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초의 복음 (2020-10-25)

  오래전 일본 TV 방송에서 광고했던 시계 광고 내용 중, 1초의 기쁨, 1초의 눈물이란 광고 카피가 있습니다. 단 몇 자의 단어로 전하는 말이 상대방에게 감동을 주기도 하지만, 단 몇 자의 단어로 상대방을 실망시키기도 합니다. 옛말에 촌철살인이란 말이 있습니다. 많은 무기로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닌 한 치도 안 되는 짧은 칼과 같은 말로 사람을 죽인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날 방송 또는 신문 등에서 아주 짧은 몇 마디로 시대상황이나 특정인물에게 뼈 있는 말을 전할 때 촌철살인이란 말을 사용합니다.

  이와 반대의 사자성어도 있습니다. 촌철활인이라고 합니다. 아주 짧은 말 한 마디가 상대를 일으켜 세웠을 때 사용합니다. 복음을 전할 때도 촌철활인과 같이 아주 짧은 단어로 주님의 뜻을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장황한 언어로 복음을 전하기보다 아주 간략하게 짧은 말로 전하더라도 얼마든지 촌철활인과 같이 복음을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현대사회의 바쁜 일상 속에서 길고 긴 문장보다 짧은 문장으로도 얼마든지 자신의 뜻과 주님의 뜻을 전할 수 있습니다. 시계회사의 광고처럼 단 1초의 짧은 말로 상대방에게 기쁨을 줄 수도 있지만, 단 1초의 말로 상대방을 슬프게 만들기도 합니다. 1초의 아주 짧은 말로 복음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날마다 새 사람을 입으라 (2020-10-18)

  사람은 매일같이 옷을 갈아입습니다. 눈에 보이는 옷만 갈아입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 마음의 옷도 갈아입어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옷이 더러워지면 세탁해서 입듯, 마음의 옷도 세탁해 입어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옷은 자주 세탁을 해 항상 깨끗하게 보이는 반면, 마음의 옷은 눈에 보이지 않아 세탁을 게을리 합니다. 옷을 세탁하듯 마음의 옷도 세탁해야 하는데, 어떻게 세탁을 해야 흰 눈처럼 하얗게 될까?

  말씀과 기도, 예배를 통해 마음의 옷을 세탁해야 합니다. 날마다 옷을 갈아입듯 마음의 옷도 세탁해 깨끗한 상태로 입어야 합니다. 마음의 옷이 깨끗해질 때 새사람이 됩니다.

  어제의 내가 아닌 오늘의 나는 깨끗하고 청결한 마음의 옷을 입고 새사람이 된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 예배를 통해 마음이 청결한 옷으로 갈아입는 새날교회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만남의 비밀 (2020-10-11)

 

  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수많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내가 원하는 사람이든 내가 원하지 않는 사람이든 만나야 합니다. 그 누구도 내가 원하는 사람만 골라 만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가 가고 있는 방향과 내 마음의 상태에 맞춰 만남이 이뤄진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의 마음 상태가 긍정적이고 소망을 가진 사람은 긍정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을 만나게 되고, 늘 우울하고 부정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은 그와 비슷한 우울하고 부정적인 사람은 만나게 되며, 잔머리를 굴리는 사람은 꼭 잔머리를 굴리는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마치 자신이 선택해서 만남을 가지는 것처럼 자연스레 이뤄집니다.

  하지만 자신의 상태를 잘 알고 있다면, 만남의 상대를 바꿀 수 있습니다. 우울하고 부정적인 마음을 가진 것을 안다면 긍정적이고 소망이 있는 사람을 만나려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마음을 향하는 사람을 만나게 해주십니다.

  내가 예수님을 만나길 소원한다면 예수님은 만나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기쁨과 즐거운 마음을 가지고 부정보다 긍정의 마음을 가질 때, 나와 같은 사람을 만나게 하시는 주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발자국! (2020-10-4)

 

  우리는 날마다 이정표를 꽂으면서 길을 가고 있습니다. 이정표는 길을 안내하는 표지판입니다. 낮선 도시에서 이정표가 없으면 길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물론 현대에서는 GPS가 있어서 지도와 이정표 등이 거의 필요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이정표를 보면서 GPS를 봐야 쉽게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이정표도 있지만, 우리들이 가고 있는 인생에도 이정표가 있습니다. 나는 누군가에 의해서 세워진 이정표를 보고 미래를 향하고 있습니다. 나도 내 인생길을 가면서 끊임없이 이정표를 세우면서 가고 있습니다. 내가 세운 이정표를 보고 누군가는 뒤따라옵니다.

  한 겨울에 하얀 눈이 온 대지를 덮어서 길인지 아닌지 분간을 못할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내가 첫발자국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내 뒤에서 내 발자국을 보고 따라오는 사람들이 있듯이 인생에서의 발자국과 이정표는 보이지 않습니다. 내 삶이 이정표요 발자국이 됩니다.

  내가 어떻게 사는가에 따라서 많은 사람들은 내 발자국을 뒤따라옵니다. 하루하루가 내 삶의 발자국입니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뛸 때마다 아무 생각 없이 뛸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마음으로, 믿음의 발자국을 남기시기 바랍니다.

움켜쥐었던 손을 활짝 펴자! (2020-9-27)

 

  간난아이는 엄마 뱃속에서 나올 때 손바닥을 펴지 않고 꽉 쥔 채 이 땅에 등장합니다. 손에 무엇을 움켜쥐고 출생했을까요? 욕심일까요, 욕망일까요? 이렇게 출생한 아이는 욕심을 배우고 욕망을 가슴에 품고 성장합니다. 움켜쥔 손을 활짝 펴지 못하고 욕심과 욕망을 더 이루려 노력하다 결국 야고보서 1장 15절 말씀처럼,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게 됩니다.

  한편 자신이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 욕심스럽던 손바닥을 활짝 펴버릴 때가 있습니다. 손 안에 들어온 것만은 절대 놓칠 수 없다고 꽉 쥔 채 살았지만, 현실에서는 빈 손바닥이 되기도 합니다.

  옛말에 인생은 공수래공수거라고 합니다. 태어날 때는 빈손바닥을 움켜쥐고 출생했지만, 이 땅을 떠날 때는 두 손바닥을 쫙 펴고 떠나게 됩니다. 결국 빈 손으로 왔다 빈 손으로 떠나는 것이 인생입니다.

  욕심과 욕망의 손바닥을 펴지 못한 채 살다 보면 자신의 마음도 사해처럼 생명력이 없는 죽음의 바다가 됩니다. 인생은 움켜쥐었던 손을 펴기도 하고 때로는 움켜쥐기도 하며 생명력이 넘치는 갈릴리 호수가 되야 합니다. 내가 받은 축복이 갇혀 있는 사해가 아니라 이웃들에게도 흘러가는 갈릴리 호수와 같은 미음이 되시기 바랍니다.

겉 사람과 속사람 (2020-9-20)

 

  누구나 사람은 몸에 옷을 입어야 하지만, 영적으로도 옷을 입어야 합니다. 겉에 옷을 입는 것은 의상뿐만이 아닙니다. 화장도 옷을 입는 것입니다. 왜 겉에 의상으로 화장으로 옷을 입을까? 날마다 낡아져가는 겉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람의 겉모습은 낡아져 가고 있습니다. 피부의 노화 현상으로 인하여 자신의 나이를 속일 수는 없습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겉 사람은 낡아진다고 하였지만,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진다고 하였습니다. 모든 식물이든 동물이든 겉이 낡아지면 속도 함께 낡아져 갑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영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겉 사람은 나이에 맞춰서 점점 낡아져 가지만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진다고 하였습니다.

