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 (2021-04-11)

 

   계 어느 교회든지 지난 주일 부활절 예배를 드렸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승천하시기까지 무엇을 하셨을까? 40일간 이 땅에 계시며 제자들만 만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셔서 부활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잡혀가면서 각자의 생업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부활을 잊어버렸습니다. 부활하신 날 오후에 엠마오로 가는 두 명의 제자에게도 나타나셨고, 그날 밤에는 도마가 없는 10명의 제자들이 있는 곳에서 찾아가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8일 만에 찾아가 도마에게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이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부활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은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서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들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더불어 먹는 귀한 날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시신이 없는 무덤 (2021-04-04)

 

   세상에서는 불가사의한 일들이 수없이 일어납니다. 어떻게 죽었느냐에 따라서 시신을 찾을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화재로 인한 경우 건물과 함께 재로 변하여 시신의 흔적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경우가 아닌 죽음에는 반드시 시신의 흔적을 남깁니다. 매장하거나 화장해서 납골당에 모신다거나 함으로 분명히 죽음의 흔적을 남기게 됩니다.

   그러나 분명히 죽은 시신을 무덤에 묻었는데, 다음날 와보니 시신은 없고 빈 무덤만 덩그러니 있습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 본다면 이건 시신을 누군가 훔쳐간 것인데, 이런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바로 예수님의 빈 무덤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음을 확인할 때 얼마나 철저 했겠어요. 죽음을 확인한 후에 무덤에 장사지내고, 혹시라도 제자들이 시신을 훔쳐 갈까봐서 커다란 돌로 입구를 막아 놓고 경비병까지 세웠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무덤은 열렸고,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시신이 없는 빈 무덤입니다. 바로 예수님이 묻혔던 무덤입니다.

   예수님은 죽었으나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디로 가셨을까요?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죽음을 이기고 승리하셨습니다. 우리들도 죽음을 이기고 부활의 믿음을 갖게 되길 바랍니다. 

종려주일과 종려나무 (2021-03-28)

 

   구약에서 지키라는 절기와 신약시대에 지키고 있는 절기는 다릅니다. 매년 2월 혹은 3월에 사순절이 시작됩니다. 사순절의 시작을 Ash Wednesday로 재의 수요일이라고 말합니다. 이날은 종려나무 가지를 태운 재로 이마에 십자가 모양을 그립니다. 이날 사용하는 재는 1년 전 종려주일에 사용했던 종려나무 가지를 보관하다 새해 재의 수요일에 보관했던 나뭇가지를 태워 사용합니다. 이런 예식은 천주교와 감리교단에서 주로 하고 있으며 일반 개신교단에서는 거의 하지 않고 있습니다.

   왜 종려나무 가지를 태운 재를 이마에 십자가 모양으로 그려줄까? 재는 참회를 의미합니다. 인간은 흙으로 만들어졌고 흙으로 돌아갈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순절 시작을 종려나무 가지를 태운 재로 시작해 부활절 전 주일인 종려주일에 다시 새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예수님을 환영합니다. 오늘부터 예수님의 고난의 일정이 상세하게 사복음서에 적힌 대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성 금요일에 십자가에 매달립니다.

   예수님이 오늘 예루살렘 성안으로 들어오실 때, 사람들은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라고 환영받았지만, 그들의 마음은 쉬이 식어 나중에는 "저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습니다. 이건 어쩌면 우리들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종려주일이 시작되며 예수님의 고난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매일 매일을 예수님이 겪으신 고난을 기억하며 부활절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부활을 기다리는 사순절 (2021-03-21)

 

    예수님의 부활이 있기 전 고난이 있었습니다. 고난을 겪다 마지막에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이 있었기에 부활이 있었고, 승천이 있었습니다. 우리들 역시 알게 모르게 겪고 있는 고난들이 있습니다. 어떤 고난이든 혼자 헤쳐 나가는 건 어렵습니다. 주님과 함께 하는 고난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사순절 기간 내내 십자가를 바라보고 계십니다. 십자가는 죽음의 길입니다. 예수님은 누구를 위한 십자가의 길을 가고 계신가요? 우리들의 죄를 위해, 내 죄를 위해 단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버리려 가십니다. 내 생명이 소중하면 남의 생명도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내가 가진 것들이 소중하면 남들이 가진 것들도 소중합니다. 내 생명과 내가 가진 것만 소중하게 여기고 남의 생명과 소유는 하찮게 여기려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느 누구든 동일한 기준으로 사랑하고 계십니다. 나를 소중하게 사랑하듯, 남들도 소중하게 사랑하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때로 우리는 착각합니다. 예수님은 나만 더 특별하게 사랑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런 우월적인 생각이 남들의 생명과 소유를 하찮게 여기게 하고 내 것만 소중하게 만듭니다.

