늘 하루 동안 펼쳐질 일들을 설렘으로 생각하지 않고,

두렵고 걱정스러운 생각을 합니다.

하루 동안 내게서 일어나지도 않을 일들을 눈을 뜨면서 걱정과 근심을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우리들도 데일카네기처럼 감사할 일들을 그려보셔야 합니다.

거창한 감사거리를 머릿속에서 그려보는 것도 좋지만,

현실적으로 내 삶 속에서 일어나는 아주 사소한 일들을 감사거리로 머릿속에서 그려보세요.

이렇게 사소한 일들조차 감사하는 습관이 자신의 정신건강과 육신의 건강까지도 좋아집니다.

어느 분은 말하기를, 감사할 줄 모르면서 행복한 사람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감사가 충만한 사람은 복잡하게 살기보다는 아주 단순하게 살기를 좋아합니다.

배철현 교수의 수련이라는 책에서 단순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단순은 모자란 것이 아니다. 서툰 것도 아니다.

오랜 수련을 거쳐 도달한 더 이상 바랄게 없는 거의 완벽한 상태다.

필요 없이 복잡하게 만들지 마십시오.

그렇습니다. 인생은 복잡하면서도 아주 단순하기도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충만할 때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주 단순하게 쉽게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Jul. 21. 2019

나의 입술은 감사하는가!

 

옛말에 이르기를 ‘말이 씨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하루 종일 내 입술을 통해서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언어들을

한번쯤 기억을 더듬어 보세요. 아무리 많은 말을 하였을지라도 비슷한 단어들을 반복하면서 이용하였습니다.

내가 주로 사용하는 단어들은 무슨 단어들일까? 긍정적인 단어들이었을까? 아니면 부정적인 단어들이었을까?

어느 분이 인터넷에 올린 글을 저에게 복사해 주셔서 읽다보니 공감이 되었습니다. 자식들이 말썽을 부린다고

쉽게 내뱉은 말이 있습니다. ‘빌어먹을 놈 같으니라고’, 남의 자식에게 한 말이 아닙니다.

내 자식들에게 한 말입니다. 아니 내 자식들이 빌어먹으라는 것입니다.

이 단어는 동냥을 말합니다.

구걸하는 거지가 되라고 부모가 자식들에게  한 말입니다.

왜! 나에게만 이렇게 지지리도 복이 없지 하면서 자기 자신을 원망합니다.

그런가하면 조금만 힘들어도, 조금만 배가 고파도, 조금만 귀찮아도

죽겠다고 말합니다. 내가 말 한대로 됩니다. 내가 주로 사용하는 단어들이

내 인생의 방향을 정하고 있으며, 그리고 내가 주로 사용하고 있는

단어대로 인생을 가고 있습니다.

가수들을 보면 금방 이해가 갑니다. 슬프고 애절하고 절망적인 노래를 부른

가수들은 이상하리만큼 많이들 요절하였습니다.

반대로 희망찬 노래를 한 가수들은 아주 건강하게 장수하였습니다.

이런 현상을 어느 가수가 말하기를, 가수는 대개 자기가 가장 히트한 곡대로

살아간다면서 히트곡을 수없이 부르면서 자기 암시에 빠져 자신의 인생도

노래대로 될 확률이 크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들도 내가 주로 사용하는 단어대로

자기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예수님의 말씀처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진리요

생명의 말씀을 내 입술로 사용하시므로 이 땅에서 복되게 장수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Jul. 14. 2019

                   디지털 시대에서 다시 아날로그 시대로

 

하루가 다르게 변화되어가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오늘 최신 기종이라고 해서 전자제품을 구입했는데

한두 달 지나고 나면 더 새로운 기종의 전자제품이 나옵니다. 새로 구입한 제품의 사용방법도 다 알기도 전에

신제품이 출시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디지털 시대에서의 상품의 유행기간이 아주 짧아졌습니다. 그러나 아날로그 시대에서는 상품의 유행기간이

길었습니다. 급변하는 시대의 변화 속에서 어린아이들의 교육도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뀌어 갑니다.

종이 책보다는, 종이 신문보다는 전자책으로 전자 신문으로 보다보면 참 편리함을 느낍니다.

어린아이들은 부모가 가르쳐 주지도 안했는데도 스마트 폰이나 아이패드를 능숙하게 스크린을 넘기면서

자신이 원하는 영상을 찾아서 봅니다. 이런 어린아이의 모습을 부모들은 대견스럽게 여깁니다.

얼마 전에 매이언 울프[Maryanne Wolf]가 지은 「다시 책으로」라는 제목의 책이 출판되었습니다.

저자는 말하기를 갓난아이가 읽기의 첫 경험에서는 책의 페이지를 반복해서 넘기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가 손으로 책장을 만지며 여러 번 넘겨볼 수 있는 종이책이 전자책 스크린에 비해서 언어 발달에 도움이 된다.