  속사람이 날마다 새로워질 수 있는 것은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가! 중요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는 어디를 바라보는가,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어느 방향인가! 보이는 세계만 바라보는가? 보이는 것은 잠깐이라고 하였습니다. 잠깐 동안 보이는 세계만 바라본다면 우리의 겉모습은 매일 같이 낡아져 가면서 속도 함께 낡아져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라고 하였습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는 영원하다고 하였습니다. 영원은 불멸을 말합니다. 영원히 죽지 아니하는 영생의 소망을 가졌을 때 겉은 낡아져가도 우리의 속사람은 매일같이 새롭게 됩니다.

  우리들은 보이는 세계만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이제는 보이지 아니하는 세계를 바라볼 때 날마다 새로워집니다. 영적으로 새로워질 때 육신의 모습도 날마다 새로워집니다. 영적으로 충만할 때 육신적으로도 소망으로 충만하게 채워주십니다.

행복한 사람 (2020-9-13)

 

  사람에게 가장 큰 행복은 무엇일까? 사람에 따라 다 다르겠지만, 크리스챤에게 가장 큰 행복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아닐까요? 이 땅에서의 사람은 세월이 가면 배신하고 변질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는 것은 절대불변의 영원한 사랑입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받은 사랑에 조금이나마 나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사랑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사랑이 메말라 갈수록 인성도 메말라 가며 성격이 원만하지 못하고 강퍅해집니다. 사람이 사랑받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는 빈 마음을 강퍅한 마음이 차지합니다. 성격이 강퍅해질수록 자기밖에 모르고,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사소한 일에도 발끈하며 벌컥 화를 잘 냅니다. 이런 현상은 사람에게 가장 큰 불행 중 하나입니다.

  이럴 수록 사람은 욕심에 빠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여러 욕심 중에서 돈에 빠지게 됩니다. 돈이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될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대상이 하나님이 아니라 나중엔 돈이 자신의 우상이 됩니다. 하나님 사랑보다 돈을 먼저 사랑합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거리를 점점 멀어지게 만드는 욕심이 죄가 됩니다. 나와의 사이에 죄를 말씀과 기도로 무너트리고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행복한 삶이 되기시 바랍니다.

내 마음의 그릇은 (2020-9-6)

 

  사람을 보고는 저 사람은 그릇이 크다, 작다 평가합니다. 체격이 크면 그릇이 커 보일까요? 그릇이 클 수도 있고 체격에 비해 그릇이 작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을 보고 그릇이 크다 작다 하는 문제는 마음 씀씀이를 보고 말합니다. 때로는 체격이 아주 작은데도 사람들은 그 사람을 그릇이 크다고 말합니다.

  사람의 그릇은 외형에 있지 않고 마음에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온 우주를 다 담아도 그 그릇을 채우지 못할 만큼 크기도 하지만, 또 얼마나 작은지 빈대 얼굴만 하다고 빈정거리기도 합니다. 우리들은 성경을 읽고 배우며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가고자 애를 쓰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두 손과 두 발에 못박힌 채 십자가에 매달렸고, 머리에는 가시 면류관을 써 가시가 머릿속으로 파고들었으며, 옆구리는 창에 찔려 물과 피가 빠져나왔습니다. 이런 상태로 뜨거운 태양 아래 십자가에서 6시간을 매달린 채 예수님은 기도했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저들은 자신들이 무얼 하는지도 모르니 저 사람들을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을 향해 기도했습니다.

  우리들 마음의 그릇은 얼마나 클까요? 예수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닮아간다면 내 마음의 그릇은 점점 커질 것이고, 예수님의 마음과 상관없는 세상적인 욕심만 담는 그릇이라면 어쩌면 간장 종지만하지 않을까요? 별스럽지도 않은 일에 목숨 걸지 말고 예수님을 위해 목숨을 걸 때 우리들 마음의 그릇 안이 말씀의 보화로 가득 채워지는 한 주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정에 살고 정에 죽는 민족 (2020-8-30)

 

  한국인들만큼 정에 살고, 정에 죽는 민족이 없을 것입니다. 미국 선교사들이 한국에서 오랫동안 살다 자신의 고국 미국으로 돌아와서 하는 말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살기 너무 힘들다고 합니다. 미국인이 미국에서 사는데 무엇이 힘들다고 하는가? 한국의 정이 그립다고 합니다.

  미국에서는 ‘너는 너고 나는 나다’ 식의 집단적인 정이 없기 때문입니다. 정말 한국은 정으로 뭉친 것과 같습니다. 자신의 이념과 사상도 정 때문에 자신의 길을 가지 못하고 뒤따라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웃들과 잘 지내다가 작은 문제로 평생 안 볼 것처럼 헤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는 한이 맺힌 관계로 지냅니다. 안 보고 살면 된다고 하면서도 마음의 눈은 항상 헤어진 이웃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움도 정이 됩니다. 마음으로 미워하면서도 정이 그리워 다시 화해하고 지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한의 민족이요 또한 정의 민족이라고 말합니다.

  정은 선악간의 경계조차 무너지게 합니다. 혈연과 학연, 지연으로 통하는 것은 보이지 않게 정이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연으로 연결된 관계가 결국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고 범법행위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혈연과 학연, 지연에서 연으로 잘못 연결되면 나중에는 정나미가 떨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정으로 뭉친 공동체가 아니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뭉친 공동체가 될 때 건강하고 평화로운 관계로 이어집니다.

오늘날 예배 풍속 (2020-8-23)

  사도행전 2장 46절을 보면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라”고 했습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인 교회에 모이기를 힘쓰라고 했지만, 현실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 예방 수칙 때문에 모이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건물 교회에서 연합으로 예배를 온전히 드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장년부의 경우엔 현장 예배도 드리지만 온라인을 통해 가정에서도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온라인 예배는 장년부, EM, 아동부, 유아부로 나누어 드립니다.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는 장소 역시 다양합니다. 부모 세대는 거실에서, 학생들은 각자의 방에서 드립니다. 이런 모습은 건물교회에서 장년부, EM, 아동부, 유아부 예배실이 구별된 것과 같습니다. 각자의 가정에서 작은 교회로 예배를 자유롭게 드리는 현실입니다.

  예배가 자유화되고 있습니다. 온라인 예배에 적응하며 사람들은 시간에 있어서도 자유를 얻었습니다. 주일 오전 11시 온라인 예배를 놓쳐도 언제든 재방송으로 볼 수 있다고 편히 생각합니다. 옷과 꾸미는 문제에 있어서도 자유를 얻었습니다. 더 나아가 자세에 있어서도 자유를 얻었습니다.

  이렇듯 자유로운 예배 환경이 마음에 굳어지면서, 이제는 성전에 모이지 않는 예배가 어느덧 습관이 됐습니다. 우리는 히브리서 10장 25절 말씀을 유의해서 보아야 합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라.”

  우리는 성전에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현재의 상황은 모이기에 힘쓸 수 없을지라도, 코로나 바이러스가 소멸되고 다시 모이기에 힘쓰기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자유를 누리는 해방자! (2020-8-16)

  하나님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우리들 모두에게 새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큰 선물을 주셨는데, 바로 자유입니다. 우리가 숨 쉬듯 누리는 이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지 사람들은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자유는 우리들의 가장 큰 기쁨이며 즐거움이고 행복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자유는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빠삐용’이라는 영화에서 주인공 빠삐용은 감옥에서 극적으로 탈옥에 성공합니다. 그리고 ‘나는 자유를 얻은 해방자’라고 외칩니다. 자유를 얻었다고 외치는 빠삐용에게 친구 드가가 말합니다. 네가 아무리 탈출에 성공했더라도 네 마음의 감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너는 여전히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이라고. 이처럼 우리도 마음의 감옥에 갇혀 살지 않는지요!