   이번 사순절을 보내며 우리들 인생의 목적지가 어딘지, 우리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보시고, 세상과 내 즐거움보다 사순절을 보내며 부활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오직 예수님께로 마음을 향하고 말씀을 더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사순절은 고난의 절기입니다. (2021-03-14)

 

    고난이란 단어를 들으면 예수님이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예수의 복음을 전하며 사도 바울이 겪었던 고난 역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받았던 고난은 누구를 위한 고난이었을까요? 예수님 때문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고난을 겪으며 그는 오히려 감사했습니다. 바울도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을 적 교회를 박해했고, 믿는 자들을 핍박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께 대적했던 일들의 몇 배의 고난을 겪으면서도 죽을 때까지 고난을 유익이라 말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로다'라고 바울처럼 고백할 수 없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우리들도 예수님과 복음 때문에 받는 고난이 있나요? 만약 있으시다면, 다 하나님의 은혜라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라 고백할 때 어떤 고난도 쉽고 가볍게 통과시켜 주십니다.

   바울이 자기 몸을 사리지 않고 어떤 고난이든 겪으며 죽도록 충성할 수 있었던 이유는 모두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도 은혜를 모르면 매사에 불평이 나옵니다. 은혜를 모르고 받은 은혜를 망각하면 하나님의 사람이 아닙니다. 세상 어떤 고난 속에서 우리들은 감사했는가, 아니면 불평만 했는가? 어떤 고난이든 내게 닥치면 감사로 받으세요. 나와 동행하시는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

사순절을 보내며 자기 자신을 절제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 삶에서 조금은 불편하고 익숙해진 생활을 벗어나 예수님이 겪은 고난을 생각해 보는 사순절 되시기 바랍니다.

사순절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2021-03-07)

 

   사순절은 구약에서 말하는 절기가 아닌 교회력의 절기입니다. 율법에서 삼대절기는 유월절과 칠칠절(오순절), 초막절입니다. 그러나 교회력에서 절기는 12월 대강절을 시작으로 성탄절, 주현절, 사순절 순으로 이어집니다. 사순절, 즉 사순(40일)이 끝나야 부활절을 맞이합니다. 부활절로부터 다시 칠칠절 즉 오순이 되는 오순절에 성령강림절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가을 추수감사절을 마지막으로 교회력의 일 년을 마치게 됩니다.

   우리는 현재 사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사순절은 고난의 절기입니다. 예수님이 한 발자국 한 발자국씩 십자가를 향해 걷고 계십니다. 십자가는 죽음을 말합니다. 죽음을 향해 가고 계신 예수님의 심정을 헤아려 보는 절기가 사순절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영광의 죽음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이 있어야 부활의 영광을 입게 됩니다. 사순절이 있기에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승천이 있는 것입니다.

   사순절을 보내면서 나도 광야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현대에 있어 광야의 삶이란 무엇일까요? 문화금식을 통해 자신들이 가장 좋아하는 기호식품도 절제하고, 자신들이 즐기던 취미생활도 절제하며 불편한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편안하고 익숙해진 삶에서 벗어나 불편한 삶을 살아볼 때 예수님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새날교회에서는 매년 사순절이면 전 성도님들이 성경 66권 전체를 필사했습니다. 그러나 올해는 대면예배가 활성화되지 못해 신약만 필사하고 있습니다. 한 자씩 내 손으로 쓸 때마다 주님의 마음을 헤아려보는 절기되시기 바랍니다.