독자들은 반문한다고 합니다. 디지털 시대에 굳이 종이책을 읽어야 하느냐?

전자책으로 계속 읽다보면 깊이 읽기보다는 겉핥기식으로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을

깊게 파악하지 못한다고 주장합니다.

연구결과를 보면 전자책으로 읽은 그룹은 종이책으로 읽은 그룹에 비해서 내용의 세부적인 줄거리나

논리 구조 파악에 약했다고 합니다.

부모님들이여!

이제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다시 아날로그 시대로 돌아가서 종이책장을 넘기면서 책을 읽는 습관을

자녀들에게 가르쳐주세요. 그리고 기성세대에서는 스마트 폰으로 성경을 읽기보다는

종이 성경책으로 책장을 넘기면서 읽음으로 자녀들도 본받고 뒤따라 올 수 있습니다.

Jul. 7. 2019

나도 공사 중인가?

 

건물도 자동차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고쳐야 좋은 상태를 유지합니다.

살고 있는 가정집도 편리를 위해서 리모델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사업장도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내부를 리모델링하기도 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몇 년간 똑같은 색깔과 똑같은 구조에서 벗어나 최소한 색깔만이라도 바꿉니다.

이런 공사를 마치고나면 뭔가 신선한 느낌으로 새 건물에 들어온 기분입니다.

기분뿐만 아니라 신앙도 새로워지는 듯합니다.

이렇게 눈에 보이는 것들만 리모델링할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믿음도 가끔씩 리모델링해야 합니다.

2019년을 벌써 절반을 보냈습니다. 새해에 큰 그림을 기도로 시작했습니다.

큰 그림의 기도가 지금까지도 잘 유지되고 있는지, 아니면 벌써 잊어버렸는지,

자기 자신을 점검해보셔야 합니다.

기도를 시작한 본인은 까마득하게 잊고 있는데도 주님은 기억하고 계십니다.

다시 기억을 더듬어서 올해 나는 주님과 무엇을 약속했는가?

말씀 읽기를, 가정에서 예배드리기를, 매일 쉬지 않고 기도하기를,

그리고 수요예배와 금요예배와 새벽예배에 참석하고자 약속하셨습니다.

이런 약속들을 잊어버렸다면 내 믿음도 다시 한 번 뜯어고치는 리모델링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인생은 항상 공사 중입니다. 공사가 완전히 끝났다면 이 땅에서 자신의 존재는 사라집니다.

살아서 존재감이 있다면 쉴 새 없이 고치고 고치면서 하나님 나라로 향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참 잘 고쳤다 칭찬받는 한 주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Jun. 30. 2019

알고 있는 것을 믿는가?

 

미국과 한국에서는 가짜 뉴스를 적발하여 처벌하겠다고 합니다.

얼마나 가짜 뉴스가 많으면 이런 특단의 조치를 취한다고 할까요.

가짜가 진짜처럼 여겨지고, 진짜는 가짜처럼 여겨지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특히 유투브를 열어보면 세상 아플 사람이 어디 있고, 죽을병이 어디 있겠어요?

어떤 질병도 어떤 고장 난 물건도 다 고칠 수 있는 영상들이 수없이 올라옵니다.

영상을 본 사람들은 막연하게 못 고칠 질병은 없구나, 못 고칠 물건도 없구나 하면서 믿어버립니다.

문제는 나만 알고 있으면 괜찮은데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이웃들과 정보를 공유합니다.

어쩌면 이런 영상들은 그래도 일상적인 삶에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느 특정한 사람의 신상을 완전히 파헤쳐서 사실인 것처럼 올립니다.

이런 영상을 본 수많은 사람들은 이 영상이 진짜라고 믿어버립니다.

이 영상의 내용을 굳게 믿고는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화제 거리로 말을 합니다.

그 자리에서 화제 거리를 들은 사람은 사실인 것처럼 믿고는 또 이웃들에게 말합니다.

몇 사람만 거치고 나면 가짜인데도 진짜로 믿어버립니다. 우리들은 세상사건만 알고 믿어버릴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고만 있는가? 아는 대로 믿고 있는가?

신앙은 아는 만큼 믿어질 때 은혜가 됩니다.

유투브에서 세상적인 내용은 믿으면서 성경의 말씀은 알면서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의 기록된 말씀을 알고 믿어질 때 믿음대로 복음을 전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Jun. 23. 2019

아버지들이여! 하나님을 경외하세요.

 

오늘날 아버지의 권위가 점점 떨어지고 있습니다.

아버지뿐만 아니라 교사들의 권위도 떨어지고 있습니다.

가정에서 아버지의 설자리가 좁아져가고, 학교에서는 교사들의 위치가 흔들리고 있는 현실 속에서

내 자녀들은 가정에서 무엇을 배우고 학교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기독교에서도 복음만 외치고 축복만 외치는 번영신앙이 믿음의 뿌리를 흔들고 있습니다.