  이렇게 자유로운 세상에 살면서도 여전히 마음의 감옥에 갇혀 한탄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우리를 향해 예수님은 진정한 자유의 길을 열어 주십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리라,” 바로 요한복음 8장 32절 말씀입니다.

  자유를 누리며 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인생의 순간순간마다 사탄은 우리의 자유를 빼앗고자 유혹하고 있습니다. 유혹의 손길이 다가올 때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세요. 진리는 말씀이며 말씀이 우리의 자유를 지켜주고 보호해주십니다.

  마틴 루터는 자유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의 종 된 자만이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자유는 갖는 것이 아니고 누리는 것입니다. 자유를 마음껏 누리는 해방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모이고 흩어지는 훈련 (2020-8-9)

  강하고 건강한 교회는 에클레시아와 디아스포라가 잘 훈련된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이기에 힘쓰고 흩어져서는 각자의 위치에서 복음을 잘 전하는 교회입니다.

  에클레시아는 교회를 말하며 교회는 모이기를 힘쓰라고 했습니다. 교회에 모인 성도들은 말씀을 배우고 배운 말씀을 마음에 충전합니다. 충전된 마음을 가지고 교회를 떠나 각자의 생활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디아스포라입니다. 성도들은 각자의 위치로 돌아간 후 마음에 충전된 말씀을 그곳에서 전파합니다.

  이렇듯, 예배로 교회에 모이기를 힘쓰고, 다시 삶의 위치로 흩어지는 것이 순리입니다. 그런데 항상 교회에 모이기만 하고 흩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집단생활에 빠진 이단들의 모습입니다. 이들은 재림하실 예수님이 언제 어느 때 어느 장소로 오신다는 응답까지 받았다고 말하며 흩어지지 않고 재림하실 예수님만을 기다린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디로 가라는 말씀이실까요? 모든 민족을 제자 삼아 세례를 베풀라 하셨고,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 하셨습니다.

  오늘날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모든 성도들이 각자의 가정으로 흩어졌습니다. 너무 오래 흩어져 있다 보니 모이기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디아스포라 된 성도님들이 에클레시아 즉 교회에 모여 함께 예배드리기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온라인으로 예배드릴 수 있음에 감사하시고, 각자의 삶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복음의 전파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얼굴과 마음을 가면으로 가리는 시대 (2020-8-2)

  사람은 자신의 얼굴을 사람들 앞에 나타내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람들 앞에 떳떳하게 서지 못할 때 사람들은 얼굴에 마스크를 쓰고 나타납니다. 얼굴을 마스크로 가리면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범죄자들은 자신의 얼굴을 가리기 위해 마스크를 쓰고 범죄를 저지르기도 합니다. 한편 독감환자들은 남들에게 독감 바이러스가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마스크를 씁니다.

  오늘날에는 모든 사람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예방하기 위해 마스크를 씁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사람을 만나면 상대방은 내가 누군지 모르기도 합니다.

  이렇게 얼굴을 마스크로 가렸다고 우리들의 삶도 가려진 것은 아닙니다. 얼굴을 가려 내 모습을 감춘 것 같아도 눈빛과 음성, 행동을 통해 내가 누군지 알 수 있습니다. 가려진 것은 얼굴의 일부가 아니라 마음입니다. 얼굴을 가린 채로 살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마음도 가린 채 살아갑니다. 바이러스를 예방하기 위해 얼굴을 마스크로 가렸을지라도, 마음을 가리는 마음의 마스크를 쓰지 말고 내 모습 이대로 보여주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나그네 인생! (2020-7-26)

  가수 고 최희준 씨의 히트곡 “하숙생”엔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느냐?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아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대중가요의 가사임에도, 우리 인생을 진솔하게 노래했습니다.

  이 땅에서의 삶은 어쩌면 하숙생과 같습니다. 하숙생은 일시적으로 살다가 떠나는 사람입니다. 하숙생은 성경 속 나그네 비유와 비슷합니다. 성경 역시 이 땅 위에서의 삶을 거류민 혹은 나그네로 표현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생은 어디서 왔을까? 하나님께로부터 와서 하나님이 다시 부르는 그날까지 사는 곳이 이 땅입니다. 이 땅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다 마지막에 어디로 가는가? 내가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래서 이 땅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들이 가야할 마지막 장소인 하나님 나라가 우리들의 본향입니다. 항상 본향을 그리워하며 살다, 하나님 아버지가 찾으시면 나그네의 삶을 털어버리고 아버지가 기다리고 계시는 내 본향으로 돌아갑니다.

하숙생과 같은 나그네 인생일지라도 하나님은 이 땅에서 풍요로운 삶을 통해 천국과 같은 삶을 누리라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불러 세우셨습니다. 이에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내게서는 무슨 향기를 풍길까? (2020-7-19)

  많은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커피가 만들어지기까지는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농장에서 수확한 생두를 말려 껍질을 벗겨내면 우리가 흔히 아는 원두가 만들어집니다. 그 원두가 세계 각국으로 수출되고, 원두를 수입한 회사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그 원두를 볶아 천차만별의 가격으로 판매됩니다. 커피회사에서 구입한 볶은 원두는 각각의 점포로 배달되고, 점포에서는 분쇄기로 볶은 원두를 갈아 손님들에게 커피를 제공합니다. 그런가하면 몇몇 커피 점포에서는 원두를 직접 수입해 자신들이 설비한 로스트 기계로 원두를 볶습니다.

  커피는 원두를 볶는 방식에 따라 다양한 향을 냅니다. 같은 원두라 해도 볶는 방식에 따라 향이 다른 커피처럼, 우리들의 마음도 어떻게 볶느냐에 따라 다른 인생의 향기를 냅니다. 너무 마음을 달달 볶으면 내 인생에서는 탄내가 풍길 것이고, 너무 약하게 마음을 볶으면 내 인생에서는 아무런 향도 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삶은 커피 원두를 볶는 과정과 같습니다. 원두를 알맞은 정도로 볶았을 때 진한 커피 향을 맡을 수 있듯, 우리들의 마음도 적당하게 잘 볶았을 때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은은한 향을 내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오래오래 마음을 볶는다고 좋은 향기가 나지 않습니다. 적당한 정도로 마음을 볶으려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불 조절을 하셔야 합니다. 감사의 불로 좀 더 강하게 마음을 볶아 잡내를 없애기도 합니다. 감사의 불로 알맞게 마음을 볶아 인생의 향기를 진하게 풍기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위로해주고 격려해주는 사회 (2020-7-12)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유명을 달리하는 오늘날엔 하루하루 살아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야’라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현실 속에 서로가 서로를 위로해주고 격려해주는 예수님의 사랑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건강도 지켜야하지만, 삶의 현장에서 생활고 때문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현재 미국의 상황 속에서 자영업을 하고 계신 분들과 직장을 잃으신 분들은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모든 분들이 하나님의 위로하심을 받기 원하고, 또 자신이 받은 위로를 다시 이웃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가족들 간에 위로와 격려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 가족에게 그리고 부부 간에 위로와 격려, 칭찬에 인색합니다. 이웃들에게 전하는 위로와 격려도 기억해야 하지만, 이제부터는 가족의 구성원에게 위로와 격려, 칭찬을 아끼지 않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전하는 위로의 말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가슴에 두 손을 얹고 ‘수고했다, 힘들었지, 괜찮아’하며 스스로를 격려해주고 칭찬해주며 자기 자신을 위로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시길 소망합니다.