기쁨으로 드리는 예물! (2021-02-28)

 

   신앙생활하면서 가장 기본적으로 드려야 할 예물이 있습니다. 연보라고도 부르는 헌금입니다. 헌금 중에서도 가장 민감한 십일조 헌금이 있습니다. 많든 적든 헌금을 드릴 때에 가장 먼저 감사한 마음이 앞서야 합니다. 뭐가 감사해 드리느냐 반문하기도 합니다. '내가 피땀 흘려 얻은 물질인데,' 라며 몇 번이고 계산하고 계산하며 아까운 마음으로 드리기도 합니다. 이렇게 아까운 마음으로 드리는 예물을 하나님은 반갑게 받아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배고프지 않으십니다. 천산의 생축이 다 내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기 시작하면 내 것도 내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단지 내 것처럼 느껴질 뿐입니다. 하나님이 한 번 입김으로 불어버리면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헌금을 드리는 것은 내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다시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다 돌려드리는 것도 아닙니다. 10%만 드려서 십일조입니다. 90%는 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지만, 10%만큼은 본래 주인에게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내 것으로 여기니 십일조의 십일조, 10%의 10%를 드리게 됩니다. 그건 십일조가 아니라 1%입니다.

  아끼고 아낀 것 같지만, 이상하리만큼 생각지도 못한 돈들이 새어나갑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대로 드리는 십일조 생활은 결코 궁핍하지 않습니다. 10%의 빈자리가 클 것 같지만, 여전히 빈자리가 채워져 있습니다. 오히려 다른 곳으로 새나가는 잡비가 어느 순간 줄어들며 더 여유 있는 삶으로 인도하십니다.

나는 자유를 누리고 사는가? (2021-02-21)

 

   세상 살아가려면 내 멋대로 자유롭게만 살 수는 없습니다. 내가 내 마음대로 이웃들과 사회를 의식하지 않은 채 자유롭게만 산다면 법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게 됩니다. 내가 누려야 할 자유도 법적으로 보호받아야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자동차를 운전할 때 내 마음대로 신호등도 무시하고 속도제한도 무시한 채 운전한다면 사고를 일으킬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려 교통법규를 만든 것입니다. 교통법규를 지킬 때 우리는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내가 살고 집이 사유지라고 해서 고성방가를 한다면 이웃들은 소음의 고역을 치러야 합니다. 사회질서를 유지하려고 만든 법을 내가 지킬 때 불편도 있겠지만, 이런 법을 잘 지킬 때에야 오히려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사회질서 때문에 만든 법에 얽매여서 거꾸로 법에 눌려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한국의 어느 검사가 책을 출간했는데 제목이 '검사내전'입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현대인들은 법의 노예들이다. 그런데 정말 우리가 법의 노예인가? 법에 얽매여 살면 법의 노예가 되지만, 법이 나를 자유롭게 한다면 법 때문에 우리는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세상만사 내 마음대로 살 수 없도록 사회구조가 이뤄져 있습니다. 어떤 법이 가로막고 있을지라도 주 예수님과 함께 갈 때 내게 불리한 어떤 법도 초월해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나에게 주신 사명은! (2021-02-14)

 

   어느 사람이든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이 있습니다. 세상일을 위해 받은 사명도 있지만, 예수 안에서 받은 사명도 있습니다. 예수 안에서 받은 사명은 내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 안에서 받은 사명은 하기 싫다고 거절할 수도 없습니다. 예수 안에서 받은 사명은 반드시 해야만 하는 부담감이 있는 사명입니다.

   사명을 받은 사람은 심부름꾼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사명을 받은 사람은 세상의 심부름꾼이 되어야 하고, 예수 안에서 사명을 받았으면 예수님의 심부름꾼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이 사명을 다 할 때까지 결코 우리 곁은 떠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받은 사명을 사람들이 크다, 작다 판단할지라도, 하나님이 보시기엔 어떤 일을 하든 위대한 사명입니다. 성경을 읽는 것도 사명이고 기도와 예배도 사명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교회들마다 움츠리고 있을 때 예수님이 내게 주신 가장 밑바탕이 되는 사명은 무엇일지 생각해 보세요. 가정에서도 성경을 읽을 수 있고, 기도할 수도 있으며, 가정 예배서를 통해 예배를 드릴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받은 말씀과 기도, 예배의 사명에 충성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인간관계의 황금률 (2021-02-07)

 

    예수님이 기독교의 기본 윤리관을 말씀하실 때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어느 누구든 남들로부터 대접받고 싶은 마음은 다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네가 대접받고 싶으면 네가 먼저 남들을 대접하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인간관계에 있어 가장 기본이 됩니다. 남들이 내게 선대해주기를 바라기 전 내가 먼저 남들을 선대해주면 됩니다.