복음과 축복은 외치면서 도덕적인 말씀은 외면하려고 하는가?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 안에는 축복도 도덕도 다 포함되었는데,

축복을 앞세우다보니 도덕적인 문제는 건드리지 않고 있습니다.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시편 34편 9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하나님을 경외함이란 존경함으로 우러러 보면서도 두려워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할 때 부족함이 없는 축복을 주십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가?

두려워하는 마음일 때 복음과 도덕이 살아납니다.

입술로는 복음을 외치면서도 비도덕적인 생활을 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에서 자녀들은 아버지를 존경하고 따라갑니다.

아버지들이여!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항상 깨어서 일어나세요.

내 가정이 바로서야 교회도 바로서고 국가와 민족이 바로 섭니다.

Jun. 16. 2019

오늘은 기독교의 생일날입니다.

 

오늘은 기독교의 생일날입니다. 기독교의 생일은 곧 교회의 생일이기도 합니다.

지구상에는 수많은 교회들이 있습니다.

각 교회들마다 설립된 날을 기념할 때 임직자들을 세우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기독교의 생일은 있는지 없는지 지나갑니다.

가정에서도 가족들의 생일을 꼬박 꼬박 챙기고, 결혼기념일 까지도 잘 챙기면서

기독교인들이 기독교의 생일을 모르고 신앙생활 합니다.

유대교에서는 오늘이 오순절로 종교의 탄생일이라고 기념합니다.

신약에서도 오늘은 성령강림절이며 기독교의 교회가 시작된 날입니다.

오늘은 기독교에서는 뜻 깊은 날임에도 아무런 흔적도 없이 지나갑니다.

눈에 보이는 현상만을 쫓다보니,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는 관심이 없어집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날이 유월절이요,

이날부터 칠칠절 다음날인 오순절에 성령으로 강림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들도 어떤 상황에서든지 교회를 떠나지 마시고 기도하실 때

성령님이 우리 모두에게 강림하십니다. 성령님이 내게 강림하면

오직 주님만을 찬양하고 감사하면서 내적 충만으로 채워주십니다.

한 주간 내내 성령으로 내 안을 충만하게 채움을 받는 새날교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Jun. 9. 2019

나는 의로운가?

 

                                  세계적으로 성인이라고 말하는 공자의 제자들을 보면 학자들이요 정치가들이

                                    많았습니다. 석가모니의 제자들도 역시 왕족들이요, 철학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나요? 세상적으로 내놓을만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가장 비천한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일제 강점기에 다석 류영모라는 동양 철학자가 예수님을 영접하고는

                        말하기를, 참 종교는 상놈의 종교가 좋다. 종교가 귀족적이면 이미 영원한 정신을 잃은

                        것이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오신 분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성품도 신의 성품도

                        다 지니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얼마든지 세상적으로 알아줄 만한 사람들을 제자로

                        세울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세상에서 가장 연약하고, 세상에서 큰 소리내지 못하는

                        사람들만을 제자로 세웠습니다.

                        예수님은 상류층과 어울리지 아니하시고 가장 낮은 곳에 사람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주셨습니다. 세상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섬겨주셨습니다.

  우리들도 나보다 훨씬 나은 사람들과의 교류도 좋지만 나보다 낮은 곳에 사람들과도 함께 하세요. 예수님처럼 우리들도 이들을 섬겨주고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2장 13절 말씀에,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율법을 듣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 보고 듣고 배운 말씀대로 행하시기 바랍니다.

Jun. 2. 2019

나의 보화는 무엇일까?

 

어느 사람이든 가장 아끼고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이 있습니다.

어느 사람은 돈을 세상 최고의 보물이라고 말합니다.

어느 사람은 부동산이 세상 최고의 보물이라고 말합니다.

어느 사람은 금은보화가 세상 최고의 보물이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세상에서는 눈에 보이는 물질만이 보화라고 여기고 사랑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우리들은 무엇이 나의 가장 소중한 보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우리들도 눈에 보이는 물질들이 세상 최고의 보물이라고 자랑하기 전에,

먼저 보이지 아니하는 영생을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보물들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데 분명히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이 땅에서 우리들은 이별을 해야 합니다.

이별을 할 때 영생의 보물을 간직한 사람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향하겠지요.

이걸 너무나도 잘 알면서도 어느 때는 눈에 보이는 보물이 최고로 여기다가도,

어느 때는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영생이 최고의 보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자신이 간직한 보물의 순서를 정할 때는 자신과의 싸움이 있어야 합니다.

항상 영생의 보화를 가장 소중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May. 26. 2019

18년을 하루같이!

 

하루하루가 쌓여서 한 달이 되고, 한 달 한 달이 쌓여서 일 년이 되고,

일 년이 쌓이고 쌓여서 새날교회가 세워진지 18년을 맞이하였습니다.