불확실한 세상을 확신있게 살아라! (2020-7-5)

  인생은 뒤돌아갈 수도 없으며 두 번 다시 살 수도 없습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을 가다보니 그 길은 사실 불확실한 길입니다. 한편 사람들은 생전 가보지 못한 길을 마치 익숙한 길 걷듯 확신을 가지고 걷습니다. 가보지 못한 미지의 길을 가면서도 두려움 없이 갈 수 있는 이유는 믿음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예수님이 우리의 미래가 되어주십니다. 우리들의 미래가 되어주신 예수님이 우리들의 앞날을 인도해 주십니다. 예수님이 우리들의 미래가 되어주심이 믿어질 때,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이라도 자신있게 발걸음을 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미래가 되어주신 예수님이 우리들의 마음을 붙잡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내 소유물의 주인인가, 아니면 포로인가? (2020-6-28)

  해외여행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크레딧 카드가 들어있는 지갑과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여권이 아닐까? 지갑을 분실하면 해외 여행지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뿐더러, 여권이 없다면 내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밝힐 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한국 사람들은 해외여행지에서 스마트폰의 배터리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왜 스마트폰을 중요하게 생각할까요? 여행지에서 사진을 찍어 곧바로 SNS에 올려야 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런 분들은 스마트폰의 주인이 아니라 포로가 된 셈입니다.

  세상의 어떤 물질이든 주인이 있습니다. 주인은 자신의 소유인 물건을 마음대로 사용합니다. 주인은 자신이 사용하던 물건을 버릴 수도 있고, 이웃들에게 나눠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장강박증이 있는 사람은 물건의 주인이 아닌 물건의 포로가 됩니다. 구입을 했든 얻어왔든, 물건들을 절대 버리지 못한 채 집 구석구석에 쌓아둡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물건들을 정리하고 버리라고 권면하면 화를 냅니다. 언젠가 다 필요할 때가 있고, 가지고 있으면 누군가 필요할 때 줄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오래 전 한국 YMCA에서 설문조사를 했는데, 각 가정마다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 31%나 된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지금은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이럴 때 우리는 마음을 고쳐야 합니다. 이 땅의 모든 것을 다스리라고 하셨는데, 거꾸로 포로가 된 것입니다. 이제 훌훌 털어버리고 모든 물질의 주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빠와 아버지의 호칭 (2020-6-21)

  ‘아빠’는 격식을 갖추지 않아도 되는 아주 가볍고 친근한 호칭입니다. 그렇다면 아빠라는 호칭의 근원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요? 아바마마의 아바에서 나온 말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말에는 아버지를 부를 때 여러가지 호칭이 있었는데, 아비, 아바, 아바님, 압바가 변해서 아빠가 되었습니다. 그런 ‘아빠’는 자식과의 관계가 매우 친밀해 친구처럼 여겨지는 호칭이지만, 아버지라는 호칭은 그에 비해 권위적이고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예전 아버지의 이미지는 엄하고 무서웠지만, 시간이 흐르며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아빠는 인자하고 엄마는 엄하고 무서운 사람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아버지의 빈 자리를 자연스레 엄마가 채워주다 보니 자식들에게 엄마의 영향력이 점점 커졌습니다. 엄마가 너무 아버지의 역할을 감당하는 집에서 엄마들은 계모 소리를 듣기도 합니다.

  이런 시대에 아빠의 본색에서 벗어나 아바 아버지의 역할에 충실하시기 바랍니다. 요즘은 키덜트(Kidult, Kid와 adult의 합성어) 아빠들이 많아진다고 합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어른이란 말입니다. 그들은 취미생활이 어린아이들과 같습니다. 대표적으로 장난감시장에서 키덜트 아빠들은 어린아이들만큼이나 중요한 고객입니다. 그들은 어릴 적에 즐기던 것을 성인이 되어서도 즐기려 합니다. 나이에 맞는 행동을 규정하는 사회에서는 키덜트 아빠들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럴지라도 아버지의 권위가 서야 자식들의 모범이 되고 가정에서 아버지의 설자리가 있습니다. 특별히 가정에서 가정예배의 인도자 역할에 충실하셔서 영적으로도 아버지의 권위가 서는 가정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대인관계의 지능 (2020-6-14)

  인간사회에서 사람간의 관계는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모른다고 할지라도, 한 다리 건너 알아보면 쉬이 상대방이 누군지 알 수 있습니다. 인간관계는 마치 그물망처럼 촘촘하게 얽혀 있어 피해서 빠져나갈 길이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인간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유난히 끌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특별하게 누군가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지 않았음에도 사람을 끄는 매력을 지닌 사람을 대인관계에 있어 지능이 높다고 말합니다. 기업에선 CEO의 중요한 덕목 중 하나로 대인관계 지능을 꼽습니다. 인간관계를 잘 맺고 인맥관리를 잘 해야 사회에서 적응이 빠르고 성공할 수 있다 말합니다.

  인생은 만남의 연속입니다. 인생의 만남에 있어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비결은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울리며 편안한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 속에서 사람들은 나보다 사정이 나은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맺는 일에 관심을 쏟습니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이와 반대로 말합니다. 믿음이 강한 사람은 약한 자를 돌봐주라고 말합니다. 강한 자가 약한 자의 약점을 들춰내 농담거리를 만드는 것은 전혀 성경적이지 않은 일입니다. 또한 내 기쁨보다 이웃을 기쁘게 하는 관계를 맺으라고도 말합니다. 쉬운 말씀같지만 가장 어려운 말씀입니다.

  모두가 내 만족을 위한 삶을 추구하지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섬김을 받고자 함이 아니고 도리어 섬기려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주간도 성경의 말씀처럼 나보다 강한 사람이 아닌 나보다 연약한 사람들을 돌볼 수 있는 인간관계를 이뤄나가시기 바랍니다.

편지! (2020-6-7)

  예전에는 직접 종이에 손으로 써서 편지를 보냈습니다. 이후 타자기로 종이에 글쓰기를 하고 편지를 보내는 식으로 변화했고, 이제는 우체국을 통하지 않고도 이메일로 상대방에게 직접 편지를 보냅니다. 거기서 더 변해 SNS에 몇 줄 댓글을 달아 안부를 묻기도 합니다.

  이렇듯 시대에 따라 편지를 보내는 방식이 변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 시대에는 먹으로 종이에 편지를 쓰는 것이 아니라 육의 마음 판에 새겼다고 했습니다. 우리들 마음 판에도 예수님의 말씀이 기록됐습니다. 그리고 마음 판에 예수님의 말씀이 기록된 사람은 예수님의 편지입니다. 또한 여러분 각자는 교회의 편지이기도 합니다.

  나는 새날교회의 편지로서의 역할을 잘 하고 있는가? 아니면 내가 편지인지도 모른 채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분명한 것은 우리들은 움직이는 예수님의 편지이며, 새날교회의 편지입니다. 나는 좋은 소식을 전하는 편지인가요, 나쁜 소식을 전하는 편지인가!

  항상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하는 예수님의 편지이자 새날교회의 편지가 되셔야 합니다. 모든 편지에는 수신자가 있습니다. 우리들이 편지를 보내는 수신자는 전도의 대상입니다. 아직까지 예수님을 모르는 이웃에게 나의 행실을 통해 예수님의 편지를 보내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신앙 (2020-5-31)

  사람이 사람을 만나면 역사가 일어나고,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면 기적이 일어난다고 김장환 목사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어떤 사람을 만나는가에 따라 은혜로운 역사가 일어날 수도 있고, 망신스러운 역사가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면 절대 망신스러운 기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기만 하면 은혜로운 기적들만이 일어납니다.