    그럼에도 자존심을 내세워 절대 먼저 대접하기를 꺼립니다. 네가 먼저 하면 나도 하겠다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남들을 선대하다 보면 오히려 거꾸로 이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인간관계에서 호인처럼 항상 남들을 선대해주었지만 나쁜 사람들은 호인을 호구로 알고 함부로 대하기도 합니다. 그럴지라도 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

    어떤 사람은 내 호의를 호구로 여기고 이용할지라도 하나님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선대를 받게 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내가 먼저 이웃을 대접하므로 이웃들도 나를 대접하는 아름다운 황금률이 이뤄지는 새날교회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는 삶인가? (2021-01-31)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사람의 가장 큰 의무 중 하나는 기도입니다. 우리들은 정말 기도하고 있는가? 겉으로 보기에는 열심히 기도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과연 진심으로 주님께 기도하고 있는가? 기도는 나를 내려놓는 훈련입니다. 그럼에도 내가 나를 내려놓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기도를 통해 나를 내려놓았을 때 내 자리에 예수님이 계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도는 내가 죽어지는 훈련입니다. 내가 죽어진 자리에 예수님이 계십니다. 예수님이 계시니 혈기가 사라지고 온유한 성품으로 변화됩니다. 기도를 통해 내가 죽고 예수님이 계시니 살맛이 납니다. 불안했던 마음이 사라지고 무언가 좋은 일이 금방 일어날 듯한 마음이 듭니다. 기도하면 하늘 문이 열린 듯 막혔던 마음이 뻥 뚫리는 것 같습니다.

   기도하면서 성령님이 내게 임재 하였습니다. 기도할 때 성령님이 내 기도를 도와주심으로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하셨습니다. 기도를 통해 주님과 가까운 관계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세상 사람들과의 어떤 관계보다 주님과 가깝게 만들어 주고 계심에 항상 감사하며 기도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무엇을 어떻게 먹을까? (2021-01-24)

 

   사람은 다양한 식재료를 이용하여 다양한 음식을 만들고 식사를 합니다. 그래서 매끼니 사람들은 고민합니다. '오늘 점심은 뭘 먹지? 오늘 저녁은 또 뭘 먹지?'하며 음식은 커녕 식당도 정하기 힘들어 합니다. 어렵게 식당을 정한 후엔 너무 다양한 메뉴에 고민하며 결정 장애에 빠진 것처럼 아무거나 먹자고 말하곤 합니다.

   예전에는 김치와 쌀, 연탄만 있으면 배가 부르다고 했습니다. 오늘날에는 김치도 쌀도, 연탄도 없어도 된다고 합니다. 이제는 빵만 있으면, 햄버거만 있으면, 피자만 있으면 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세상은 점점 편리하게 먹을 수 있도록 즉석음식이 개발되어 누구든지 가정에서 쉽게 요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육신적으로 무엇을 먹을지에 대한 고민을 덜어주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생명의 떡도 시대에 맞춰가고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예전에는 생명의 떡을 먹으려면 종이 성경책이 있어야 했고, 종이 성경책을 읽으려면 갖춰져야 할 조건도 있었습니다. 성경을 읽기 위해 조명이 있어야 하고, 책을 펼쳐놓을 자리도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조명도 책 놓을 자리도 필요 없습니다. 스마트 폰에 깔아놓은 성경은 어두워도, 어느 장소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쉽게 음식을 조리해서 먹을 수 있는 즉석 음식이 개발되듯 하나님 생명의 말씀도 쉽게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생명의 떡을 먹을 때 결정 장애자가 되지 마시고, 이제는 생명의 떡을 습관적으로 읽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예배 드리는 삶이 되어라 (2021-01-17)

 

  기독교는 예배의 종교입니다. 믿음생활과 예배는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로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배가 삶이 되어야 하고, 삶이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예배는 주일 예배 한 번이면 된다고 여기는 분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대면 예배에서 온라인 예배로 익숙해져 가고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예배의 장소보다는 예배드리는 사람의 자세가 중요합니다. 가정에서 혹은 직장에서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릴지라도 경건한 자세로 드린다면 하나님은 기뻐 받으십니다.