돌이켜보면 오직 주님의 은혜요, 그리고 성도 한분 한분의 충성된 은혜였습니다.

18살 된 새날교회는 그동안 지역교회로서 사명을 얼마나 감당하고 있었을까?

나름대로 한다고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내 교회만 풍성함을 누릴 것이 아니고 교민들과 함께 나누는 사역을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알아주든 몰라주든 오랫동안 지역 교민들을 위해서 헌신하였습니다.

사람들이 몰라주어도 위에 계신 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

위에 계신 하나님은 보고 듣고 알고 계시면서 때가 되면 칭찬하십니다.

누구를 통해서 칭찬하시는가? 사람들을 통해서 칭찬하십니다.

지역사회에서 칭찬받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간간이 칭찬하는 소문에 기분이 나쁘지는 않죠!

이런 소문에 더 열심히 지역사회를 섬기라고 하시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새날교회는 그동안 남들이 하지 아니하는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하셨던 일들을,

현재하고 계시는 일들을 앞으로 하실 일들을 기록한 것이 성경책입니다.

새날교회는 성경을 소리 내어 읽으라고 강요하고 있습니다.

내 입술로 시인하고, 내 귀로 듣고, 내 마음에 쌓이면, 예수님의 말씀처럼 네 안에 가득한 것을

네 입으로 말함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라고 강권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말씀을 읽고 가정에서는 예배 드리는 새날교회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May. 19. 2019

효도!

인간만이 부모를 섬기고, 모시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동물의 세계에서도 자신을 낳아서 길러준 어미를 잘 섬기고 보살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부모를 섬기지 못하고, 병든 부모를 버리는 사람들을 향하여,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라고 서슴없이 말합니다.

부모에게 불효한다고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라는 말을

이제는 함부로 사용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낳아서 키울 때가 자식이고 부모이지,

자식들이 성장하여 한 가정을 이루면서 부모를 보살필 여유가 없어지는 듯합니다.

연노하신 부모님이 하루 종일 어디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자식들은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의 자녀들이 과외 활동을 한다면 만사를 제쳐놓고

뒤쫓아 다니면서 뒷바라지를 해줍니다.

우리들은 내 자녀들을 위해서 시간도 물질도 아낌없이 도와줄 때

내 부모님은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가 한번 즈음 살펴볼 수 있는 어머니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부모에게는 아무런 관심도 없으면서, 내 자녀들에게만 관심을 가졌지만

어느 순간 나도 자녀들로부터 관심의 대상에서 제외되는 나이가 됩니다.

자녀들은 부모가 하는 모습을 보고 배우며 성장합니다.

그래서 효도하는 부모에게는 효도하는 자녀가 있습니다.

효도란? 관심을 가지고 보살펴 드리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 관심을 가지고 찾아뵙는 것이 효도입니다.

어머니날이 있으면 한 달 뒤에는 아버지날도 있습니다.

생존하시는 부모님이 가까이 계시면 찾아뵙고 인사드리세요.

먼 거리에 부모님이 계시면 전화로 안부를 전하시는 어머니날이 되시기 바랍니다.

May. 12. 2019

부자와 잘사는 것은 다릅니다.

 

사람들은 쉽게 말합니다.

돈이 있어야 잘 살수 있다고, 돈이 있어야 사람 구실하면서 잘 살수 있다고 합니다.

정말 돈이 있어야 잘사는 것일까요?

그래서 돈을 벌어서 부자소리 들으려고 안간힘을 써가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부자(富者)가 되려면 먼저 부자(父子)관계가 세워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관계가 부자(父子)관계입니다.

이 관계가 이뤄지지 않고 부자(富者)가 되어도 잘사는 것이 아닙니다.

잘 산다는 것은 행복한 삶을 말합니다.

돈이 행복까지 안겨 주지는 못합니다.

세상 사는데 좀 편리할 뿐입니다.

돈이 많은 부자(富者)가 되려면 먼저 부자(父子)가 되셔야 합니다.

성도님들끼리 만나면 부자(父子)되세요 라고 인사하세요.

하나님은 내 아버지요! 우리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이 땅에서 잘 살게 하십니다.

남들보다 뛰어난 부자는 아닐지라도

하루, 하루를 주님이 주시는 행복한 삶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May. 5.

2019

April. 28. 2019

나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두 눈을 뜨고서도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을 당달봉사라고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현상만을 보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시력이 좋아서 가까이 있는 사물이든, 멀리 있는 사물이든 명확하게 볼 수 있기를 바랄뿐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18절에서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이 말씀처럼 우리가 주로 바라보는 것은 보이는 세계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바라보는 눈이 열려야 합니다.

보이는 현상은 잠깐입니다.

아침 안개와 같이 보이는 듯싶었지만 해가 뜨면서 사라집니다.

우리들 인생도 보이는 듯 했는데 어느 순간에 이 땅에서 사라지고 맙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세계를 바라보는 눈이 열렸다면, 남들이 보지 못하는 세계를 주목합니다.