  오늘은 성령강림절이며, 온 교회의 생일날이기도 합니다. 성령강림을 통해 교회가 시작되었고, 이때부터 움츠리고 있던 제자들이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성령의 임재로 제자들이 변화된 것처럼 우리들도 성령의 임재를 통해 변화된 삶을 이뤄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오랜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기계적인 신앙생활을 할 때도 있습니다. 입술로는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는다 말하며 실생활에서는 자신의 의지대로 일을 합니다. 신앙생활은 한 번의 변화로 끝나는 것이 아닌 날마다 변화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 25절에서 바울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하라”고 했습니다. 은혜 받았으면 은혜대로 살고, 기도했으면 기도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못한 채 믿음과 상관없는 삶을 산다면, 이는 따로국밥과 같습니다. 국 속에 밥이 들어갔을 때 국밥이 되는 것입니다. 밥이 국에 들어가지 않고 어우러지지 않으면 따로국밥일 뿐입니다.

  우리들의 신앙도 은혜대로, 아멘대로, 기도대로 살아갈 때 주님과 하나가 됩니다. 성령을 받았으면 반드시 성령대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은혜로다, 은혜로다! (2020-5-24)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자랑할 수 있는 은혜는 무엇일까? 자신이 원하는 일들이 이뤄졌을 때일까, 자녀들이 세상에서 성공했을 때일까,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일까? 우리의 삶속에서 예수님을 만난 것이 가장 큰 은혜입니다.

  항상 자신이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면 한 순간도 예수님은 우리를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항상 예수님의 눈 안에 머물고 있었음에도, 우리는 늘 예수님과의 거리를 두려고 합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멀어지려 할 때마다, 예수님은 우리를 붙잡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붙잡는 경험은 어쩌면 우리에겐 고통스러웠을지 모릅니다. 예수님은 도망치는 우리에게 문제를 주시고, 그 문제를 통해 다시 우리를 붙잡으시고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러니 문제를 만나시면 감사하세요. 문제 속에 숨어있는 축복을 찾으세요. 때로는 즉각즉각 빠져나갈 통로를 보여주시지만, 때로는 기나긴 시간 속에서 통로를 보여주시기도 합니다. 문제 속에서 축복의 통로를 찾을 때 '은혜로다, 은혜로다!'하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믿는 자의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과 동행함이다. (2020-5-17)

  나는 누구와 동행하고 있을까? 사랑하는 가족들과 동행하고 있을까, 아니면 이웃, 직장 동료들과 동행하고 있을까? 사람들은 ‘나는 내가 가진 재산과 함께 평생 동행할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합니다. 내가 가진 재산이 얼마나 되기에 평생 동행할 수 있다 말할까? 그 재산이 과연 끝까지 나와 동행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자신이 소유한 재산을 알게 모르게 의지합니다. 유가증권과 현금, 부동산 등을 골고루 소유한 것을 자랑하기도 합니다. 유가증권이 폭락하면 현금과 부동산이 뒷받침한다고 자랑하고, 다른 하나가 잘못돼도 자신이 가진 다른 재산을 통해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투자의 기본에 따라 안전하게 분산투자한 덕분에 자신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신 이도 여호와 하나님이시고, 거두시는 분도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아무리 안전하게 투자했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치우시면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질 물질과 동행하는 것은 전혀 안전한 방법이 아닙니다. 가진 재산이 없다 할지라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가장 큰 부자요, 가장 큰 축복을 누리는 사람입니다. 성도님들도 날마다 주님이 주시는 쉼을 누리며 평안하게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어머니! (2020-5-10)

  이런 말이 있습니다. 아들 가진 부모는 아들 며느리로부터 알맹이 없는 선물을 받지만, 딸 가진 부모는 딸과 사위로부터 알토란같은 선물을 받는다고 합니다. 물론 웃자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뼈가 있는 유머같기도 합니다.

  세태가 그렇습니다. 친가에는 좀 소홀히 해도 괜찮겠지 하다 보니 때로는 너무 소홀하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오로지 아들, 아들 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딸을 중요시한다고 합니다.

현대사회에서 부모를 섬기는 것조차 짐스럽게 여긴다지만, 성경에서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는 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입니다.

  자녀들이 몇 년 동안 찾아오지 않아도 어머니는 남들에게 자녀 자랑을 합니다. 자식들이 사회에서 성공했다고 입이 마를 정도로 자랑을 합니다. 이것이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본인에게는 소홀히 할지라도 자식들이 세상에서 잘 사는 모습만으로 만족합니다.

  어머니날에도 전화 한 통 하지 않는 자식들은 누구에게서 이런 것들을 배웠을까요? 부모로부터 배운 것입니다. 그래서 가정교육은 자녀들이 부모로부터 보고 들은 대로 배우는 것입니다. 부모가 그들의 부모를 어떻게 섬겼는지 보고 자녀들은 그대로 따라합니다. 그러기에 부모는 가정 안에서 먼저 공경을 가르쳐야 합니다.

  또한 첫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첫사랑은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근처에 계시다면 찾아뵈야 하고, 먼 거리에 사신다면 전화로라도 ‘어머니 사랑합니다’하고 인사를 드리세요. 사랑한다는 인사말에 어머니들은 ‘그래도 내가 자식은 잘 키웠네!’하고 만족하십니다.

기다림의 인생! (2020-5-3)

  현대는 속도의 시대입니다. 느리다 싶으면 경쟁에서 뒤쳐지고 결국 도태되고 맙니다. 그럼에도 빠른 것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인생에 있어 기다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기다려서 해결된 것 같지만 또 기다려야 하는 순간이 오기도 합니다.

  신앙의 성숙에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신앙에는 속성반이 없습니다. 기다림과 인내를 통해 한 단계씩 성숙해집니다. 오랜 세월을 걸쳐 성숙해지는 나무처럼 말입니다. ‘빨리빨리’가 세계의 유행어가 되어가는 듯 보이지만, 신앙의 문제에 있어 우리는 기다려야 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와의 싸움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자택대피령이 일부 해제되며 안도하시는 분도 있고, 더 염려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아무리 코로나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린다 해도 소망으로 인내하는 사람은 결코 넘어지지 않습니다. 길었다면 길고 짧았다면 짧은 기간의 온라인 예배를 마치고, 비록 사회적거리를 유지해야 함에도 이번 주일부터 교회에서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음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하루속히 재앙적 질병이 사라지고 모든 일들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계속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무엇일까? (2020-4-26)

  세상 살면서 무서운 일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강도의 총부리에 놀라기도 하고, 사람이 사람을 보고 놀라기도 합니다. 이런 일을 겪고 나면, 사람들은 시간이 지난 후에 그때 정말 무서웠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보이는 일에 무서움을 겪기도 하지만, 더 무서운 것은 보이지 않는 일들입니다.

  내 몸속에 내 허락도 없이 은밀하게 자리 잡은 암세포로 인해 생사를 가늠할 수 없는 수술대에 오를 때 우리는 보이지 않는 공포를 마주합니다. 또한 이번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수많은 인명이 유명을 달리하는 것을 보며 무서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보다 더 무서운 것은 무지(無知)입니다. 옛말에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합니다. 알면 절대 대들지 못하는데, 아무것도 모르니 용감하게 앞장섰다 낭패를 당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그리고 무지 중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자기 자신을 모르는 무지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과대평가해 하나님을 부정합니다. 고대 그리스의 격언처럼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이 해답인 것입니다.

  우리들은 자신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하나님을 모르면 나는 티끌과 같은 미미한 존재입니다. 나를 제대로 알 때, 사람은 비로소 전지전능하신 주님을 찾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내 주인으로 영접할 때, 주님은 나를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로 세워주십니다.

  아직도 이 땅에서 바이러스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습니다. 바이러스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모를 때, 더 무서운 것입니다. 내가 나를 알 때, 비로소 주님 앞에 겸손하게 무릎 꿇게 하십니다. 주정부는 사람들로 하여금 일터로 복귀하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나의 연약함을 주님께 맡기고 담대한 믿음으로 주님 앞에 무릎 꿇는 믿음으로 세상에 나가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자택 대피령이 길어지면서! (2020-4-19)

  미국 전역에 자택대피령이 내려졌습니다. 한 두 주면 끝날 줄 알았던 자택대피령이 길어지며, 가정에서 온 가족들이 함께 하는 시간도 길어지고 있습니다. 집밖으로 나오지 말라는 정부의 행정명령에 따라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정 안에서만 생활하고 있습니다.