  그럼에도 사도행전 2장 46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불타는 장작을 흩어놓으면 불은 시들시들 꺼져갑니다. 그러나 꺼져가는 장작들을 한 곳으로 모아 놓을 때 다시 활활 타오릅니다. 이처럼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전무후무한 질병 때문에 일시적으로 온라인 예배를 드릴지라도 머지않아 대면 예배로 돌아올 것입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모이지 못하는 것임에도 이것이 앞으로 계속 될 거라는 절망적인 말을 하기도 합니다. 비대면 예배는 사탄들이 믿는 자들을 흩어 놓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은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25절에서 말하기를,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할 수만 있다면 모이기에 힘쓰는 마음을 가지세요. 반드시 이 땅에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소멸되고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예배가 삶이 되고 삶이 예배가 되기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영광의 직분에 감사하는가? (2021-01-10)

 

사람이 모이면 단체가 구성되고 구성된 단체를 움직이려고 조직을 만듭니다. 조직을 운영하려고 조직에 맞는 직책을 사람들에게 부여합니다. 교회 역시 조직화되면서 직분을 줍니다. 교회에서 주어지는 직분은 상하 직분이 아니라 평등한 관계이며, 오히려 섬기는 직분입니다. 그럼에도 교회에서 주어지는 직분을 세상의 감투 정도로 여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교회에서 임명하는 직분은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 내려주시는 것이라고 여길 때 감사한 마음과 감격으로 받게 됩니다. 이와 같지 않고 사람이 준 직분, 어떤 교회 아무개 목사가 임명한 직분으로 여길 때 자신에게 주어진 직분을 소홀히 여기기도 하고 쉽게 버리기도 합니다.

내게 주어진 직분을 소홀히 여길 때 교회의 가치가 떨어지게 마련이고 더 나아가 주님의 가치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예수님의 가치를 높이는 일 중 하나가 바로 내게 주어진 직분을 소중히 여기는 일입니다. 자신의 직분에 맞는 활동을 할 때 교회의 가치와 내 자신의 가치 모두 높아집니다. 2021년도 새날교회에서 주어진 어떤 직분이든 영광의 직분으로 받으시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으세요. 이 때에 직분을 감당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십니다.

새로운 2021년을 향하여! (2021-01-03)

  새해를 맞이하여 우리는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성경말씀을 읽기 시작해야 합니다. 성경의 첫 장인 창세기를 펼쳐놓고 어떻게 이 많은 분량을 읽을까 하면서 다시 덮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첫발을 뛸 때 다음 발자국도 뛸 수 있도록 주님이 인도해주십니다. 우리는 성경 66권을 읽기 시작할 때 여기저기를 읽기보다는 창세기부터 시작합니다. 읽다보면 말씀이 마음을 감동시키기도 하지만 말씀이 마음을 찌를 때도 있습니다. 마음을 찌르는 말씀은 건너뛰려고 하고 읽어도 이해가 안 되는 말씀도 건너뛰려고 합니다. 그래서 어느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말씀을 마주할 때 좋아하는 것은 믿고 싫어하는 것은 거절한다면, 당신이 믿는 것은 복음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다.

  내가 좋아하는 말씀에는 형광펜으로 칠하고 밑줄까지 그어놓지요. 내가 성경책을 펼치면 색깔이 칠해졌고 밑줄까지 그어놓은 말씀만 읽게 됩니다. 잘못하면 영적 편식이 생겨서 영적 영양실조에 걸릴 수도 있습니다. 음식도 골고루 먹어야 하듯이 말씀도 골고루 먹어야 합니다. 색깔을 칠하지도 않고 밑줄도 그어놓지 않은 말씀이 영적보화이기도 합니다. 성경 말씀은 읽을 때 마다 표시가 전혀 없는 말씀도 새롭게 눈에 띄게 하십니다. 창세기부터 읽기 시작하셨으니 말씀이 달든 쓰든 다 읽으셔서 복음이 내 안에 있게 하세요. 복음으로 올 한해도 승리하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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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새날이 되자는 목표로

2001년 3월 14일 창립을 준비하여

2001년 5월 27일 첫 예배를 드리며

새날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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