남들이 가지 못할 세계를 두 눈으로 바라보면서 살아갑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엠마오로 가는 두 명과 함께 동행 하였지만 이들은 예수님인줄 몰랐습니다.

이들의 눈에는 예수님이 보이지 안했습니다. 언제 예수님인줄 알았는가?

저녁식사 하려고 예수님이 기도하고는 떡을 뗄 때 이들의 눈이 밝아져 예수님인줄 알았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려면 기도와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기도 받고 떡을 먹을 때 눈이 열린 것입니다.

떡은 말씀을 뜻합니다. 말씀을 내 입으로 먹을 때 눈이 열려서 보이지 않은 세계가 열립니다.

두 눈의 시력이 떨어졌을지라도,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볼 수 있는 눈이 열려서 눈뜬 당달봉사를 면하시기 바랍니다.

April. 21. 2019

부활!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찬 단어입니다.

세상에서 생명체를 가진 모든 것들은 기한이 있으므로 영원히 살수는 없습니다.

식물들 중에서 장수하는 나무들이 있습니다.

길게는 수천 년을 살았다고 하는데 누가 지켜봤는가요?

동물들 중에서 거북 종류가 가장 장수하는데 100년에서 200년까지 추정합니다.

그렇다면 가장 짧은 기간을 살다가 죽는 하루살이입니다.

하루살이도 알에서 2년을 견디고 알에서 나와서는 2~3일 살다가 죽습니다.

매미도 알로 땅속에서 7년을 견디고 알에서 나와서는 2~3주 살다가 죽습니다.

자연생태계의 생명은 과학이 발달할수록 수명이 짧아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그러나 인간만큼은 과학의 발달로 인하여 수명이 점점 길어지고 있습니다.

인간의 수명이 아무리 길어도 결국은 죽음을 맞이합니다.

죽음을 이길 장사는 아무도 없습니다.

죽음을 이겨보려고 수많은 사람들이 노력했지만 결국 죽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요한복음 11장 25~26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은 네가 믿느냐?”

영원히 죽지 아니함은 곧 영생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분명히 죽었습니다.

검시관들이 십자가에서 내린 예수님이 죽었다고 판명되어 무덤에 묻었습니다.

그런데요! 무덤에 매장한 지 3일 만에 무덤이 열렸고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졌습니다.

예수님을 묻은 무덤은 텅 비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곧 우리들의 부활의 소망입니다.

April. 14. 2019

청소하는 종려주일

내 집에 누군가가 방문한다고 하면 집안을 정리하고 깨끗하게 청소도 합니다.

매일 같이 찾아오는 이웃이라도, 방문할 즈음에 그래도 대충 집안을 정리합니다.

하물며 예수님이 내 집을 찾아온다고 하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내 모습 이대로 보여주시겠어요!

아니면 돈을 들여서라도 청소하는 용역회사에 맞기겠어요!

일 년에 두 번을 청소하는 절기가 있습니다.

종려주일과 대강절입니다.

12월 대강절에는 눈에 보이는 환경을 청소하라고 권면합니다.

이때에는 정리가 안 된 인간관계도 깨끗하게 가지치기 하듯이 정리하시고

그리고 내 집의 보이지 않는 구석구석까지도 대청소하는 절기입니다.

이번에 종려주일은 눈에 보이는 성전과,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성전을 청소하는 절기입니다.

예수님은 종려주일 다음날 성전을 정화하셨습니다.

우리들도 예수님처럼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내 마음의 성전을 깨끗하게 청결하게 정리해서

부활의 예수님을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환난을 극복하는 삶!

 

사계절이 뚜렷하게 있는 지방에서는 겨울의 추위도, 봄철의 따뜻한 것도,

여름철의 무더위도, 가을의 시원함도 다 겪으면서 일 년을 보냅니다.

겨울철만 되면 올해처럼 이렇게 추워본 적이 없었다고 하면서 이번 겨울이 가장 추웠다고 말합니다.

여름철만 되면 올해처럼 이렇게 더워본 적이 없었다고 하면서 이번 여름이 가장 더웠다고 말합니다.

이런 소리는 해마다 하면서 추위와 그리고 더위와 싸우면서도 다 극복하고 한철을 보냅니다.

인생도 한겨울을 보내야 따뜻한 봄철을 맞이합니다.

따뜻한 봄철을 보내야 여름의 무더위를 맞이하게 합니다.

인생은 새옹지마와 같이 따뜻한 봄철만 내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봄철이 영원할 줄 알았지만 금방 한여름 더위와 싸워야 합니다.

그래서 시편 121편 말씀처럼 내가 바라보는 시선은 어디인가?

오로지 하나님만을 바라보세요.