  가정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며 우리는 자신의 영적 건강을 검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육체적 건강에만 관심을 가지고 영적인 건강에는 무관심한 채로 살아온 건 아닐까요? 육체의 건강검사는 병원에서 하지만, 영적인 건강검사는 어디서 해야 할까요? 바로 자신 스스로가 해야 합니다.

  어느 분의 글에서 영적 검사는 마음만 할 것이 아니라 귀와 눈, 마음과 혀, 발까지도 영적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이 글을 쓴 분은 잠언 4장 20절에서 27절에 이르는 말씀을 통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귀 검사는 하나님의 말씀이 분명하게 들리는지[20절], 눈 검사는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가르침이 눈에 보이는지[21, 25절], 마음 검사는 악으로부터 마음을 잘 지키고 있는지[23절], 혀 검사는 입은 깨끗하고 정결한 말을 하고 있는지[24절], 발 검사는 진리를 향해 흔들림 없이 바르게 가고 있는지를 검사해야 한다고 합니다.

  적절한 말씀의 비유가 아닐 수 없습니다. 자택대피령이 내려진 이때를 통해 자신의 영적 건강을 검사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영적 건강이 좋지 않았다면, 검사를 통해 바르게 세우시기 바랍니다.

인류의 역사는 전염병의 역사다 (2020-4-12)

  병리학에서 말하길 인류의 역사는 전염병의 역사라고 합니다. 전염병이 발생한 뒤 많은 경우 세상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자택대피령이 길어진다면, 생활습관, 인사방법 등 대인관계에서 변화가 일어날 수 있으며, 신앙생활에서도 새로운 변화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염병으로 어떤 변화가 올지라도 영원한 말씀만은 변하지 않습니다.

  교회가 문을 닫고 온라인 예배로 바뀐 일은 이 시대 사람들에겐 생애 최초의 사건이지만, 102년 전 미국에선 이미 유사한 일이 있었습니다. 1918년 스페인독감으로 전 세계에서 수천만 명의 희생자가 발생하며 1차 세계대전이 앞당겨져 끝나기도 했듯, 하나님이 보시기에 우리들의 삶이 믿음과 합당치 아니하면 질병을 통해서라도 무지한 인류를 깨닫게 하십니다.

  이번 부활절 예배를 가정에서 드릴지라도 부활의 예수님이 각자의 가정에 임재하셔서 질병이 축복으로 바뀌는 놀라운 역사가 임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코로나바이러스 예방수칙은 잘 지키시되, 질병에 위축되지 말고 믿음의 기도로 극복하고 승리하시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꽃은 피고 있는데 (2020-4-5)

  해마다 부활절이 다가오면 하얗게 피는 꽃이 있다. 소담스럽지도 않고 초라하지도 않게, 다소곳이 하얀색을 수줍은 듯 꽃망울을 조금씩 터트리고 있다. 하얀 꽃 이파리 속 분홍빛깔이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닮았다는 이 꽃의 이름은 도그 우드이다. 특별히 부활절이 임박해 피어나기 시작하기에 예수님의 죽음을 상징하기도 한다.

  해마다 꽃망울만 보고도 종려주일과 부활절이 다가옴을 알게 해주는 꽃, 하얀 이파리 속 십자가 모양을 띈 분홍빛을 보며 예수님의 죽음을 기억하였다. 주님은 날 위해 십자가에서 죽기까기 했는데, 나는 주님을 위해 무엇을 했나? 나는 주님을 위해 아무것도 한 것이 없었다. 그저 복만을 빌은 것 같다.

  주님! 정말 회개합니다. 국가를 위해 민족을 위해 기도하지 못했습니다. 재앙과도 같은 이번 질병의 전염을 보며 인간의 힘이 이렇게 속절없음을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주님의 죽음을 애처롭게 닮은 도그 우드 꽃 속 십자가를 보면서도 올해는 감동하지도 감격하지도 못한다. 꽃능 점점 활짝 피어 가는데 믿음의 사람들은 가정에서 숨죽인 채 재앙이 지나가기 만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건물 교회를 놔두고 모든 성도들이 교회에 모여 부활의 축제를 하지 못하고 각자의 가정에서 영상으로 예배드림에 주님께 야속한 생각도 듭니다.

  주님! 다른 날은 그래도 견디겠는데 종려주일과 부활주일조차 흩어져 영상으로 예배드리게 하시는지요! 이번 재앙이 부활절 전에 지나가게 하셔서 주님의 부활을 마음껏 누릴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나의 구원자 (2020-3-29)

  우리들은 절박한 시대에 서 있습니다. 어느 길이 올바른 길인지 결단하지 못하고 사방을 둘러볼 뿐입니다. 이럴 때 주님을 찾으셔야 합니다. 이사야 55장 6절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우리들이 절박한 심정으로 주님을 찾고자 할 때, 하나님은 우리 곁에 가까이 계신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멀리하고, 현실적인 문제의 절박함을 세상에 하소연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의 절박함을 세상에 하소연하기 전에 먼저 위를 바라보라고.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너를 지명하여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하신 주님이 우리들 곁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내가 너의 어려움을 알고 있노라, 내가 너의 절박함을 잘 알고 있노라. 지금부터라도 나 외에는 구원자가 없음을 알고 나를 찾으라 그리고 내게 부르짖으라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한 분 한 분의 어려움을 너무 잘 알고 계십니다. 이러한 혼란스러운 때 주님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주님께 부르짖는 기도로 재앙적 질병이 이 땅에서 그치고 축복이 되는 환경으로 이루어 주시길 기도합시다.

위기 대응! (2020-3-22)

  이번 주일부터 새날교회도 주일 예배를 온라인으로 전환합니다. 지금까지는 믿음으로 예배를 지켜왔지만, 코로나바이러스가 더 심하게 전염되는 현실 아래 정부의 권고사항을 받아드리기로 결정했습니다. 모든 예배와 모임을 중단하고 오직 주일예배만 오전 11시에 실시간 동영상으로 드립니다.

  군대와 기업, 학교 등 공공단체에는 급박한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매뉴얼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에는 어떤 매뉴얼이 있을까요? 교회는 가장 먼저 믿음으로 위기상황에 대응합니다. 이것이 첫 번째 단계입니다. 믿음으로 대응하지 못하면 세상의 온갖 소문에 기가 눌려 제대로 대응하지 못합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께 가까이 가기 보다 현실에 쫓겨 다니기 바쁩니다.

  위기의 상황에서는 거짓소문들이 난무합니다. 이것들에 빠져들다 보면 현실을 부정하게 됩니다. 이럴 때일 수록 베드로전서 4장 7절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어떤 상황에서도 마지막이라는 각오가 있어야 정신을 차리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가장 먼저 믿음 안에 정신을 차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다음 단계로 온전히 넘어갈 수 있습니다.

  다음 단계는 교회와 정부의 지침을 지키면서 신앙을 지키는 것입니다. 현재 정부는 10명 이상 모이지 말라고 강력하게 권고하고 있지만, 머지않아 이 권고는 강제조항이 될 수도 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전염을 막기 위해서 몸은 모이지 못할지라도 마음은 더욱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며 또한 기도로 무장해야 합니다. 이런 위기상황 속에서 무엇보다 믿음을 가지고 냉철하게 현실을 바라볼 때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십니다. 이번 한 주간도 믿음으로 소망을 가지고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무엇을 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2020-3-15)

  세상 사람들은 물질의 부유함을 누리면 복 받았다고 말합니다. 자식들이 세상에서 성공하거나 본인이 건강할 때 복 받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우리들에게는 무엇이 복일까요?

성경은 시편 73편 28절을 통해 분명하게 말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그리고 하나님을 멀리하는 자는 망한다고 하였습니다. 내 생명과 내 물질, 내 자식들 모두 내가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실 때에야 영원합니다.

  출애굽기 33장 29절에서 구원받은 백성이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지금 한국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자신에게 전파될까 사람 만나기를 꺼려하기도 합니다. 이웃들 간에 서로 의심하며 불신이 팽배해진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럴 때일 수록 더욱 하나님께 가까이 가시기 바랍니다. 회개하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난 것이 가장 큰 축복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두렵게 할지라도 믿음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바이러스 예방지침도 잘 지키십시오. 그래서 믿음과 예방으로 어떤 재앙도 이기고 예배와 기도가 함께 하는 축복된 삶이 되시길 바랍니다.

무엇이 두려운가? (2020-3-8)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무엇일까요? 죽음일까, 질병일까, 귀신일까, 아니면 호랑이나 사자일까? 어떤 이는 사람이 가장 무서운 존재라고 말합니다.

  두려움은 마음에서 만들어집니다. 같은 사람을 보아도 그 사람에 대한 인상은 각기 다릅니다. 누구는 참 선하게 생겼다고 말하고, 다른 사람은 사기꾼같다고 합니다. 또 다른 사람은 두렵고 무섭게 보인다고 말하기까기 합니다.

  최근 만연하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이 자신을 지배하니, 세상이 망하는 것처럼 사재기를 하는 분들이 많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왜 저럴까’하며 비웃던 사람도 나중에는 사재기에 합류하게 됩니다. 그들은 사재기를 두려움에 대한 예방책으로 여기는 것 같습니다.

  두려움에 대한 궁극적인 예방책은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특별히 사순절 절기 중 말씀을 손으로 필사하면서 기도할 때 두려움이 사라지고 평안함을 주십니다.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내일도 이미 와 계셔서 우리들과 함께 하십니다.

사순절을 어떻게 보내야 성경적일까? (2020-3-1)

  사순절은 성경에서 증명할 수 없는, 사람이 만든 계명입니다. 추수감사절이 미국의 문화임에도 절기처럼 보내는 것과 같습니다. 사순은 사십 일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왜 사십 일일까요?

  성경에서 등장하는 많은 분들이 사십 일 동안 놀라운 일을 하였습니다. 노아의 홍수 때에는 사십 주야로 비가 내렸고, 출애굽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사십 년간 생활했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금식한 기간 역시 사십 일이고, 가나안 정탐 역시 사십 일이었습니다. 엘리야도 호렙산까지 사십 일을 걸었고, 사울왕과 다윗왕 역시 사십 년씩 통치했습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도 사십 일간 금식기도를 하셨습니다.

  이처럼 사십이라는 숫자는 고난과 영광을 나타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기까지의 사십 일을 의미하는 사순절 기간, 우리는 예수님이 고난당하심을 기억하며 옷을 찢기 보단 마음을 찢으며 예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특별히 요엘 선지자 시대처럼 회개운동을 통해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켜 재앙을 멈추게 하시기를 함께 기도하기 바랍니다.

서로 먼저 대접하라! (2020-2-23)

  성경은 일방적으로 네가 먼저라고 하면서 나중에 서로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고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때 서로 사랑하는 관계가 됩니다. 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나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고 이웃에게도 주어졌습니다. 이 말씀을 지키다 보면 서로 사랑하는 이웃이 됩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7장 12절에서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누군가로부터 대접받기를 좋아합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내가 대접을 받고자 한다면 네가 먼저 대접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모두를 향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따라 남을 먼저 대접할 때, 서로가 대접하는 관계가 이뤄집니다. 이것을 사회에서는 황금률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구원의 은혜만 생각한다면 우리들 역시 얼마든지 먼저 이웃을 대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받은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를 생각치 못하니 남들이 나를 먼저 대접해 줄 때만 남들을 대접하려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이론으로만 가르치지 않으시고 몸소 실천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한다면 예수님의 마음도 닮아가야 합니다. 사람을 바라보면 도저히 내가 먼저 다가설 수 없을 지라도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구원의 은혜를 생각하면 얼마든지 다가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사탄에게는 절대 다가서지 마시고 내게 다가올지라도 영적 능력으로 물리치고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가르쳐 지키게 하라! (2020-2-16)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 전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예수님은 마태복음 28:19-20절의 말씀에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가라고 하십니다. 어디로 가라고 하시는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찾아가서 예수님의 증인이 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증인은 어느 누구든 가르쳐서 지키게 하라 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가르치는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가르침을 받았다면, 이제 배운 대로 삶 속에서 행실로 보여줘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내 삶이 배운 바와 일치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많은 크리스쳔들은 교회 안의 삶과 밖의 삶이 나뉘어져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배우고 배운 대로 살겠다 다짐하고는 교회 문을 나와 주차장에 다다르면 이미 은혜로운 말씀들이 싹 씻겨지고 세속화됩니다. 이래서 어떻게 예수님이 당부하신 선교의 사명을 다하시겠습니까!

  승천하신 예수님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계신다고 약속하셨는데, 누구와 항상 함께 하신다 하셨나요? 예수님이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침에서 끝나지 않고 가르치고 지켜 행하게 하는 사람과 항상 함께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전한 가르침을 이론에 머무르지 않고 사람들로 지키게 하려면, 가르친 사람이 먼저 행실로 보여줘야 합니다. 입술로만 복음을 전할 것이 아니라, 내 삶 속에서 복음을 나타내는 새날교회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예물 (2020-2-9)

  내가 가장 소중하게 아끼는 물건을 주님이 필요하다고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선뜻 내놓으시겠어요? 아니면 몇날 몇일을 고민하다가, ‘주님! 다른 것으로 드리면 안될까요?’ 라고 거절하시겠어요?

사람들은 말하기를, 이 물건 만큼은 내 분신과 같이 여기기 때문에 절대 어느 누구에게도 줄 수 없다고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렸을 때 어떻게 갚아주시는지 사무엘상 1~2장에 아주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식을 낳지 못하는 한나는 울며불며 서원기도까지 하면서 결국 아들을 얻었습니다. 어렵게, 어렵게 얻은 아들이 사무엘입니다. 자식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께 서원기도하기를,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자식이 없다고 아랫동서로부터 온갖 멸시를 다 받으면서 기도로 얻은 아들을 젖을 뗄 무렵에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한나에게는 사무엘이 자신의 삶이었고 인생이었습니다. 이런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아들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어쩌면 자신의 삶을, 자신의 인생을 하나님께 드린 것입니다.

  하지만 대역전의 사건이 일어납니다. 이렇게 애지중지하던 아들을 성전에 드린 한나의 마음을 아신 하나님은, 한나를 돌보시사 그로 임신하여 세 아들과 두 딸을 낳게 하셨습니다. 마음 속 깊이 숨겨놓은 아들을 서원한 기도대로 여호와께 드렸더니, 하나님은 한나의 마음을 헤아리시고 그에게 다섯 명의 자녀들을 주셨습니다.