위에 계신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시는데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눈도 깜빡이지 않으시고 나를 지켜주시며 내게 닥치는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내 영혼도 지켜주시고 나의 출입조차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켜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오로지 하나님만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April. 7. 2019

고난을 비켜갈 수 있을까?

 

세상 살아가면서 고난은 누구나 맞이합니다. 고난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고난 없이 평안해 보이는 가정에도 내면을 보면 많은 고난을 겪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생에서 고난은 훈련을 받는 과정일 뿐입니다. 편안하게 받는 훈련은 없습니다.

훈련은 고난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훈련은 기간이 정해졌습니다.

어느 일정 기간을 지나면 훈련의 과정도 마칩니다. 성경에서 나오는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도 다 고난의 과정을 통과하였습니다. 우리가 고난 중일 때에는 주님도 아무런 응답도 없으시고 침묵하고 계십니다.

고난의 과정을 지내면서 모난 부분이 깎이고 깎였던 부분을 둥글둥글한 모양으로 다듬어집니다. 고난은 내 인격을 다듬는 과정입니다. 그럼에도 고난을 맞이하면 세상에서 혼자만이 겪고 있는 고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내가 겪고 있는 고난이 고통스럽다 할지라도 죄 없는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우리들이 겪고 있는 작은 고난을 잘 통과하여 인격이 다듬어지고 신앙이 다듬어져서

예수님의 인격체로 닮아 가시기 바랍니다.

Mar. 31. 2019

돈이면 다인가?

 

많은 사람들은 돈이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전유죄요! 유전무죄라고 말합니다.

법이란 과연 만민 앞에 평등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법위에는 사람이 아니라 돈이 법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옛날에는 개천에서 용도 나오고 했었지만,

갈수록 개천에서는 송사리만 크고 있다고 말합니다.

돈이 돈을 낳는다고 합니다.

황금만능주의가 팽배한 이 세대의 단면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돈이 곧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돈이 행복을 주지 못합니다.

살아가는데 좀 편리함을 줄뿐입니다.

돈은 육체의 만족을 줄 수 있지만,

잘못하면 인간성과 영성을 파괴시킬 수도 있습니다.

어느 철학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돈은 바닷물과 같다. 바닷물을 마실수록 목은 더 말라진다.’

이와 같이 돈이 돈을 낳는다고 말하지만 돈 때문에 더 욕심만 잉태되어,

채워도 채울 수 없는 마음의 창고가 됩니다.

채울 수 없는 마음의 창고는 돈으로는 절대 채우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은혜로만이 가득하게 채워주십니다.

돈도 주님도 병행해서 섬길 수는 없습니다.

둘 중에 하나가 내 인생에서 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내 인생의 주인 되시는 주님만을 나의 주인으로 섬기시기 바랍니다.

Mar. 24. 2019

Mar. 17. 2019

건강의 축복

 

사람이 살면서 건강은 매우 중요합니다. 건강을 잃어버리면 인생을 잃어버리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럼에도 건강을 챙기지 못하고 자신의 일에 매달리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물질을 잃어버림은 인생의 한 부분을 잃어버린 것이라고, 그러나 건강을 잃어버리면 인생 전체를 잃어버린 것이라고 하지만, 하나님을 놓치면 회복할 수 없는 인생 전체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인간은 유한된 삶을 살다가 영원한 세상으로 넘어갑니다. 유한된 이 땅을 살면서 건강하게 살다가 영원의 세계로 넘어가기를 소원합니다. 그럼에도 이 땅에서 영원히 살고자 온갖 방법을 다 취하기도 합니다.

특히 독재자들이 더욱 이 땅에 애착을 가지고 좀 더 오래 살려고 하였습니다. 김일성이나 그의 아들 김정일은 정말 오래 오래 살 줄 알았습니다. 오히려 평균치 나이도 못살고 죽었습니다.

어느 의사가 죽으면서 유언처럼 남긴 말이 있습니다. 머리는 차고 발은 따뜻하게,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편안하게, 그러면 인생에서 의사는 필요가 없을 것이다.

잠언 3장 6절에서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건강을 위해서라도 먼저 어떤 일이든 하나님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건강한 길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내가 가진 돈과 명예로는 부분적으로는 건강을 지킬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건강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이 가지고 계십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라고 하셨습니다.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사랑을 누리고 또 받은 사랑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Mar. 10. 2019

주님의 인도함을 받으라

 

각 가정에서 기르는 애완동물들은 집 주인의 보호를 받으며 살아갑니다.

집 밖으로 외출을 나가면 반드시 주인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제 멋대로 가고 싶은 곳을 다 가고, 제 하고 싶은 행동 다하도록 놔두면

주변 사람들에게 불편만 주게 됩니다.

사람도 보이지 않게 인도함을 받고 있습니다.

세상 법망에 걸리지 않도록 교육도 받습니다.

그런가하면 하나님은 우리들을 지명하여 불러서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고는 하나님이 친히 인도하고 계십니다.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을 막고 계시며, 의로운 길로 가도록 인도하고 계십니다.