  무엇을 하나님께 드릴지라도 감사한 마음으로 드리세요. 하나님이 받으시고 30배, 60배, 100배로 다시 채워주십니다. 그러나 보상받을 마음으로 드리면 아무리 드려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지 않습니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가정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읽고 있나요? (2020-2-2)

  성경에서 밥이라고 하면 빵이 생각나고, 빵 하면 만나가 생각나고, 만나는 또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겨집니다. 육신은 밥을 아주 적게 먹을 수도 없고, 너무 많이 먹을 수도 없습니다. 밥을 멀리하고 적게 먹으면 체력을 유지 못하고, 너무 많이 먹으면 역시 체력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적당하게 먹어야 함에도 혹 과식으로 연결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영적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은 얼마나 즐겨서 먹고 있나요? 최근 들어 교회에 성경책을 들고 오는 사람들은 점점 줄고 있습니다. 성경책 대신 스마트폰 어플을 이용해 성경을 읽고 찬송을 하기도 합니다. 이젠 필기도 공책이 아닌 태블릿이나 노트북을 사용합니다. 일부 학교에서는 종이책과 연필이 아닌 전자책과 키보드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이런 시대의 흐름과 상반되는 학자들의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전자책이 아닌 종이책을 주었을 때 학생들의 집중력과 학습 성취도가 2배 이상 높았고, 키보드와 태블릿을 사용해 글을 쓰고 공부한 아이들보다 직접 손으로 써가며 공부한 아이들이 월등한 학습능력을 보여줬습니다.

  ADHD와 같은 학습장애의 경우 발생확률이 50%정도가 적었고, 기억력은 80%, 성적은 30%가 더 높았습니다. 이러한 결과가 나온 이유는 종이에 적힌 글을 보고 손으로 직접 글을 쓰는 과정 자체가 뇌를 활성화시키고 자극하기 때문입니다.

  시대에 뒤떨어진 구시대적 방식처럼 보이지만, 사실 뇌를 가장 발달시키는 효율적인 방법은 종이와 펜이라고 연구는 말합니다. 종이에 인쇄된 글자를 보고 손으로 쓰는 공부가 효과적이듯, 아직은 성경책으로 보고 손으로 쓰는 말씀이 묵상하는데 더 효과적입니다. 조금 불편한 신앙생활처럼 여겨질지라도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해 온 가족이 말씀을 읽는 가정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나는 왜 기도하는가? (2020-1-26)

  기도는 호흡이라고 말합니다. 숨을 쉬지 않고는 살 수 없듯이, 믿음의 사람들은 기도없이는 견딜 수 없습니다.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쉴 새 없이 기도합니다. 기도는 호흡처럼 우리의 삶에 항상 함께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왜 숨을 쉴까요? 인체구조상 자신도 모르게 숨을 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도는 왜 할까요? 기도 역시 그렇습니다. 우리는 늘 습관적으로 무엇인가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하나님께 내가 원하는 것들이 이뤄지기를 바랐습니다. 이제부터 하나님이 원하는 것들이 나를 통해 이뤄지기를 기도해 보는 건 어떨까요. 기도는 사명입니다. 사명감을 가지고 기도하다 보면 나 자신을 위한 기도보다 먼저 이웃을 위한 중보기도를 합니다.

  이제부터는 기도의 순서를 바꿔 이웃들을 위한 중보자가 되세요. 그때에 누군가가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을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를 위한 중보자가 되어줄 때, 누군가는 나를 위해 기도합니다. 중보기도를 통해 내가 미처 구하지 못한 것까지도 이뤄지는 놀라운 기도의 사명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누구를 닮아가는 인생인가? (2020-1-19)

  이런 책제목이 있습니다, “아버지, 당신은 카피되고 있습니다.” 이 책은 부모, 특히 아버지들에게 많은 경각심을 일깨워줍니다. 왜냐하면 자녀들은 아버지의 등을 보고 인생을 배우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고사성어 중 부전자전이란 말이 있습니다. 신조어로는 부전여전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부전자전이든 부전여전이든 자식들이 부모의 성품이나 행동, 습관 등을 닮아간다는 뜻은 같습니다.

  부모의 행동이 자녀들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자녀들이 은연중에 부모를 닮아간다는 뜻입니다. 자녀의 행동과 말투를 듣고 그가 누구 집 자식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누구를 닮아가는 인생을 살고 있나요?

  세상을 자신있게 살아온 아버지는 자식에게 ‘너는 나를 닮으라’고 말하고, 세상을 부끄럽게 살아온 아버지는 자식에게 ‘너만이라도 나를 닮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우리들은 어떤가요? 자녀들에게 자신있게 나를 닮으라고 말할 수 있는 부모일까요, 아니면 너희들만큼은 절대 나를 닮지 말라고 권면하는 부모일까요?

  누군가와 함께 동행 할 때, 우리들은 닮아갑니다. 지금 우리들은 예수님과 동행하고 있나요? 만약 그렇다면 우리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예수님을 닮아가고 있을 겁니다. 자식이 부모의 외모와 습관까지 닮아가듯이, 예수님과 동행하다보면 우리들의 얼굴과 사용하는 언어마저도 예수님을 닮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목표는 무엇일까요? 바로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마치 아들 딸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외모와 성격을 닮아가는 것처럼, 우리들도 예수님을 닮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예수님과 꼭 닮아갈 때, 그것을 보는 예수님은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나를 만난 사람들마다 “당신을 만나니 마치 예수님을 만난 것 같다”고 말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예배와 축복 (2020-1-12)

  웃어야 복이 올까요? 복이 와야 웃을까요? 이에 대한 해답은 웃어야 복이 온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예배드리면 축복을 받을까요? 아니면 축복을 받기 위해서, 무엇을 얻기 위해서 예배드릴까요?

기도하고 예배드리는 목적을 축복과 연관 지어서 기도하고 예배드립니다.

  나는 왜 예배를 드려야 하는가? 나를 구원해 주신 은혜에 감사하고 감격의 표시로 예배드려야 합니다.

받기 위해서 예배드림이 아니고 이미 받은 것에 감사해서 예배드려야 합니다. 내가 받은 것 중에 가장 큰 것은 나를 지으시고 구원해 주심에 감사하세요.

  하나님이 나를 지으시고 구원해 주시는 목적이 무엇인가요? 이사야 43장 21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이 하나님을 위해서 나를 지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나를 지으신 것은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려함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찾는 사람은 찬송하는 사람 즉 예배드리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금년 일년 내내 하나님이 찾고 계시는 예배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시간과 세월 (2020-1-5)

  이전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며 쉽게 들을 수 있는 말이 있습니다. 세월이 아깝다, 세월이 허무하다, 혹은 세월이 너무 빠르게 지나간다고 합니다. 그에 반해 시간이 너무 아깝고, 시간이 너무 허무하고, 너무 빠르다고 하는 분들은 많지 않습니다.

  세월이 아깝고 허무하며 빠르게 느껴진다면, 제일 먼저 아껴야 할 건 시간입니다. 시간을 아낄 때 세월을 아낄 수 있습니다. 시간을 알뜰하게 보낼 때 세월도 허무하게 보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시간은 공짜인 것처럼 물 쓰듯 낭비하며 일 년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와서야 세월이 너무 아깝다고 말합니다.

  2020년을 새롭게 시작하는 첫 시간부터 보람차게 보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주님이 내게 주신 시간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이 땅을 사는 동안만이 내게 주어진 시간입니다. 또한 내가 현제 사용하고 있는 이 순간만이 내 시간입니다. 이 시간 이후는 내 시간이 아닙니다. 오직 주님이 가지고 계시는 시간입니다.

  시간을 알뜰하게 보내는 사람은 하루하루를 보람차게 보냅니다. 매 시간, 하루, 한 달이 쌓여서 일 년이 됩니다. 일 년을 꽉 채우고 나서야 허송세월 보냈다고 탄식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일 년이 소중하면 지금 이 시간도 소중합니다. 그래야 세월을 소중하게 여기게 됩니다. 올 한 해, 매 순간 매 시간을 알뜰하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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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새날이 되자는 목표로

2001년 3월 14일 창립을 준비하여

2001년 5월 27일 첫 예배를 드리며

새날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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