어떤 사람들을 하나님은 인도하고 계실까요?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신뢰하고 내 명철을 의지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범사에 즉 어떤 일이든 하나님이 하고 계심을 인정하는 사람들입니다.

한 주간 내내 내 명철보다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어떤 일이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믿고 따름으로 안전한 길로 축복의 길로

인도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즐거움으로 맺어가는 인간관계!

 

우리들은 매일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나와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는 어떨까요?

헤어질 때 나를 다시 만나고 싶어 하는 관계를 맺어 가는가!

아니면 두 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관계를 맺어 가는가!

내가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상대방에게 다가설 때,

상대방도 나를 맞이하려고 마음 문을 열어줍니다.

그러나 기쁨도 즐거움도 없이 골난 사람처럼 상대방에게 다가설 때,

상대방은 나를 맞이하고 싶은 생각이 없으니까 마음의 문을 닫아버립니다.

한 번의 만남으로 평생 만날 일이 없을 것처럼 대할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이런 사람과는 더 자주 만나게 환경을 만드십니다.

그래서 누굴 만나든 내가 선한 마음을 가지고,

내가 좋은 마음을 가지고 하루를 시작하면 선한 사람을 만나게 하시고,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하십니다.

선하고 좋은 마음이란?

이웃의 아픔에는 함께 울어주고 이웃의 기쁨에는 함께 박수쳐 줄 수 있는 마음입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할 때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갑니다.

말씀대로 살아갈 때 내 인생을 주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Mar. 3. 2019

성도의 교제

 

사람은 누구를 만나서 교제하느냐에 따라서 인격도 성품도 변합니다.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선한 사람들과

교제를 나누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선한 성품으로 변합니다. 반대로 아무리 선한 사람이라도 악한 사람들과

교제를 나누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악한 성품으로 변합니다.

선한 사람도, 악한 사람도 주님을 만나면 주님의 성품으로 닮아 갑니다. 이와 같이 나는 주로 어떤 사람들과

교제를 나누고 있는가? 나 자신도 모르게 교제하는 사람들의 성품을 닮아가고 있습니다.

성도의 교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성도와의 교제를 나누고 있는가? 바울은 빌립보서 2장 3절에서 말씀하시기를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

이 말씀처럼 나를 높임보다 남을 더 높여줄 때 좋은 교제 아름다운 교제를 나눌 수 있습니다.

내 유익보다 이웃의 유익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과의 교제는, 헤어질 때 다시 만나고 싶은 관계가 됩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서 교제하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Feb. 24. 2019

예수님의 전도!

 

예수님은 이 땅에 왜 오셨을까?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오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시려고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마가복음 1장 38절에서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이 일이란 전도하러 오셨다고 하였습니다.

왜 예수님이 직접 마을로 다니시며 전도하셨을까?

마태복음 28장 20절에서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이 말씀처럼 예수님도 가르치고 끝이 아니라 가르치신 내용을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직접 보여주신 것이 전도였습니다.

예수님이 마을을 다니시면서 가르치고 전도하고 고쳐주신 것처럼

우리들도 세상에 나가서 배운 대로 전도하심으로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축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Feb. 17. 2019

                         순종의 축복!

 

인간관계에서 순종은 인격적으로 신뢰할 때 가능합니다.

인간관계에서 신뢰하지 못할지라도,

세상의 수직문화에서는 좋아도 싫어도 순종해야 살아갑니다.

생업 때문에 순종할 수밖에 없기도 합니다.

믿음의 세계에서도 순종하라고 말합니다.

누구에게 순종하라는 것일까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께 어떻게 순종할 수 있겠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것이 순종입니다.

신명기에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리라.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지켜 행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하면 너를 세계 모든 민족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다.

잘 듣고 지켜 행함이 순종이며,

순종의 결과는 모든 사람들보다 뛰어나게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순종하심으로 우리들에게 예비 된 축복을 받아 누리시기 바랍니다.

Feb. 10. 2019

내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

 

마태복음 6장 21절 말씀에,

“네 보물이 있는 그곳에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처럼 내 마음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내 마음이 주님께로 있을까요?

아니면 물질에게로 있을까요?

힘들게 쌓아놓은 물질에게만 온 마음이 가 있기도 합니다.

이 물질을 어떻게 해야 더 많은 물질로 만들 수 있을까?

때로는 자신이 좋아하는 물건을 구입하고는 온 마음이 구입한 물건에게만 있기도 합니다.

이럴 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주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할 때 내 마음에 하나님 나라가 세워진 것입니다.

내 안에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면 무엇이든 주님께 드려도 아깝지 않습니다.

시간을 드려도 시간이 아깝지 않습니다.

물질을 드려도 드린 물질이 아깝지 않습니다.

좀 더 드릴걸, 어떻게 하면 좀 더 드릴까만 생각합니다.

이러한 마음을 주님은 바라고 계십니다.

한 주간 세상에서 열심히 일하면서도 마음은 주님께로 있어서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Feb. 3. 2019

기도!

 

기도처럼 쉽기도 하지만,

기도처럼 어렵기도 하다.

어린이와 같은 기도가 나와야 하는데,

너무 어른스런 기도를 하고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어린 손자 손녀들이 말하는 얘기만 들어도

너무들 기뻐하신다.

어린 손자 손녀들이 말을 잘해서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다.

어린 손자 손녀들이 어떤 말을 할지라도 그냥 기뻐들 하신다.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해도 기뻐하신다.

하나님도 그럴 것이다.

어린아이와 같이 기도하는 것을 들으시고 기뻐하실 것이다.

그리고 어린아이와 같은 기도를 하나님을 들으시고 응답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들으시는 기도는, 어린아이와 같이

가장 쉬운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실 것이다.

Jan. 27. 2019

예배!

 

                                       신을 섬기는 것을 경배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예배드린다고도 말합니다. 하나님을 섬김의                                         표시요, 경배의 표시가 예배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에게 예배하는 사람을 찾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4장 23절에서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예배하는 자들을 찾아서 어떻게 하시려고?

                                                      복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아니! 세상에서 열심히 일을 해야 복을 받지 예배드린다고 복을 받을 수 있느냐!

                                                      세상에서도 자신에게 공손하게 섬기고 따르는 사람에게 뭐라도 더 주고 싶지,

                                                      자신을 보기만하면 못되게 하고, 괴롭히는 사람에게 무엇을 주고 싶겠어요.

                                                      이와 같이 하나님을 섬김의 방법이 예배드림이니까!

                                                      예배드리는 사람을 하나님은 한번 보고,

                                                      또 보시고는 내가 미처 구하지 못한 것 까지도 이루게 하십니다.

                                                      금년 일 년 내내 하나님이 찾으시는 참된 예배자가 되셔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사시기 바랍니다.

Jan. 20. 2019

Jan. 13. 2019

무엇을 먹을 것인가?

 

매일 같이 선택할 사항 중에서 하루에도 두 세 번은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게 합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마태복음  6장 31절에서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그렇지만 현실에서 점점 많아지는 음식 종류들 때문에 선택의 폭이 넓어졌습니다. 때만   되면 선택의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그런가하면 마시는 것도 그래요, 음료수의 종류가 얼마나 많아요. 물만 하더라도 요즘 수돗물을 마시는 가정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정수기를 통해서 물을 걸러 마시고 있으며, 시중에 판매하는 물의 종류도 얼마나 많아요. 많은 종류 중에서 내 입맛에 맞는 음식과 음료수를 찾으려 하니까 고민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입는 문제도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오늘날 입는 문제로

                                            고민하지 않으면 유행 지난 의상을 입어야 합니다. 갈수록 선택의 고민이 많아집니다.

                                               그럴지라도 예수님은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기 전에 마태복음 6장 33절에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말고입지도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먹고, 마시고, 입는 고민 전에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말씀을

구하고 난 뒤에  먹고 마시고 입을 것을 염려하라고,

그리하면 생각을 주십니다. 기억나게 하십니다.

한 주간도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으세요. 나머지 모든 문제들도 해결해 주십니다.

다시 작심하는 새해!

새해는 자신의 나이 숫자대로 맞이하고 있습니다. 매년 새해를 어떤 마음으로 맞이하나요?

나이만 한 살 더 먹었다고 푸념하면서 맞이하나요?

아니면 새해에는 작년에 미쳐 못 다한 일들을 해보려는 마음으로 맞이하는가!

년 초만 되면 많은 계획을 세우고 작심합니다.  올해는 기필코 이런 일을

해보겠다고, 그리고 1월을 보내고 2월을 보내고 3월을 보내면서 작심했던

계획들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결국 작심삼일처럼 이것도 저것도

못하고 포기합니다. 그러면서 년 말이 다가오면 다시 계획을 세워봅니다.

이렇게 몇 번을 반복하는 사이에 자신의 나이도 점점 쌓여져 갑니다.

세상적인 계획도 좋지만 신앙에서도 계획을 세워보세요.

작년까지는 성경을 일독하지 못하고 중간에 포기했었지만,

올해는 반드시 성경을 일독뿐만 아니라 가정예배도 드릴 계획을

세우고 기도해보세요. 기도대로 이루어 주십니다.

작은 계획일지라도 매일 매일 실천해야 하는 것이 성경읽기입니다.

성경읽기는 하루를 건너뛰고 또 하루를 건너뛰다 보면 결국 포기합니다.

올해는 매일 같이 성경읽기로 하루를 시작하여 성경읽기로 한해를 마무리 하시고,

가정에서의 예배도 빠지지 마시고 드리는 한해가 되시기 바랍니다.

Jan. 6.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